호랑이도 자기 새끼는 물어 죽이지 않는다.

호주 깡촌에서 싱글맘 생존기

by 블루

요즘엔 해외에 살면서도 카카오톡을 통해 한국의 가족들과 아무 때나 전화나 영상통화를 하기가 쉬운 세상이다. 그래서 나와 엄마도 일주일이면 서너 번씩 통화를 하며 사는 얘기를 나눈다. 너무 자주 통화를 하다 보니 서로의 일정도 꿰뚫고 있고 간밤 식탁 위엔 뭐가 올려졌었는지도 서로가 안다. 바뀌는 계절마다 꽃사진도 주고받고 집안 이벤트 사진도 서로가 볼 수 있다. 너무 편하고 고마운 세상이다.


그러나, 예전 이십여 년 전에는 지금처럼 국제전화가 수월하지 않았던 시절도 있었다. 물론 인터넷 전화라는 것이 있기는 하였지만, 집에 인터넷이 설치가 되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산촌에는 인터넷이 깔려 있지도 않았을뿐더러 어차피 당시의 나의 형편으로는 다달이 치러야 하는 인터넷 비용을 감당하지도 못했다. 그 당시 내가 한국 가족과 통화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은 국제전화 카드를 이용한 통화였다. 그나마 그 카드를 동네에서는 팔지도 않아 좀 떨어진 도시에서 구매를 해야 했다. 가격은 10불에서부터 시작했던 것 같다. 비싼 것은 몇 백 불짜리도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격에 따라 통화시간이 주어졌다. 내가 주로 샀던 카드는 20불에서 50불 사이였다. 전화통화 시간은 30분에서 두어 시간이었지만 정작 통화 시간은 그것보다도 현저히 짧았다.


카드를 구입한 후 역시 동네에는 없던 공중전화를 이용해야 했다. 당연히 한국 엄마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공중전화를 찾아 도시로 나들이를 해야 했다. 그리고 카드의 은박 부분을 벗겨내면 숨어있던 비밀번호 30자리 정도의 번호가 나온다. 전화 통화를 하려면 그 비밀번호를 일일이 입력을 해야만 했다. 그러다 틀리기라도 하면 전화를 끊고 처음부터 다시 시도를 해야 했다.


1. 지정된 곳으로 전화를 건다. 간단한 안내음과

2. 국가를 정해 버튼을 누르라고 한다.

중국은 1번, 베트남은 2번, 한국은 3번 이런 식의 녹음된 안내가 나온다.

3. 3번 한국을 꾹 누른다.

4. 비밀번호를 누르라한다.

5. 비밀번호를 누르면 내가 통화할 수 있는 통화시간이 안내된다.

6. 원하는 한국의 전화번호를 누르라한다.


1번 전화를 건 시점부터 통화 시간에 포함이 되다 보니 정작 엄마와 통화할 수 있는 시간이 짧아지는 것이다. 통화의 질도 별로여서 엄마와 나는 서로 악을 쓰듯 목소리를 높여야 했다. 그나마 그렇게라도 통화를 할 수 있던 날은 운이 좋은 날이었지만 엄마가 외출이라도 하신 날을 내가 잘못 고르기라도 한 날은 공중전화 주변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때우며 몇 번 더 시도를 해야 했던 기억도 있다.


그러니 한번 맘먹고 구입한 전화 카드는 하고 싶던 말도 다 못 한 채 한 번의 통화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 당시 내가 한국의 엄마에게 전화를 하고 싶지 않았던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그렇게 힘들게 연결된 전화 통화에서 엄마는 아이들을 아이들 아빠에게 보내라는 말씀이 위주였기 때문이었다.

"호랑이도 지 새끼는 물어 죽이지 않는다"

라는 그 말씀을 필두로 아이들도 편하게 살게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아이들 아빠에게 보내라고 간곡히 나를 설득하셨다. 그리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엄마는 애원을 하셨다. 그러니 당연히 지금 내가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 따위는 엄마에게 말을 할 수 조차 없었다. 내가 만일 조금이라도 힘든 내색을 하면 엄마는 기다리셨다는 듯

" 그러니까 왜 그러고들 사냐고..." 하셨으니까..

나는 하고 싶었던 말들은 정작 삼켜야 했다.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해야 했고, 내가 잘 살아 있다는 것만을 알리는 게 주목적이었던 전화통화였다. 그러다 보니 이 힘든 한국으로의 전화통화는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10여 년을 한국과 연락을 끊다시피 살았다. 그러다 카카오톡이라는 것을 동생의 이메일을 통해 알게 되었고, 엄마와 나는 다시 통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다시 연결된 엄마와의 통화에서 엄마는 더 이상 아이들을 보내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다. 내가 아이들이 있어서 살 수 있었음을 엄마도 아셨던 것이다. 호랑이 새끼가 아니라 토끼 같은 내 새끼 들인 것이다.


이제 작은 아이 나이가 내가 우리 부모님을 떠나올 때의 나의 나이가 되었다. 내가 너무도 이른 나이에 부모님을 떠나 살게 된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한국의 부모님을 떠나 올랐던 유학길은 몇 년 안에 끝날 줄 알고 떠난 길이었다.. 삼십여 년을 호주에 묶여 살 줄은 어느 누구도 몰랐었다. 이제 엄마와 나는 매 번 약속하고 계획한다. 한국으로 돌아와 엄마와 같이 살자고.. 같이 나물도 띁으러 다니고, 단풍도 보러 다니고, 목욕탕도 같이 가서 서로 등도 밀어주고, 맛집도 찾아다니자 하신다. 엄마와 나는 기약 없는 이런 얘기만으로도 서로 들떠 행복해한다. 그러나 내가 지금 우리 아이를 떠난다면 그건 내가 이른 나이에 부모님을 떠난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이른 나이에 나를 떠나는 것이 된다. 엄마와 아이들은 말한다. 한국과 호주를 서로 번갈아 왕복하면서 살면 되지 않겠냐고... 겉으로 봐서는 참 좋은 생각인 듯하다. 그러나 한 번 자리 잡고 살게 되면 그것이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다는 걸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몸과 마음을 평생 두 나라에 걸쳐 놓고 살아야 하는 이 운명은 언제쯤이면 끝이 날까 싶다.


이 글을 쓰는 중간에도 엄마가 전화를 걸어오셨다. 전화기에 "울 엄마"라고 뜨면 언제든 반갑다. 무엇이 그리도 할 말이 많은지 한 시간이 짧다. 엄마는 제일 먼저 아이들의 안부를 물으신다. 호랑이 새끼들이 아닌 당신의 토끼 같은 손주들을 이제는 늘 궁금해하신다. 그래서 나는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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