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하이힐은 어떻게 되나요..

하이힐..

by 블루

좀 더 젊어서는, 매 번 샤워를 끝낸 후 전신거울에 몸매를 이리저리 비춰가며 혹시 못마땅한 군살이 붙어 있지는 않은지 날카롭게 내 몸을 훑어 봤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얼굴을 거울에 가까이 대고는 약해진 시력으로 인해 안경을 끼고 얼굴의 탄력과 행여나 어제보다 늘어난 주름은 없는지 살펴보게 된다. 어쩌다 하게 된 외출에서도 예전처럼 신발장 앞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전에는 며칠 전부터 골라두었던 외출복에 맞는 구두를 고르기 위해 하나하나 다 신어보고, 걸어보고, 비춰보고, 가족들에게 의견을 물어봐야 했다. 하지만 이젠 그런 것들로 시간을 보내는 일은 없어졌다. 높은 굽의 구두들은 이미 케이스에 담겨 손이 잘 닿지 않는 제일 높은 칸의 신발장에 올려두고 제일 편한 운동화를 주저 없이 신고 집을 나선다.

어쩌다 보니 중년이 되었다. 십 대의 나를 떠 올려보면 나는 절대로 늙지 않을 자신이 분명 있었다. 늙는 사람들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고, 어쩌면 우스워 보이기까지 했었던 것도 같다. 준비도 없이 이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이를 먹어 버렸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곧 늙는다는 것은 아닐 일일 텐데, 한 살 한 살 성실하게 나이를 세다 보니 늙음에 가까운 것은 사실이다.


내 나이 50을 몇 년 앞둔 어느 날의 일이었다. 7년 동안 거래를 하던 거래처 사람이 뜬금없이 저녁을 하자고 하였다. 할 말이 있다는 것이다. 그와는 개인적으로 얘기를 주고받았던 기억도 없었고, 하물며 날씨를 곁들인 헛 인사조차도 나눈 적이 결코 없던 사람이라 나는 잠시 멍해했었다. 그와 주로 나누었던 대화는 서로가 가지고 있는 서류의 내용은 맞는지, 시간은 맞는지, 수량은 맞는지 등의 내용이었고 그마저도 시끄럽고 바쁜 주변 환경으로 인해 주로 소리를 치다시피 목청을 높이고 빠르게 지나친 것이 다였던 사람이었다. 그즈음 작은 에피소드로 그와 내가 작은 의견 대립이 잠시 있기는 했었지만 서로 양보하는 지점에서 원활히 타협점을 찾았던 일이 있었기에 나는 다른 생각은 할 겨를도 없이 분명 그 당시의 일문제가 결부된 일이라고만 생각해 그의 저녁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는 약속 시간을 저녁 7시로 하자고 하였다. 하지만 나는 시간이 너무 늦은 것 같으니 4시로 하자 하였다. 그와 나는 결국 5시로 시간을 맞췄다. 약속당일 나는 늘 입고 다니던 청바지에,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제일 편한 운동화를 신었다. 화장 따위는 생각지도 못했고 오로지 나의 머릿속에는 그가 과연 일문제로 무슨 제안을 하려는 것인가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거래를 끊는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아님 수량을 더 늘려 줄 수 있는지 물으려 하려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상품의 질을 두고 뭔가 원하는 것이 있는 것인지 나의 머릿속은 이리저리 경우의 수를 짚어내며 일일이 그 상황에 맞는 나의 답을 미리 써보며 바빠하고 있었다.


외출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려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아들아이가 심드렁하니 한 마디를 했다.

" 엄마 오늘이 밸런타인데이 인건 알지?"

" 구두라도 신는 게 좋을 거 같은데요.."

" 립스틱 좀 바르지 그래요?"


나는 터지려는 웃음을 참으며 집을 나섰다. 아이들이 놀리는 게 재미있었다. 내가 떠 올렸던 그 어떤 경우의 수에도 아이들이 말한 그런 장면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집 위치를 고려해 그는 우리 집에서 한 시간 거리의 도시에 약속 장소를 잡았고 나에게 식당 위치를 보내왔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그는 다섯 시간을 꼬박 운전해서 와야 하는 거리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거래를 끊으려 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예를 갖추는 것일 거라는 나의 예상이 커져만 가고 있었다.


시내의 어느 평범한 펍일 것이란 나의 짐작과는 다르게 약속장소는 시내 한복판에 있던 프랑스 레스토랑이었다. 날이 날이었던 만큼 레스토랑은 핑크빛으로 꾸며져 있었고, 다소 이른 시간임에도 꽃과 인형을 든 커플들이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벌써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레스토랑 제일 중앙의 커다란 테이블에서 나를 맞았다. 나의 차림새를 본 그의 눈빛은 당황해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고, 역시 나도 그의 차림새를 보고 당황해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알던 그는 늘 늘어진 회사 유니폼인 폴로셔츠에 무릎이 튀어나온 일바지를 입고 면도도 하지 않은 거무튀튀한 얼굴을 가진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날 그 사람은 내가 쉽사리 알아볼 수 없었을 만큼의 변신을 하고 있었다. 말끔하다 못해 사치스럽게 보였던 슈트 차림으로, 안에 받쳐 입었던 하얀색의 셔츠는 빛이 나는 것 같았다. 그는 또한 어디서 구한 것인지 궁금증이 들만큼의 굵은 체인 금목걸이를 하고 있었고, 그의 손가락엔 무거워 보이는 금반지 몇 개가 빛나고 있었다. 또한 손목엔 아무것도 모르던 내 눈에도 값이 꽤 나가 보이던 손목시계가 눈에 띄었다. 그렇게 차려입은 그에게 들었던 한 가지 제일 큰 거부감은 그의 나이였다.


그렇게 차려입은 그는 나보다 열 살은 어려 보였다. 나는 혹시나 주위 사람들에게 이모와 조카의 만남처럼 부자연스러워 보일까 싶어 전전긍긍해 댈 뿐이었다. 일을 하면서 나는 그의 나이에 크게 의미를 두지는 않았었다. 단지 그가 나보다 많이 어릴것이란 느낌은 들었었고 그가 나이에 비해 사업 수완이 뛰어난 사람이라것이 내가 그에 대해 가지고 있던 데이타가 전부였다.


그는 나를 맞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가볍게 안고 인사를 하려 한 모양이었으나 나는 오른손을 얼른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 사이에 나는 현기증이 날 만큼 그의 독한 향수 냄새도 맡을 수 있었다.

뭔가 제대로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그도 느꼈을 것이고 나도 확실히 느꼈던 죽을만치 어색한 순간이었다. 그래도 나에겐 하나의 경우의 수가 남아 있었다. 나와의 짧은 비즈니스 만남을 빨리 마친 후에 그가 이 옷차림과 이 자리에 어울리는 어느 여인을 기다리는 것일 거라는 나의 예상이었다.


그러나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종업원들은 테이블의 촛대에 불을 켜 버렸다. 어색함을 죽기보다 못 견뎌하는 나는 그야말로 바늘방석이었다.


음식은 미리 그가 주문한 것인지 하나씩 차려졌고, 그와 나는 식당 중앙에 앉아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나는 일부러 우린 아무런 사이도 아니야 라는 듯, 나의 행동엔 과장이 붙어져 쓸데없이 말도 많아졌고 목소리 또한 커져 버렸다.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 나오던 음식 행렬이 끝이 나자 그와 나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명 잘못된 만남 같은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길은 없었다. 쭈뼛거리며 나의 차가 주차된 곳까지 따라온 그가 술을 한 잔 더 하자고 어렵사리 제안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술은 못한다고 말했다. 사실이었다. 그리고 아직 저녁 7시도 되지 않은 이른 저녁 시간에 나는 집으로 돌아 가야한다며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덧 붙였다.


" 내가 노안이 있어 밤 운전을 못해요. 그래서 일찍 집으로 돌아가야 해요"


밤눈이 어두운 것 역시 사실이었다. 그러나 늙어서 그렇다란 말은 하지 않아도 됐었다. 뻘쭘한 표정의 그에게 나는 말을 이었다.


" 오늘 저녁 정말 잘 얻어먹었어요. 저도 한 번쯤은 식사 대접하고 싶었었는데 제가 놓쳤네요. 다음번엔 저도 제대로 한번 대접해 드릴게요"


였다.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그가 내게 처음으로 나의 나이를 물었다. 여간해서는 여자 나이를 묻지 않는 문화에 있는 사람들이기에 그의 그 질문은 난 기어이 너의 나이를 알아야겠어 라는듯 도발하는 것처럼 들렸다. 나의 대답은 어리석게도

" I am old..."였다.


두고두고 생각이 났다.

내가 만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 몇 살인지 정도는 알려고 드는 것이 인지상정인 문화에 젖은 나로서는 그가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나이도 모르고 어떻게 만나보려고 생각한 것인지... 그러나 살아보니 그들에게 나이는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어느 누군가에게 끌리고, 그 사람에게 관심이 가고, 그 사람과 함께 하고 싶다는 느낌이 들면 그들은 움직이는 것이다. 나이를 따지지도, 학력도, 경제력을 묻지도 않는다. 대화가 통하면 된 것이고, 느낌이 통하면 된 것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문화와 감정에 충실한 사람들답게 오로지 나의 느낌만이 중요한 것이었다. 다른 이들의 생각과 시선따위는 개나 줘 버리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내가 오늘 알았던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오늘 내가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지는 않을까란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태어나서부터 한 번 학습된 것은, 잠시 배운 것으로 깨기에는 아직도 어려운 것 역시 사실이다.


그 사람과의 만남을 뒤로한 후에, 나는 일터에서 내 나이가 60을 훌쩍 넘겼을 것이라는 소문을 누군가에게 전해 들었었다. 동양인의 나이는 알아채기 힘들다는 말과 함께였다. 나는 웃어넘겼지만 그에게 보였던 나의 그 행동이 60을 넘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었고 또 그가 그렇게 생각 하도록 만들었던 내 실수였던 것이었다.


난 미리 늙었던 것이다.


오늘 신발장을 정리하며 맨 위칸에 오랫동안 놓여진 굽이 높은 몇 개의 구두를 꺼내 놓고, 잠시 예전의 일이 떠 올라 글을 써 보았다.


이 구두들을 버려야 할지 아니면 언젠가는 이 구두를 필요로 하는 날이 다시 올지 두 갈래의 마음이 처절하게 다투고 있다.


더 늙고 싶지는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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