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던 나의 딸, 30이 훌쩍 넘은 딸이 결혼을 하겠다고 합니다.
"아~ 내 딸이 결혼을 하는구나~. 내 품에서 보내야 하는구나. 이게 실화인가? 꿈인가?"
한편으론 엄청 서운한 마음이 올라왔어요.
"어떻게 뭘 해줘야 하지?"
분만실에서 처음 딸을 낳고 내 품에 안겼을 때 아기가 살아있다는 거, 내가 순산을 했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그 녀석이 커서 시집을 간다니, 딸을 키웠던 기억이 순식간에 머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인사드리러 온다는 딸의 말에
"오케이"
"엄마, 누군지도 모르면서 그냥 오케이?"
"응 그냥 좋아. 분명히 좋을 거야."
사위의 직업이 뭐고, 나이가 몇 살이고, 부모님이 뭐 하시는지, 어디 사는지, 재산은 어느 정도인지 등등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리만치 그냥 정말 좋았습니다.
사위의 인사를 받기 3일 전입니다.
"딸~~ 엄마가 사위를 만나러 가긴 갈 건데~"
"응"
"적어도 이름은 알고 가야 하지 않겠니?"
"ㅎㅎㅎ 응 OOO 야"
"알았어. 그럼 그날 만나."
내가 어른이라고 인사를 오긴 하는 모양인데, 사위도 사회생활한 사람이고 나이가 있는데 내가 허접하게 맞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내 딸의 아버지가 계시지 않기에 부족한 자리까지 채워주고 싶었습니다. 장인이 계셨다면 엄청 좋아하고 예뻐했을 사위. 내 맘이 짠합니다.
내일은 상견례 날입니다.
"아들~ 좀 일찍 나가야 해"
"그래요? 왜요?"
"응~ 가다가 들를 곳이 있어"
"어디를요? 어머니!"
"웃지 마라 아들~~ '꽃집'ㅎㅎ"
"엄마가 꽃집을?"
"아니 꽃은 도대체 돈 아까워서 안 사시는 분이 웬 꽃집이요?"
"응~ 사위 주려고"
"헐~ 얼굴도 모르는 사위한테요?"
"야~ 이놈아~ 누나하고 같이 살 사람이여~~"
"아니 그건 알지만요"
"누나 얼굴도 있는데 아빠 몫까지 우리가 해주자. 꽃바구니 맞춰 놨어. 얼굴도 모르는 사위가 왜 이리 좋지? 엄마가 생각해도 이상해 ㅎㅎ"
"알았어요. 엄마 생각 아주 좋아요. 우리 가족이 될 분인데 첫 만남을 불편하게 할 필요 없잖아요."
"오~ 땡큐. 운전은 아들이 하고, 나는 꽃같이 가련다. 꽃바구니도 아들이 찾으셔."
이렇게 사위를 맞이했고 사위도 내게 꽃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사위한테 꽃바구니를 받아보니 가슴이 뭉클합니다.
직접 만나보니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너무도 귀한 우리 사위!
딸이 결혼한다고 할 만 하더군요.
어느 집 귀한 자식인지 참 고맙습니다.
상견례를 해야 하는데 "이를 어쩌나?" 고민만 깊어집니다.
예전처럼 상견례 자리에 친인척까지 모셔야 할지 걱정이 됐고, 남편이 안 계신 것도 속상했습니다. 사위 측에서 어찌 나올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드디어 연락이 왔습니다.
"엄마, 시어머님께서 양가 가족만 만나서 상견례하자고 하세요."
감사한 제안이었고, 이로써 상견례도 해결되었습니다.
하나의 고민이 또 있었습니다. 남편에게 사위를 인사시켜야 하는 절차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결혼할 때만 해도 시아버님이 안 계셔서 묘소에 가서 인사올리고 온 경험이 있습니다. 그 당시 시어머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살아있는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끼리 인사하지만, 돌아가신 분께는 이렇게 산소에 와서 고하는 거란다."
이 말씀을 이행하고자 엄동설한에 한복 입고 산소에 갔던 경험이 있습니다. 불교가 종교인 나는 살면서 시어머님이 하신 말씀이 맞다는 것을 부처님 말씀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우리 딸과 사위를 남편에게 인사시키고 싶었습니다.
딸과 사위를 불렀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만나서 얼굴 보고 인사하면 그게 상견례지만, 내 딸의 아버지는 하늘나라에 계시니 인사드리는 절차를 절에서 했으면 하네. 자네 생각은 어떤가? 즉 절에서 제사를 모시겠다는 뜻이니 참석해야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미가 그런 것이라면 당연히 참석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참석하겠습니다."
"고맙네. 그럼 날짜를 잡아서 그렇게 진행하기로 하세"
"네 어머님!"
좋은 날 좋은 시간 잡아 남편에게 딸의 반쪽을 인사시켜 드렸습니다.
"어머님, 좋은 경험 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엄마~ 나도 아빠한테 인사해서 좋았어"
이 행사를 치르고 나서 결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결혼식 치르는 날까지 나는 왜 그리도 눈물이 나는지 매일 눈이 퉁퉁 부었습니다. 딸을 생각해도 눈물이 나고, 남편을 생각해도 눈물이 나고, 나를 생각해도 눈물이 납니다. 멈추라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 듣지 않는 고집입니다. 결혼식 날은 울지 않으려고 약까지 먹었고 다행히 약 덕분인지 울지 않고 결혼식을 잘 치러냈습니다.
내가 딸을 키우면서 훗날 아이를 낳을 엄마가 될 것이기에 먹는 것에 대한 신경을 많이 쓰면서 키웠습니다. 결혼해서 자식을 건강하게 낳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늘 강조하다 보니 딸 귀에 딱지가 앉았을 겁니다. 만일 아기가 아프거나, 부족하게 태어난다면 내 딸이 제일 먼저 고생할 것이 분명하기에 건강한 태아를 가지도록 최대한 노력을 하라고 잔소리잔소리 했습니다.
여름에 친정에 온 딸이 내게 카드 한 장을 내밉니다.
"할머니, 반가워요. 우주예요! 내년 4월에 건강하게 만나요!"
어머나! 귀하디 귀한 아기를 잉태한 겁니다.
태명은 '우주'
감사해서 정말 감사해서 눈물이 줄줄 흘렀습니다
주책맞게 운다고 아들이 핀잔을 줍니다.
딸을 안아주고 사위에게도 고맙다고...
멋쩍어하는 사위.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딸은 직장 생활하며 배 속의 아이를 잘 키웠고, 몇 달 뒤 여아라는 소식이 왔습니다.
임신 중에 딸은 갑상선 수치가 높아 약을 먹어가며 '우주'를 키웠고, 입덧이 있어 매번 토하면서도 우주를 위해 약도 먹지 않고 버티는 딸이 매우 안쓰러웠습니다. 잘 견뎌주는 우리 딸~ 장하다!!!
이듬해 봄 우주는 드디어 세상 밖에서 우리와 만났습니다.
아빠를 쏙 빼닮은 우주.
자세히 보니 엄마의 눈코입을 닮은 우주.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귀하디 귀한 인연. 사위와 우주
정말 제게 엄청 귀하디 귀한 인연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