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되어 우리 식구가 살던 집에서 남편의 일터가 있던 산등성이 ㅇㅇㅇ집 쪽을 바라다보면 주황색 불빛들이 일렁거렸다. 마치 화산이 폭발할 때 흘러나오는 붉은 마그마를 구경하는 것 같았다.
낮에 창문너머로 올려다보면, 온통 야트막한 스레트지붕과 회색 담벼락들만 보였을 때다.
그 얕은 지붕 단칸방에 딸들의 친구들도 살고 있었다는 걸 비로소 실감했던 때는 큰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였다.
마을버스 찻길 옆에 있던 집에서 주인집 사정으로 갑자기 이사를 해야 했다.
며칠을 발품을 팔아 정릉4동에 새 집을 구했다. 미아7동과 정릉4동은 쉽게 말하면 꼭짓점을 기준으로 양쪽으로 갈라져있는 삼각형의 옆면(?)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 꼭짓점에는 길음역을 오가던 마을버스의 종점이 있었고, 큰딸이 다녔던 정릉초등학교가 있었다.
미아7동 집보다 정릉4동집은 넓었다. 방은 똑같이 두 개였지만 주방과 거실을 겸했던 공간의 크기가 미아7동 보다 컸다.
큰딸은 작은딸과 달리 친구도 빨리 잘 사귀고 학교가 끝나고 가끔 집에도 잘 데려왔다. 친구들은 학교가 있었던 마을버스종점가까이에 살고 있었다.
그 친구들 몇 명을 큰딸이 처음으로 집에 데려왔을 때였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피아노를 보고 한 친구가 “와! 피아노다! “하면서 환성을 지르더니 나에게”아줌마, 피아노 한번 쳐 봐도 돼요?”라고 말했다.
“마음껏 쳐보라”는 말이 채 끝나기 전에 피아노 뚜껑을 열더니 화려한(?) 손놀림으로 학원에서 배웠음직한 곡들을 연이어 연주했다.
함께 왔던 친구들도 피아노 옆에 함께 붙어 서서 친구의 연주솜씨를 구경할 때, 큰딸은 방에 들어가 만화책을 보고 있었다!
피아노는 우리가 조금 큰 집으로 이사 간다는 말을 듣고 남편의 누나가 운송비까지 내주며 가져다준 무겁고 오래된 검은색 피아노였다. 교대를 다닐 때 피아노를 꼭 쳐야만 했기에 아버님을 졸라 마련했다고 말했던.
그 옛날, 아버님이 형님에게 사주셨던 피아노 덕분에 큰딸의 친구들은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왔었다.
형님네 피아노가 올 거라고 했을 때 남편은 ”좁은 집에 무슨 피아노냐고”말하며 탐탁해하지 않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