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어린이날에는 우리 나눔의 집 공부방과 이웃의 여러 공부방아이들이 함께 운동회도 하고 놀이도 하는 큰 동네잔치가 있었다. 학교 운동장을 빌려 여러 곳의 공부방아이들과 학부모들, 교사들이 함께 했던 큰 잔치였다. 행사 전 날 남편은 “아이들 데리고 당신도 같이 오라”라고 말했다. 다음 날, 딸들과 언덕길을 걸어 내려가, 잔치가 열리고 있던 초등학교에 다다르자 공부방아이들의 함성소리와 운동장에 가득한 선생님들과 주민들로 잔치분위기가 한껏 무르익고 있었다. 딸들은 그 넓은 운동장에서 용케도 남편을 알아보고는 달려갔다. 저희들 딴에는 아버지가 두 팔 벌려 반갑게 안아 올려줄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때 남편은 딸들을 덥석 안아 올려 주는 건 고사하고 맨숭맨숭한 얼굴로”그래, 엄마하고 잘 놀다 가라.” 이 한마디 말만 하고 혼자 진행본부 자리였던 그늘막 속으로 휙 들어갔다.
나는 남편을 이해했지만 딸들은 아버지의 처지를 헤아리기엔 아직 어렸을 때다. 공부방선생님들이 다가와 손을 잡고 아이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같이 가자고 해도 둘 다 이미 풀이 죽어 따라나서질 않았다.
잠시 뻘쭘히 운동장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큰딸이 큰소리로 “엄마, 어린이날 롯데리아 간다고 약속했었잖아?”라고 말하며 얼굴이 환해졌다. 제 딴에도 그 약속을 기억 낸 것이 마냥 자랑스러운 표정이었다.
남편도 선생님들도 저만치 아래 운동장에 있었고 딸들의 마음은 이미 롯데리아를 향해 달려갈 기세였다. 누구에게 먼저 가겠다는 말도 못 하고 운동장을 걸어 나와 마을버스를 타고 미아 사거리역에 내려 4호선 전철을 탔다. 혜화역 롯데리아에서 햄버거와 콜라와 감자튀김까지 먹고 난 후에 딸들은아버지에 대해 섭섭했던 마음도 누그러져 얼굴이 환해졌다.
어린 딸들에게 위로와 기쁨을 안겨주던 행복한 추억의 장소, 롯데리아에서 계엄 모의를 했다는 뉴스가 그저께부터 하루종일 들려왔다. 어린 시절 딸들의 행복한 추억과 위로의 장소였던 롯데리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