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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ark Apr 29. 2021

상대적 꼰대 법칙

나는 꼰대일까?

유럽 사람들이랑 일하다 보면 나도 몰랐던 나를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가령 나는 내가 절대로 꼰대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얘네랑 사고방식이 워낙에 달라서, 가끔은 내가 꼰대인가 싶을 때가 있다. 최근에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건, 병가 (sick leave) 문화였다.


Photo by Nik Shuliahin on Unsplash


유럽에서 병가를 내는 경우는 생각보다 흔한데, 대표적인 이유는 번아웃 (burn out)이 와서, 혹은 신체적으로 어디가 정말로 아파서 내는 경우들이다. 신체적으로 아픈 거는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처음에는 업무 스트레스 때문에 병가를 낸다는 개념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다 (번아웃 왔다고 몇 달씩 회사를 안 나오는 게 말이나 되냐고). 하지만 유럽인들과 매일 일하고 생각을 공유하다 보니까 지금은 대부분 이해가 된다. 단순히 살아온 환경 자체가 너무나 다르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형성된 가치관 또한 정말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의 가치관이 이렇게나 달라지게 된 모든 수순을 하나씩 나열하면 너무 많기 때문에, 회사를 바라보는 관점만 얘기를 해보자면, 그들에게 회사는 개인이나 가정보다는 덜 중요하고, 또 회사의 C-level executive (CEO, CTO 등) 들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사실 굉장히 논리적이고 당연한 생각이지만 그렇게 행해지는 사회는 많지 않다.



올해 초부터 동료 중 한 명이 사귀던 친구와 헤어진 슬픔이 너무 커서 병가를 냈다. 지금까지 3달 정도 된 거 같은데, 이 시점에서 나는, 이게 맞는 건가?라는 생각을 솔직히 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나는 꼰대인 것일까? 아니면 내가 맞고 저 동료가 서/북유럽 복지 시스템을 오용하는 것일까?


Latte is horse
라떼는 말이야..

그에 대한 해답은 내가 속한 그룹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위의 모든 경우 (스트레스 때문에 병가를 내는) 들은 한국에 있는 한국인 입장에서는 공감하기 어렵기 때문에, 모두가 너무 심하다고 생각할 것이지만, 여기서는 어찌 되었건 개인의 일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위에 말했듯 유럽인들과 내가 갖고 있는 가치관의 정도라던가 결이 정말 다르다는 것을, 이번에 병가를 낸 동료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관점에서 다시 느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병가를 낸 동료에게는 매니저 이외에 누구도 따로 연락할 수 없고, 매니저도 어떻게 지내는지 정도만 물어볼 수 있고 그 외에 공적인 건 절대로 허용되지 않는다. 그 사람의 안녕이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상대적 꼰대 법칙. 나는 이렇게 이름 붙이고 싶다. 나는 아무래도 한국사람이고, 한국에서 이런저런 알바나 간단한 일도 해봤고, 군대도 다녀왔기에 유럽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이나 개인의 자유에 대해 아직도 100%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내 개인의 권리와 회사 사이에서 무엇이 더 나은 '나의 삶'을 만드는 환경인가를 따져 보았을 때, 우리 관점에서 조금은 과하더라도 유럽이 낫다. 아프면 쉴 수 있고, 휴가는 내 스케줄대로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는, 생각해보면 굉장히 당연한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사회의 암묵적인 룰을 바꿔 나아가는 연령층이 한국은 젊은 20, 30대가 이끌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유럽은 오히려 기성세대들이 이끄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의 재택근무, 탄력 근무제, 등과 같은 소위 요즘 '힙한' 회사 문화는 대부분 Top down (하향식)으로 위에서부터 오히려 권장하는 식이다. 하지만 한국은 - 직접 한국에서 일해본 경험이 없어서 일반화에 무리가 있겠지만 - 주변에서 보고 듣기로는 거의 젊은 사람들이 투쟁식으로 쟁취해야 하는 것들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가끔 이런 얘기를 한국에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하다 보면, 그렇게 다들 쉬고 싶을 때 쉬어버리고, 조금 아프다고 쉬면 일은 누가 하냐고 묻는 분들이 있다. 첫 번째로, 유럽의 회사들은 굉장히 성과 중심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자유로워 보이는 문화의 선행 조건은 어느 정도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다. 그렇기에 아무 생각 없이 쉬기만 한다면 잘리는 건 당연하다. 두 번째로, 그렇게 한 명이 쉬어버리면 남은 사람들이 미칠 듯이 바빠지는 정도로 애초에 팀을 짜 놓지를 않는다. 언제나 빈 사람의 백업 플랜이 존재하고, 큰 프로젝트라면 팀원들이 서로 나눠서 가져가기 때문에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도 않는다. 마지막으로, 누군가가 아프기 때문에 회사에 못 나오는 경우가 생겨서 프로젝트에 차질이 생긴다고 해도, 대부분은 어쩔 수 없는 이유이기 때문에다 이해한다.


글을 쓰다 보니 나온 결론은, 인간으로서 당연하게 생각되어야 하는 권리들을 그동안 행해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너무나 당연히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 그게 어쩌면 꼰대의 판별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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