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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근 후의 서재 Apr 16. 2023

[서평] 누구보다 내향인인 당신의 삶에 공감하며

'내밀 예찬' - 김지선 

 가끔 한국에 번역된 외국 저서의 원제를 보고 놀랄 때가 있다매력적이고독자의 관심을 확 끄는 한국판 제목과 달리 아주 단순하고 평범한 것들이 많아서우리가 책 목록을 살펴보다 멈추게 되는 외국 저서들은 대부분 한국 출판사들이 별도로 붙인 제목인 경우가 많다그 말을 반대로 풀이하자면 한국의 편집자들이 그만큼 매력적이고 독자들의 흥미를 끄는 단어 선택에 공을 들인다는 뜻이리라


'내밀 예찬' 책 표지


 내밀 예찬이라는 김지선 작가의 책을 보았을 때가 딱 그랬다. ‘내밀과 예찬이라는 멋들어지면서도 일상에서 자주 접하지 못한 단어들의 조합에 시선이 끌렸다이걸 제목으로 내세운 사람은 분명 활자의 홍수 속에서 예민하게 단련된 감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혹시 저자가 지었을까그러고 보니 저자는 잡지 에디터 출신이자 현재 편집자이기도 하다던데누가 선택한 제목이건 참 잘 만들었다는 생각과 함께 약간의 불안감도 생겼었다혹시라도 이것이 과대 포장된 책의 제목일까 봐



 내밀 예찬이라는 책의 표지에는 이런 문장이 곁들어져 있다은둔과 거리를 사랑하는 어느 내향인의 소소한 기록요즘 언급되는 MBTI식으로 이야기하자면 극 I형 인간의 기록물이라고 할까그 내밀함을 예찬한다고 한 만큼 이 책에는 내향인들의 삶과 태도에 대한 긍정적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그 태도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바로 첫 챕터인 점심 이탈자저자는 직장에서 점심시간이 되면 사라지는 사람들에게 호기심이 있다고 고백을 한다팀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러 가지 않고섬세하지 못한 사람들의 불필요한 질문이나 붐비는 엘리베이터를 피해 이탈하는 사람들일부러 회사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카페에서 점심시간을 보내거나시내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 이동하여 점심을 먹기도 하는 저자로서는 동족에 대한 관심이자 그들의 심정을 헤아린다는 고백이기도 하다이러한 내향인들이 겪는 생활 속 어려움과 허점들그리고 그들이 가진 장점과 행동양식에 대해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낸 책이 내밀 예찬이다혹시 당신이 내향형 인간이라면혹은 주변에 점심시간이면 사라지고 싶어 하는 동료를 둔 사람이라면 관심을 갖고 읽을 만한 책이다



 이런 류의 고백서(?)에는 약점이 있다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파악되면 시시해진다는 것이 책의 경우 내향형 인간에 대해 충분히 잘 알고 있다고 자만하는(?) 사람이라면 별 내용 없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여기서 차별점을 갖게 되는 것이 김지선이라는 작가의 필력이 아닐까 싶다이 책은 단순히 내향형 인간의 기록물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무척이나 매력적인 문장을 갖고 있다.


 누군가를 집으로 초대한다는 것의 의미를 서술한 대목(‘누군가의 집을 방문할 때’)에서는 타인을 집으로 끌어들인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것을 신경 써야 하는 일인지그런 초대를 받았다는 건 내가 어떤 의미인지를 내향형 인간답게 내밀하게 묘사했다그리고 자신이 샀던 6인용 식탁에 대해 불시착한 우주선이나 공사판의 중장비번지수를 잘못 찾은 코끼리 같은 모습으로 거실을 차지하고 있다고 적은 문장(‘6인용 식탁’)에서는 웃음이 나왔고아이와의 산책의 영향으로 물웅덩이는 첨벙거리는 곳이고보도가 끝나는 턱에서는 뛰어야 반드시 깡충 뛰어 내려야 하는 아이의 시선아이의 걸음걸이아이의 중력이 아직은 어느 정도 내 안에 남아있는 상태라고 고백한 부분은 사랑스러웠다주변의 변화와 그 영향이 오래도록 마음에 머무는 내향인의 시선이 정말 잘 드러난 문장 같다.


 그 중 가장 사랑하는 것은 ‘3월 2일의 마음이라는 에세이다우리가 학창 시절에 겪었던 새로운 학기의 시작그 안의 설렘과 두려움걱정불안에 대해 작가는 3월 2일의 마음이라고 표현했는데이 글은 첫날은 그냥 바보 되는 날이죠라며 3월 2일의 마음에 대해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마무리(이건 저자의 후배가 했던 말이다)로 정리한 부분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우리 모두 3월 2일의 마음을 갖게 되는 순간들을 만나곤 하지 않나그때 저자의 문장이 조금은 힘이 될 것 같다


 그 외에는 내향형이 아니더라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많다코로나 이후에도 유지되었으면 하는 것들(‘예민한 것이 살아남는다’)이라던지이웃에 대한 생각들(‘이웃이라는 낯선 존재’), 저자의 친구가 불면은 일종의 권태라고 했던 불면증에 관한 이야기(‘둠 사용법’)는 비단 내향형 인간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책에는 재미있는 지식도 몇 가지 곁들어지는데프록세믹스가 인간이 타인으로부터 지키고 싶은 거리(‘스타벅스 테이블 라이터’)를 의미한다는 것이나귀 트임이라고 하는 현상(‘잃어버린 정적을 찾아서’)이 있다는 것도 나처럼 처음 알게 된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아무도 나를 모르고 돈은 많았으면 좋겠다던 한 배우의 고백에 대한 해석이었다작가는 이에 대해 유명세와 돈의 상관 관계에 대해 적었지만사실 이 말에 숨겨진 함의는 유명해지지 않음으로써 자연인으로서 자유로울 수 있는 권리를 유지하고 싶다는 마음일 것이다이는 극내향인이 항상 바라는 것이기도 해서 이 점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약간의 실망과 아쉬움을 느꼈다자신이 원하지 않는 이상 타인에게 누구라고 각인되고 싶지 않은 마음평범함과 무던함 속에 일부로 스며들어 크게 눈에 띄고 싶지 않은 마음그것이 3월 2일이 아니더라도 내향인이 항상 품고 있는 내밀한 마음이 아닐까나는 저자의 매력적인 문장이 그 점을 좀 더 세상에 알려주길 바랐다그래맞아그런 마음이 실은 우리(내향인)에게 있지라며 조잘조잘 떠들어주길 바랐다에세이는 독자와 저자 사이의 공감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그 부분이 생략된 것이 무척이나 아쉬웠다



 이 책은 내향인의 삶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참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내용으로 채워졌다어쩌면 당신은 이 책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고혹은 이해하지 못했던 누군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어찌 되었거나 내향인은 우리 주변에 항상 있기 때문이다혹시라도 내향인이 아니어도 상관없다에세이를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추천할 수 있을 만큼 잘 쓰인 책이다

총 182페이지의 짧지만 충실한 글들을 따라가다 보면 마무리에서 이런 책을 쓰게 된 작가의 쑥스러운 고백도 만날 수 있다잡지의 글쓰기를 배워왔던 사람으로서동시에 현업인 출판편집자로서 느낀 겸손함일 것이다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김지선이란 작가의 문장을 사랑했던 사람으로서 그런 겸손함은 빨리 잊어버리길 바란다그리고 여타 다른 작가들처럼 자신의 글에 대한 애착이 강해져서 내밀한 마음을 고백한 이 책 외에도 또 다른 저서를거실 한복판에 놓인 식탁을 불시착한 우주선이라고 표현했던 그녀의 문장을방 안의 온도 변화와 밤부터 새벽까지 변해가는 어둠의 팔레트를 찾아내는 그녀의 시선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부디 이 책이 그녀의 마지막 저서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더 이상 내밀함을 예찬하지 않더라도 그녀의 문장을 사랑해줄 사람은 충분해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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