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퇴근 후의 서재 Jun 09. 2024

다시 보니 이 영화의 끝은 새드 엔딩이 아니었어 (2)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 이누도 잇신 



(1)에 이어서 글을 적는다. 




 조제는 자신의 집 안, 산책길의 유모차 안, 그리고 좁은 벽장과 버려진 책들 안에만 갇혀 있던 인물이다. 그녀는 츠네오를 통해 많은 것들을 ‘처음’ 경험한다. 빠른 속도로 달린다는 것도 그렇고, 담요로 가리지 않은 세상도 그렇고, 질투도 그러하다. 자신의 집에 무료 개조를 위해 사람들이 찾아왔을 때, 조제는 츠네오가 자신과 다른 비장애인 여성과 대화하는 모습을 처음 목격하는데, 그때 처음으로 질투라는 감정을 느끼고 창밖에 서 있는 츠네오를 향해 물건을 던진다. 


 영화의 제목에 등장하는 ‘호랑이’와 ‘물고기’도 마찬가지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 그것을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면 보러 가겠다고 조제는 꿈꾸고 있었다. 영화 말미에 물고기를 보러 수족관에 갔다가 실패하고, 그 대신 물고기 이름이 들어간 모텔에 묶는 것도 마찬가지다. 조제가 궁금했던 것, 직접 경험해 보고 알고 싶었던 세상의 많은 것들을 조제는 츠네오를 통해 겪는다.      


 조제는 연애를 통해 참 많은 것을 경험하고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이 둘이 헤어지는 과정이다. 


 영화 말미, 츠네오는 가족 제사에 조제를 데려가려고 한다. 그래서 조제의 아들(실은 함께 시설에서 도망쳤던 남자애)에게서 빌린 차를 타고 가는데, 중간에 가지 않기로 결정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통화 중이던 츠네오의 동생이 묻는다. ‘형, 지쳤어?’ 


 실제로 둘의 자동차 여행 중에 츠네오는 지친 것처럼 보인다. 몸이 불편한 조제에게 많은 것을 맞춰주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요구하는 조제에게 마음이 돌아선 것처럼 묘사된다. 동생과의 통화는 그것을 일깨워 주는 장면이었고, 그 뒤에 두 사람은 말없이 차 안에 앉아있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나오지 않지만, 아마도 이별에 관한 대화를 나눴을 것이다. 다투고 난 뒤의 연인처럼 앉아있는 두 사람은 차에 시동을 거는 순간 내비게이션의 음성을 듣는다. ‘목적지까지 140킬로.’ 어쩌면 이 두 사람이 헤쳐 나가야 할 막막하고 먼 앞날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 내비를 중간에 꺼버린 조제가 말한다. 마치 모든 것을 받아들인 듯한 표정으로. 바다로 가자.     



 그리고 두 사람의 마지막 여행이 시작된다. 영화 포스터에 등장했던 그 유명한 장면,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업고 거닐던 바닷가로 두 사람은 간다. 츠네오의 등에 업혀 조제는 마음껏 바다를 구경한다. 모래사장을 거닐고 조개껍질을 줍는다. 혼자였다면 절대로 해보지 못했을 경험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물고기 이름이 들어간 모텔에 간다. 조제는 세상에서 가장 야한 짓을 해도 괜찮다며 츠네오가 하고 싶은 것을 들어준다.      


 여기서 잠깐 말을 끼워 넣자면, 이 영화에는 섹스 장면이 몇 번 등장한다.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장애인에게 장애인의 섹스는 떠올리기 힘든 요소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 성관계를 피하지 않고 다뤄낸다. 다른 젊은 연인들처럼, 이들도 똑같은 남자고 여자였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 점이 참 좋았다. 그리고 관계에서 조제가 항상 주도적인 역할이었다는 것, 두 사람이 맨 처음 관계를 갖는 장면에서 욕망의 폭발이 아닌 사랑스러운 눈길과 애무를 담았다는 것도 참 좋았다.      


 관계가 끝난 뒤 불을 끄자 모텔에 신기한 조명이 비춘다. 바닷속을 묘사한 그 조명을 보면서 조제는 츠네오에게 눈을 감으라고 한다. 그리고 무엇이 보이느냐고 묻는다. 츠네오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답한다. 그러자 조제는 츠네오에게 이 영화를 관통하는 중요한 메시지를 들려준다. 


 조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곳이 자신이 옛날에 살던 곳이라고 한다. 깊고 깊은 바닷속. 난 거기서 헤엄쳐 나왔다고. 너랑 세상에서 가장 야한 짓을 하려고. 그곳은 빛도 소리도 없고 바람도 안 불고 비도 안 오는 곳. 오직 정적만이 있어서 외롭지도 않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단지 천천히 시간이 흐를 뿐이라며, 자신은 두 번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지 못할 거라고 한다. 언젠가 츠네오가 사라지고 나면 자신은 길 잃은 조개껍데기처럼 혼자 바다 깊은 밑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게 될 테지만, 그래도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조제는 이 이별을 오래전부터 예감했을 것이다. 둘이 자동차 여행을 떠나기 전, 차를 빌려주러 아들(같이 시설에서 도망쳤던 남자애로 진짜 아들은 아니다)이 왔을 때 조제는 담배를 피우고 있다. 이 담배는 츠네오가 카나에와 우연히 마주치면서 행사 도우미 일을 하던 카나에에게서 받은 것이다. 비흡연가인 츠네오가 담배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안 조제는 이전과 다른 균열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 말도 없이 혼자 그 담배를 피워보면서 이 관계의 끝에 대해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츠네오가 이별을 이야기했을 때 그렇게 잘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 영화의 등장인물 ‘조제’는 프랑스 소설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한 달 후, 일 년 후>라는 소설에서 따왔다. 실제로 영화 속 조제가 몇 번이고 읽는 소설로 츠네오에게 이 작품의 후속작이 있다고 알고 있는데 갖고 있느냐고 묻기도 한다. 이 소설은 등장인물 속 애정 관계가 여러 갈래로 얽히는 내용이다. 여주인공 조제는 자크와 베르나르 사이에서 마음이 오가는 인물로 그려지기도 한다. 사랑의 끌림에 따라 매 순간 진심이지만, 동시에 사랑의 영원함은 믿지 않는 인물이기도 하다. 소설의 마지막도 사랑의 유한함과 덧없음을 말하는 대사로 끝맺음하는데, 영화 속 조제가 책을 통해 세상을 배운 인물이라는 점을 상기해 볼 때, 사랑은 언젠가 끝난다는 것을 이미 마음에 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 영화가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이별로 끝낸 것이 참 좋았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연애 끝에 헤어진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 쪽을 불쌍하게 여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혼자 남겨지는 쪽을 생각하면 왠지 이별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둘의 이야기를 이별로 끝낸다. 여느 연인들이 그러는 것처럼. 조제와 츠네오를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관계가 아니라, 평범한 이 나이대의 젊은 남녀의 관계로 보았기 때문이다. 


 연애를 해볼수록 잘 헤어진다는 게 참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이누도 잇신 감독은 이 연애의 끝을 잘 헤어지는 것으로 그려냈다. 두 사람은 동시에 이별을 인식하고 받아들였으며, 몇 개월에 걸쳐 서서히 관계를 종료해 갔다. 그래서 츠네오는 마지막 이별 인사를 하고 조제의 집을 떠나던 길에 길 한복판에서 오열한다. 자신의 곁에는 이전부터 그를 흠모했던 다른 여자가 있었음에도. 츠네오에게 조제와의 연애는 아주 진심이었던 관계, 그래서 바로 옆에 다른 여자를 두고도 이별이 슬퍼서 오열하게 되는 그런 관계였던 것이다. 그렇게 뜨겁게 사랑했던 기억이 있다는 것. 내가 진심으로 좋아했던 사람과 잘 만나고 잘 헤어졌다는 것.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는 사랑의 완성을 ‘결혼’으로 생각하거나, 이별은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연애를 했던 경험은,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했던 기억은, 그리고 그 사람과 잘 헤어지는 이별은 한 사람의 인생에 좋은 자양분이 된다고 믿는 나에게 츠네오의 연애는 참 부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엔딩에서 정말 빛나는 것은 조제가 쿵하고 뛰어내리는 마지막 장면이다. 이별 후 집에 혼자 남겨진 조제는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다. 조용하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요리를 끝낸 조제는 작업대에서 밑으로 쿵하고 뛰어내린다. 이 쿵하고 뛰어내리는 다이브는 츠네오가 조제를 처음 만났을 때 깜짝 놀란 모습이기도 하다. 그때 츠네오는 괜찮냐고 묻지만 조제는 아무렇지도 않다. 비장애인은 흔히 장애인을 볼 때 좀 더 조심스럽다. 상대가 괜찮을지, 혹시 내가 도와줘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과 불안에 휩싸인다. 하지만 조제의 이 다이브 장면은 다리가 불편한 그녀가 혼자서도 요리를 잘해 먹고 잘 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혼자 남겨진 그녀에게 ‘괜찮을까?’ 불안감을 느낀 관객에게 돌려주는 답변이기도 하다. 이 이별 끝에 혼자 남겨졌어도, 조제는 혼자서 이렇게 또 잘 살아갈 것이다. 누군가에게 사랑받았던 기억은 성인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커다란 힘이 된다. 이런 나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끝없는 긍정의 마음으로 좋아해 줬다는 기억은 그 사람의 자존감을 단단하게 한다. 어쩌면 연애의 진짜 의미는 그것인지도 모른다. 조제는 그런 점에서 아주 큰 자산을 얻었다. 이전에는 다른 여자와 대화하는 츠네오를 보고 물건을 집어던질 만큼 질투심에 휩싸이던 인물이었지만, 연애의 경험 끝에 그녀는 이별을 받아들이고, 내가 사랑했던 남자를 잘 떠나보내고, 그러고 나서도 다시 혼자 삶을 잘 이끌어갈 수 있는 인물로 바뀌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어찌 살아야 할지 막막함이 더 컸던 조제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츠네오는 오열을 해서 좋았고, 조제는 변함없이 쿵하고 떨어져서 좋았다. 예전에는 이 영화의 엔딩을 쓰레기 남자의 환승연애와 장애인 여자가 혼자 외롭게 남은 이야기로 기억했었는데, 아니었다. 



 이 영화의 감독, 이누도 잇신을 칭찬 안 할 수가 없는데, 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연애이기에 가질 수 있었던 대중의 우려와 선입견을 아주 현명하게 파괴해 나갔다. 2024년의 대한민국을 사는 우리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통해 장애에 관한 많은 이슈들을 접해봤다. 거기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주인공 우영우를 도와줘야 할 사람이 아닌 똑같은 경쟁자로 보고 치열하게 견제하는 조연에 대한 평이었다. 어쩌면 그 사람이야 말로 우영우를 장애인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동등한 사람으로 보는 비차별적인 인물 아니냐고. 그런 다양한 이야기를 접하고 있는 현재,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시대를 앞서간 작품 같다. 


 나는 이누도 잇신 감독이 두 사람의 연애담을 이별로 끝내줘서 고맙다. 상대방에 대한 의리나 책임감, 의무감으로 보지 않아서 고맙다. 그리고 장애인의 사랑에 섹스를 빼놓지 않아서 고마웠고, 그 섹스를 사랑스럽게 그려줘서 고마웠다. 두 사람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관계가 아닌, 그 시절 그 나이에 걸맞은 젊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로 끝내줘서 고마웠다. 영화 곳곳에 장애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심어두었음에도 적당한 온도와 톤으로 관계에 집중했던 감독의 선택들에 박수를 보낸다. 설령 이별로 끝날지라도 이런 연애를 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축복 아닌가. 이전보다 나이를 먹은 지금 이 영화의 가치가 새롭게 보인다. 진정 시대를 뛰어넘는 사랑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작가의 이전글 다시 보니 이 영화의 끝은 새드 엔딩이 아니었어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