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퇴근 후의 서재 Jun 13. 2024

이 모든 감정의 혼란에도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기를

영화 <인사이드아웃2>

 2015년에 개봉한 <인사이드아웃>은 여러모로 기념비적인 작품이었다. 감정을 의인화한 캐릭터를 통해 감정이 행동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우리의 내면세계는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줬다. 특히 ‘기쁨이’와 ‘슬픔이’의 모험을 통해 좋은 감정, 나쁜 감정이란 없다는 결론, 더 나아가 아이의 성장에 지표가 되는 복합 감정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아이뿐 아니라 어른들도 사랑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었다. 그런 <인사이드아웃2>가 개봉했다.      


 솔직히 처음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는 기대보다는 우려가 컸다. 대박 친 흥행작의 명성에 기대 후속작을 내놓았다가 전편의 아성마저 깎아 먹는 건 숱하게 봐온 할리우드의 나쁜 습관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1편과 2편 사이에 시간적 갭이 크다는 점에서도 우려가 컸다. 과연 9년 동안 제작진에게 어떤 할 말이 생겼던 것일까?      


인사이드아웃2 포스터

 2편은 1편의 뒷이야기처럼 이어진다. 1편을 주의 깊게 봤던 사람들, 혹은 2편 개봉에 맞춰 1편을 복습한 사람들이라면 기쁨, 소심, 슬픔, 까칠, 버럭 5개의 감정들이 라일리를 조종하는 계기판에 ‘사춘기’ 버튼이 있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1편의 내용이 끝나고 라일리에게 사춘기가 찾아오면서 내부 시스템이 달라진다. 라일리는 감정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고, 기존의 5개의 감정 외에 다른 감정들이 추가된다. 바로 불안, 당황, 따분, 부러움이다. 라일리는 자신의 베프들과 하키 캠프를 가게 되는데, 사춘기에 찾아온 다른 감정들과 함께 3일간의 캠프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것이 <인사이드아웃2>다.      


 먼저 영화 초반부를 보면 제작진이 전작의 아쉬운 점을 많이 보완하려 애쓴 점이 보인다. 1편의 결말을 이어받아 ‘모든 감정에는 역할이 있다’는 것을 초반부터 보여준다. 전작에서는 5개의 감정 중 기쁨이와 슬픔이에게만 비중을 두고 나머지 감정 캐릭터들은 조연으로만 등장했다. 대체로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사고뭉치 역할이었다. 하지만 <인사이드아웃2>는 초반에 이들 감정이 하는 역할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전작과 달리 이 모든 캐릭터들에게 비중이 분배될 것임을 암시한다. 


 2편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신념’과 ‘자아’ 형성에 관한 묘사다. 라일라의 기억을 토대로 ‘신념’이 형성되면, 그것들이 모여 ‘자아’가 된다는 것이다. 심리학 자문을 받은 것이 분명한 이 대목은 1편이 그랬듯이 우리 내면세계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시각적으로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는 <인사이드아웃2>에서 가장 중요한 설정으로 등장하는데, 기존의 5개의 감정과 새로 등장한 4개의 감정(추억 할머니라는 사랑스러운 캐릭터가 등장하긴 하지만 조조연에 불과하니 생략하자)이 충돌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사춘기 이전까지 형성된 라일라의 자아, 거기에 성장기를 맞아 새롭게 만들어져야 할 또 다른 자아. 이것을 위해 두 팀이 대립하는 구도다. 지금까지 어렸을 적의 추억을 토대로 만들어 온 자아를 유지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앞날을 위해 희생하며 만들어 가는 새로운 자아로 대체하는 것이 옳은가? 이 질문의 충돌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기존에 있던 자아가 본부 밖으로 버려지고, 5개의 자아 또한 쫓겨나면서 본격적인 모험이 시작된다. 참고로 작품에서는 이들이 갇혀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을 ‘억압’되었다고 표현했는데, 전작에서도 그랬지만 2편에서도 제작진이 사람의 심리에 대해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는지가 엿보이는 장면이었다.      


새로 추가된 4개의 감정


 하지만 전작의 세계관을 그대로 이어받은 2편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새로 등장한 캐릭터들, ‘불안’이 리더 격으로 나서는 팀의 새 구성원들로 색다른 재미를 준다고 하지만 (특히 ‘당황이’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1편이 주었던 가장 큰 묘미, 바로 인간의 내부 세계를 시각화했던 참신함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2편은 1편에서 보여줬던 세계에 새로운 추가를 했지만 기존의 세계관 안에서 움직이다 보니 전작과 같은 신선한 충격은 주지 못한다. ‘기쁨’과 ‘슬픔’의 모험을 통해 사람의 감정과 기억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줬던 1편의 가장 큰 장점이 희미해진다. 아마도 제작진 이 점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전작에 안 보여줬던 추가적인 장치들을 넣었지만, 솔직히 말해 이 내면세계 모험이라는 재미는 1편에 비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인사이드 아웃>이 미국 애니메이션다운 사랑스러운 캐릭터, 쉬운 전달력, 볼거리, 유머로만 무장된 작품이 아니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전작에서 이 모든 장치를 빛나게 한 건 메시지였다. 사람의 감정에 관한 심리학 참고 자료로 써도 괜찮을 만큼 이 작품의 가치는 그 안에 담긴 내용과 결론에 있었다. <인사이드아웃2>는 그 점에서 확연히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준다. 왜 9년이라는 시간이 걸려 1편 뒤의 2편을 내놓아야 했는지 충분히 납득이 된다. 사춘기에 들어선 라일리의 복잡한 자아 형성 과정에 있어서 제작진이 내놓은 메시지는 매우 인상적이었고, 1편이 그랬듯이 박수 칠 만한 결론을 이끌어 낸다. 개인적으로는 1편보다 더 성숙한 메시지를 담았다는 점에서 사춘기에 접어들어 그만큼 성숙해진 라일리에 걸맞은 결과물이 아니었나 싶다. 


 더불어 이 결말은 1편이 남겼던 여러 의문을 해소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작이 ‘기쁨’만이 좋은 감정이고, 그것만 존재하는 것이 좋은가?라는 질문을 던지기는 했지만, 그 이전에 인간은 과연 감정에 사고와 행동이 휘둘리기만 하는 존재인가?라는 의문이 남았다. 감정은 사람이 행동하게 하는 동기가 되지만, 그렇다고 과연 감정이 하라는 대로만 움직이는가?라는 것이다. 이 의문은 사춘기에 접어든 라일리라는 설정과 부합하여 영화의 메시지로 답변된다. 더불어 두 감정 그룹이 충돌했던 자아에 관한 질문에도 대답을 내놓는다. 이는 1편의 메시지를 ‘감정’에서 ‘기억’으로 확장한 것이기도 한데, 특히 한국 관객들이라면 더욱 공감되는 부분이 많을 것 같다. 


 아마도 가장 많이 회자될 이야기는 ‘불안’과 관련된 내용이지 않을까 싶다. ‘불안’에서 출발해 자신의 인생을 채찍질하고, 남들의 기대에 맞춰 자신이 아닌 사람으로 사는 것 같은 기분을 느껴봤다면 라일리가 겪는 에피소드들은 사춘기가 아닌 어른들에게도 많은 공감을 느끼게 할 것이다. 


 영화에서는 ‘불안’과 관련해 인상적인 대사도 있었다. 중후반부에 ‘기쁨’이 내뱉는 대사다. 


“어떻게 해야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지 모르겠어.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건가 봐. 기쁨이 줄어드는 것.”


 대사에 등장한 ‘불안’은 캐릭터 ‘불안이’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고, 실제 ‘불안’을 지칭하는 것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뇌리에 남는 대사였다. 


 참고로 이 대사를 보고 기쁨이답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 실제로 2편의 경우에는 ‘감정=캐릭터’였던 설정이 무너지는 장면이 곳곳에 등장한다. 의도한 것도 있고, 이야기 진행을 섬세하게 다듬지 못한 부분도 있다. 동시에 전작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었던 기쁨이와 인기를 모았던 슬픔이의 비중이 줄어들었는데, 그런 캐릭터적인 면에서 아쉬운 관객들도 있을 것이다.  

    

 어드벤처적인 요소와 재미는 줄었지만, 메시지는 더욱 강력해졌다. 전작의 메시지에 큰 울림을 경험했던 관객이라면 <인사이드아웃2>는 꼭 봐야 할 작품이다. 반면 상상력 풍부한 모험담을 기대한다면 이 작품은 만족스럽지 못할 것이다. 한층 성숙해진 작품의 메시지에 찬사를 보내는 바이고, 동시에 등장인물이 성취해 내는 결과물로 모든 과정과 성과, 메시지를 정당화하는 미국 영화의 나쁜 습관을 답습하지 않은 점에도 박수를 보낸다. 9년 만에 돌아온 이 작품은 그 시간만큼 현명해졌다. 사춘기가 지났음에도 영화가 내놓은 메시지에 위로받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영화를 보건 보지 않건,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도 그 위로가 전달되었으면 한다.      

작가의 이전글 다시 보니 이 영화의 끝은 새드 엔딩이 아니었어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