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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라 합리화 하는 동물이다

<사피엔스> - 유발 하라리

by 퇴근 후의 서재

인문학 서적의 베스트셀러인 <사피엔스>는 현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어떻게 지금까지 역사를 이룩해 왔는지를 인문학적 통찰로 서술한 책이다. 바로 이 ‘인문학적 통찰’이라는 표현이 중요한데, 인간이 왜 그런 행동 양식을 보였는지 탐구하는 과정은 상상과 추론을 통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지극히 인문학적이다. 그가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던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와는 정반대 지점에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근거와 학술적 데이터 안에 머물러 그 이상을 나아가길 조심스러워했던 <총균쇠>와 달리 <사피엔스>는 거침없이 상상의 영역을 펼쳐낸다. (물론, 여기에도 나름의 근거는 있다.) 그렇다고 그가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이 유명해진 것은 그의 통찰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끌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것이 그의 주장이 옳다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하지만 인류사를 통틀어 짚어가며 호모 사피엔스의 특징을 서술하려 하다 보니 지나치게 일반화하거나 비약하는 지점이 있다고 느끼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옮긴이의 말에서도 쓰여있듯, 이 책의 가치는 우리가 의식 없이 수용하고 있던 인류의 특징들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나도 이 책이 유의미한 지점이 분명히 있다고 보았고, 저자인 유발 하라리가 풀어놓는 다양한 시각에 아주 즐겁게 책을 읽었다. 유독 부실했던 올해의 독서 목록에서 단연 베스트로 올라선 책이다.


<사피엔스>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인류가 어떻게 지구를 정복한 지배종이 될 수 있었는가를 인류사를 통해 드러낸 책이다. 유사한 이름으로 기억하는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니 ‘호모 에렉투스’니 하는 종들은 우리가 ‘인류’라고 인식하는 종과 다르다.


책의 초반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호모 사피엔스를 ‘동물’과 ‘생존’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내용이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동물들과 비교해 보면 근력이 약하다. 신체적으로 우월한 점도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그리고 전체 무게의 2~3퍼센트에 불과하지만 25퍼센트까지 에너지를 소비하는 커다란 뇌를 가졌다. 이는 생존에 그리 유리하지 않은 특징이다. 그럼에도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가 되었다. 그 이유는 호모 사피엔스가 다수를 이루어 협동할 수 있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기 다른 성격을 가진 이들이 모여 집단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을 수 있는 힘, 상상 속에 존재하는 것을 믿을 수 있는 독특한 힘 덕분이라고 말한다. 종교의 이야기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나섰을 때 내 옆에 있는 사람도 함께 움직일 거라고 믿는 힘, 내가 우측으로 돌아가면 상대는 좌측으로 돌아가 협공할 거라고 믿는 힘. 거시적으로는 국가라는 개념, 그리고 경제 시스템의 경우에도 실체를 확인할 수 없으나 우리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들이다. 저자는 그 힘이 호모 사피엔스를 지구의 지배종으로 만들었고, 인류사에서 어떤 분기점을 통해 발전해 왔는지를 챕터별로 살펴본다.

<사피엔스>는 제러미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와 마찬가지로 수렵 채집기에 있던 인류가 농업 사회로 넘어간 지점에 의문을 품는다. 그는 심지어 인류 최대의 사기라고까지 표현하는데, 농업을 통해 잉여생산물이 생겨나고 인류 사회가 확장한 것은 맞지만, 농업으로의 전환은 또 다른 위험을 감수하는 행위였고 개인의 입장에서 엄청난 노동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그 전환 과정이 자연스럽지 않다고 본다. 즉,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수렵 채집 다음에 농업이 오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명 발전 단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대목에서 작년에 읽었던 <처음 읽는 바다 세계사>의 내용이 떠올랐다. 그 책에서는 수렵 채집에서 농업으로 넘어가는 과정에는 빙하기가 연관되어 있고, 빙하기가 끝나고 해수면이 올라가면서 해안에서 밀려난 인류가 부족한 먹거리를 채우기 위해 농업을 시도했을 가능성을 제기했었다. 물론 이것은 추론에 불과하다. 정말로 해수면의 상승과 연관이 있는지, 아니면 기후 변화에 따른 새로운 생태계에 적응하는 과정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저자의 주장대로 인류사의 거대한 사기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유발 하라리가 던진 의문과 추론을 따라가다 보면 거기에 자신의 생각과 추론을 덧대게 되는데, 이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이 책을 읽는 동안 인류사를 보는 시각이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외에 개인적으로 눈에 띄었던 몇 가지를 언급해 보자면, 인간의 이데올로기를 종교와 동일 선상에 놓는 저자의 시선이나, ‘인종 차별’에서 ‘문화 차별’로 바뀐 것이라는 의견, 과학 혁명은 지식 혁명이 아니라 무지의 혁명이었다는 통찰이 참 흥미로웠다.

과학 혁명 이전에는 세상의 만물은 이미 설명되어 있고 완성되어 있으나 인류는 그것을 깨우치지 못했거나, 알 필요가 없었다. 그저 신의 뜻을 따라가면 되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을 깨부수고 인간이 모르는 것이 있고, 그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한 인식의 변화가 과학의 진정한 의의라는 것이다. 모르기 때문에 과학 혁명이 일어났던 유럽은 대항해시대에 세계 미지의 땅을 궁금해했고, 알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학문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부가 창출되었다. 저자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신용’의 가치를 일깨우게 한 사건이라고 기록한다. 서쪽으로 인도를 찾아가겠다던 콜럼버스는 누구의 투자도 받지 못했지만, 결국 그가 신대륙을 발견함으로써 엄청난 부가 흘러들었다. 이때부터 유럽의 경제관념은 크게 바뀌는데, 똑같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다르게 해석했던 책을 읽었던지라 이런 시각의 차이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사피엔스>는 2014년에 발간된 책이다. 2024년의 현시점에서 보았을 때 그사이 벌어진 몇 가지 사건을 목격했다면 이 책의 내용이 조금 바뀌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AI의 비약적인 발전, 코로나 팬데믹,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이 그것이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이 2016년이었는데, 책은 그 대국을 보지 못한 채 쓰였지만 분명 AI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그 비중이 많지는 않고 초점은 다른 곳에 향해 있다. 챗GPT를 비롯해 AI가 창작까지 침범하기 시작한 현재였다면 <사피엔스>의 후반 내용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책에서 ‘제국’에 대해 언급한다. 이는 ‘제국주의’의 ‘제국’과는 다른 개념으로 각기 다른 문화와 생활양식을 갖고 있지만 하나의 거대한 집합체로 인류가 연결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여러 개의 주가 연합된 다민족 국가 미국을 떠올릴 수도 있고, EU 같은 유럽의 공동체를 떠올릴 수도 있다. 어찌 되었건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의 특징과 지역 간의 거리를 줄이는 현대 문명 때문에 제국과 같은 형태의 인류 공동체가 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실제로 세계는 근현대를 지나면서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을 이루며 상호의존적인 경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중단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 코로나 팬데믹이다. 코로나는 인류를 위협할 새로운 질병이 등장했을 뿐 아니라, 전 세계가 공동으로 유기적으로 움직인다고 믿었던 물류, 경제, 이동이 한순간에 멈출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했다. 그리고 태엽처럼 맞물린 공동체가 멈췄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준 인류사의 거대한 사건이자 유일한 실험이기도 했다. 코로나 팬데믹을 본 저자는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호모 사피엔스에 대해 회의적이 되었을까?


마지막으로 트럼프라는 대통령의 등장은 저자의 이 시각을 더더욱 흔들어놓았을 것이다. 그는 시대정신과 역행하는 방식(통합과 공존이 아닌 분열과 차별)으로 미국이라는 초대강국을 흔들었고, 결국 정치적으로 성공하여 대통령에도 당선되었다. 전 세계의 많은 정치인들은 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당선될 수 있는 획기적인 사례를 실시간으로 목격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트럼프의 당선이 현재 서구 정치의 우경화에 영향을 끼쳤다거나(그것은 동시에 진행된 것일 수도 있고, 미국 정치와는 무관하게 현 정치에 대한 불만으로 생겨난 반대급부일 수도 있기 때문에), 그 피해를 2024년의 대한민국이 가장 크게 겪고 있다는 무리한 추론을 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트럼프의 성공(대통령 당선을 의미한다)은 인류를 하나로 엮어가려는 흐름과는 전혀 달랐다. 근대 이후 강조되어 온 평등과 자애, 평화와 같은 가치들과도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도 자국에서 많은 사람의 지지를 얻었고, 이 글을 적는 현시점에도 그는 또 한 번 대통령 당선 가능성에 도전하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의 이 역행에 대해 저자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이러한 현상들이 그의 시각에 변화를 주었을까?


하지만 나는 이 질문에 대해 저자의 의견을 적극 찾아볼 생각은 없다. <사피엔스>에 담겨있는 허점처럼, 유발 하라리가 이 시대를 관통하는 어떠한 대답을 내어주리라 기대하는 것은 환상일 것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책이 짚고 있는 호모 사피엔스의 특징이 현시대에는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같은 점과 다른 점의 이유를 모색해 나가는 것이 2024년에 이 책을 읽는 우리들의 몫일 것이다. 책의 가치는 그럴 때 더욱 빛나고, 우리가 독서를 하는 이유 또한 거기에 있다. 책을 책에서 멈추지 않고, 내 것으로 소화해 나가는 과정이다.

<사피엔스>를 읽고 난 뒤 나는 한동안 생각이 복잡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힘을 가진 호모 사피엔스는 결국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으며 사는 동물’이라는 결론에 잠정 도달했다. (‘잠정’이라는 단어가 포인트다.)


누가 한 말인지, 정확한 문장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인류의 발전은 지식과 공감의 확대에 따른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아마도 이 말을 한 사람은 ‘지식’보다는 ‘공감’에 초점을 두었을 것이다. 지식의 확대로 발전한 현대의 인간 사회는 과거에 생존에 급급했던 시절과 달리 약자와 소수에 ‘공감’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한 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다. <사피엔스>에도 등장한 것처럼 무리의 이동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은 버리고 갔던 수렵 채집 시대와는 다르다. 이제는 뒤처진 이를 챙기고 함께 가도 괜찮을 만큼 안전한 사회를 구축했다. 하지만 공감 대신 ‘지식’의 확대에 초점을 맞춰보자면, 올바른 지식의 확대는 결국 모든 사람을 비슷한 방향, 비슷한 가치관으로 향하게 하리라고 생각한 적 있다. 동일한 지식이 주어진다면 동일한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저자도 비슷한 측면에서 ‘제국’의 가능성을 언급한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인터넷의 발달로 지식의 확대가 수월해진 현대에 사람들은 각기 다른 생각을 품고 산다. 그것도 과거보다 더욱 명확하며 그 종류의 수도 더욱 다양하다. 도리어 그 경향은 거세어진 듯하다. 코로나 팬데믹과 가짜 뉴스, 트럼프의 시대를 경험하면서 나는 인간이 자신의 인식 체계 안에서 믿고 싶은 것을 ‘선택’하는 동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1세기에도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코로나 백신이 전 인류를 조종하려는 게놈 프로젝트의 일환이라는 주장과, 자국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애국이라고 우기는 세상을 겪으면서 내린 결론이다. 물론 누군가의 눈에는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로 보일 것이다. 똑같은 <사피엔스>를 읽었음에도 서로 다른 결론, 서로 다른 결실을 채가는 것은 호모 사피엔스이기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을 떠나 그것이 인간이 가진 특징인 것 같다. 우리는 각자가 경험한 인식 안에서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가치로 내세우며 살아가는 동물이다.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라, 합리화하는 동물인 것이다. 그런 호모 사피엔스는 앞으로 어떤 세계를 살아갈 것인가? 유발 하라리가 상상했던 사이보그의 시대가 올 것인가? 아니면 또 하나의 분기점을 맞이한 AI의 시대로 전혀 다른 세계를 살게 될 것인가? 600페이지에 달하는 기나긴 여정을 마치고 난 뒤에도 나는 여전히 인간을 모르겠다. 10년 사이에 벌어졌던 많은 일들은 여전히 인간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나마 명확한 것은 이 책이 던진 많은 사유가 내 안에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선택’한 것들은 나의 가치관이 되어 세상을 살아가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이정표의 방향은 이 책을 읽은 사람의 수만큼 각기 다를 것이다. 나는 이 경험을 다른 사람들도 꼭 해봤으면 좋겠다. 어쩌면 이 혼란스러운 시대에서 내가 의지할 것은 계속해서 수정해 가는 나의 가치관일지도 모른다. 책을 좋아한다면,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데 새로운 시각을 얻고 싶다면 <사피엔스>를 완독해 보길 바란다. 그리고 그 속에서 당신의 많은 ‘믿음’들을 발견하길 바란다. 결국 그것이 당신이란 사람이 누구인지를 가리키는 지표가 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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