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감한 이웃 일본을 이해하는 여섯 가지 시선>
<난감한 이웃 일본을 이해하는 여섯 가지 시선>은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소속의 6명의 교수들이 각자 테마를 갖고 일본에 대해 서술한 글을 모은 책이다. 그 목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오타쿠로 들여다보는 일본의 마음 / 대중문화 편
반일과 혐한의 뿌리를 해결할 실마리 / 사상 편
보수화하는 사회와 이에 대항하는 시민들 / 미디어 편
복잡한 일본을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역사 / 역사 편
우경화되는 일본과 헌법의 상관관계 / 정치 편
가와바타 야스나리로 본 일본의 미와 전쟁 / 문학 편
흥미로운 주제들을 선정했지만 사실 만족도는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예를 들어 오타쿠의 경우 저자는 오타쿠가 어디서 유래했고, 어떤 과정을 통해 일본 사회에서 나타났는지 과정과 역사를 설명하는 수준에서 그친다. 오타쿠라는 문화 현상, 그리고 한국에서도 드러나기 시작한 덕후들에 대한 해설은 없다. 역사를 정리한 수준에 그치다 보니까 오타쿠라고 하는 사회 현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그들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한국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등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지지 못한다.
마지막 문학 편은 더더욱 한계가 보이는 챕터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라는 일본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그가 썼던 <설국>을 통해 일본의 미를 살피겠다니. 너무 올드한 이야기 아닌가? 가와바타 야스나리로 일본의 미학을 이야기한다는 시도는 일본학 쪽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온 주제다. 2018년 발행된 이 책의 주제로 옳은 선정이었을까?
두 번째 파트인 혐한을 다룬 사상 편도 문제점은 많다. 혐한은 참 기이한 현상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일본 사회 곳곳에서 들끓는 것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예를 들어 여행을 가거나 일본인들과 대화를 해보면 피부로 와닿지 않는다. 미디어와 온라인에서 혐한을 다룬 이야기가 확산되고, 서점 한 코너에 베스트셀러를 포함한 혐한 서적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해도 그것은 만들어진 현상처럼 느껴진다. 물론 실제로 혐한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어느 국가든 극우는 일정 비율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디어에서 하도 떠들어대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갖게 된 이들도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이건 일본에서만 벌어지는 특수한 현상은 아니다. 한국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우리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온갖 미디어와 온라인에서 혐중을 자극하는 내용들이 쏟아졌다. 그때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가장 뜨거운 이슈처럼 중국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토로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여전히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있지만 몇 년 전의 그때처럼 혐중의 감정이 뜨거운가? 미디어와 온라인에서 중국 이야기는 대다수 사라졌고 감정의 온도 또한 달라졌다. 혐오라는 감정은 그것을 자극하는 내용에 자주 노출될수록 부정적 감정이 커지기 마련이다. 그것은 일본이든 한국이든 세계 어느 나라든 다르지 않다. 그러니 일본에도 분명 미디어와 온라인의 영향으로 혐한의 감정을 갖게 된 이들도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 현상으로 보이는 외관만큼 뜨겁게 체감되지는 않는다.
이 온도 차를 어떻게 봐야 할까? 이것은 혹시 부풀려진 현상은 아닌가? 저자는 이러한 고민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외관으로 드러난 혐한을 그대로 수용하고 그것을 분석하는 데 주력한다. 그의 글을 따라가면 혐한은 일본 사회에서 아주 중요한 이슈처럼 느껴진다. 중간에는 <프로듀스 48>을 언급하기도 하는데 (앞서 언급했듯 이 책은 2018년 초판 발행되었다) 일본 출연진들이 온라인에서 부정적 공격을 받는 것을 염려한다. 저자는 한국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석한 만큼 이들이 상처받지 않고 미래사회의 주인공으로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이들에게 반일 언어폭력을 하지 말자고 한다. <프로듀스 48>의 미래를 아는 현재로서는 다른 차원에서 할 말이 많기도 하지만, 그전에 저자의 인식에서 한계가 엿보인다. 그에게는 이 시기에 한국은 반일의 국가이고, 일본은 혐한의 국가로 보였던 모양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한국에 <반일종족주의>란 책이 출판된 적 있다. 참 협소한 쟁점으로 사회 인식을 왜곡하는 이 문제적 서적을 굳이 언급하고 싶지는 않은데, 이 책은 발간 당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하지만 주변에 읽은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책이었다. 책은 엄청 팔렸는데, 읽은 사람은 없다. 그런데 이 현상만 보고서 한국에서 반일에 대한 비판이 뜨겁다고 할 수 있는가? 내가 바라보는 혐한이라는 일본의 사회 현상도 이와 비슷하다. <반일종족주의>가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것, 그러나 읽은 사람은 찾아보기 힘든 것처럼 혐한이란 현상에는 허수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다섯 번째 챕터, 정치 편에서 다뤄졌던 일본 헌법에 대한 내용 때문이다. 이것은 현재 친일적 정치 결정이 많이 이루어지는 요즘 한국 사회에서 눈여겨볼 만한 내용이라 생각이 들었다.
일본은 ‘군대’를 가질 수 없는 국가다. 그것을 헌법으로 명시해 두었다. 헌법 제9조, 흔히 평화 헌법이라고 불리는 그것이다.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에 패한 뒤 일본은 평화 헌법을 제정했다.
언뜻 생각해 보면 이상한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모든 나라는 군대를 갖는다. 국가가 국내 치안을 위해 휘두르는 무력이 경찰이고, 국외 치안을 위해 휘두르는 무력이 군대다. 보통의 국가들은 이 두 가지를 전부 갖추고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일본은 패전 후 군대를 갖지 못하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전범국가로 재판까지 치렀던 독일의 경우에는 군대를 갖고 있다. 그런데 왜 일본은? 이 차이는 어디서 왔을까? 어떤 논리로 평화 헌법이 만들어진 것일까?
일본의 극우파는 바로 이 지점을 건드리고 있다. 그들이 평화 헌법의 개헌을 요구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여기서 흔히 말하는 ‘보통 국가론’도 나왔다.
이 궁금증을 자세히 다룬 것이 이 책의 다섯 번째 파트다. 요약하자면 미국은 태평양전쟁 중이던 때부터 전후 처리 문제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카미카제’와 같은 자폭 공격도 그렇고, 일본 군인들이 군부에 대한 불만과 반발은 갖고 있더라도 일본의 왕(천황)에 대한 충성심이 강했기 때문이다. 패잔병이나 포로에서 풀려난 병사들이 다시 일왕에 대한 충성심으로 총을 드는 모습을 보면서 전쟁 후 일본이라는 국가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이 많았던 것이다. 맥아더가 그것을 해결한 방법은 지극히 정치적이었다. 전쟁을 처음 시작했고, 멈출 수도 있었음에도 일왕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는 것. (당시 신격화되었던 일왕에게 자신은 신이 아닌 인간이라는 고백을 하도록 하기도 했다.) 그 대신 그 밑의 군부 책임자들은 처벌하는 것. 따지고 보면 정말 이상한 결정이다. 수장은 무죄지만, 그 밑의 부하들은 유죄라니. 하지만 이런 결정은 일왕을 건드릴 경우 일본 국가 전체가 거대한 저항을 일으킬 것이라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미군정 치하에 들어간 뒤에도 일본을 통치하기 어려울 것이라 본 것이다.
하지만 일제의 침략을 당했던 국가들로서는 용인할 수 없는 결정이다. (대표적으로 중국과 필리핀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논의에 끼지 못했다.) 일본의 수장이 무죄로 그대로 살아있다면 나중에 다시 군대를 만들어서 침략해 오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정치적 타협으로 만들어진 것이 평화 헌법이다. 일왕의 무죄를 선고하는 대신 군대를 만들지 말 것. 평화 헌법은 이 매락에서 제정되었다.
그리고 이 결정은 미 군부나 맥아더 독단의 결정이 아니었다. 당시 일본 측도 일왕을 처벌하는 것에 극렬하게 반대했었고, 수상이었던 시데하라 기주로 역시 맥아더의 의중을 읽고 동일한 의견을 적극 피력했다. 그 결과 천황제 존속, 전쟁 포기, 봉건제 폐지라는 ‘맥아더 3원칙’이 나온 것이다.
다시 말해 평화 헌법은 전쟁에 진 일본이 억울하게 예외적으로 군대를 갖지 못하게 하는 결정이 아니라, 일본 측의 바람과 미군 측의 정치적 의도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양측 모두가 원해서 이루어진 정치적 합의, 그것이 평화 헌법이다.
이후 일본은 ‘자위대’라는 군대의 외관을 한 경찰 조직을 갖게 된다. 그 이유는 한국전쟁과도 연관이 있다. 일본 입장에서 보면 바로 옆나라에서 거대한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여기에 불안감을 느낀 일본은 군대만큼은 아니더라도 경찰보다는 강력한 무력 조직이 필요했고, 자위대라는 편법을 만들어냈다. 이후 일본 사회는 미국에 국외 치안을 맡길 것인지, 아니면 직접 군대를 가질 것인지 기로에 선 적 있는데, 이때 일본인들의 선택은 미군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당시 일본 사회에도 존재했던 사회주의자들이 군대로 들어가 문제를 일으킬 것을 염려했던 것도 그중 하나였다.
그러니 일본이 군대를 갖지 못한 것, 평화 헌법을 제정하게 된 것은 미국에 의한 일방적 결정이 아니라 일본 측도 원하던 결정이었다는 것이다. 일본 극우들의 주장은 논리에 맞지 않다. 보통 국가론은 타당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이 책의 다섯 번째 파트는 그것을 아주 상세하게 풀어내고 있는데 디테일한 것들을 확인하고 싶은 사람들은 직접 읽어보기를 바란다. 여기서는 전부 다루지 못한 흥미로운 내용들도 많다. 그중에는 한국이 분단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정치적 상상도도 포함되어 있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자기 국가의 역사는 부정하고 침략국의 논리에 빠진 이들이 사회 전면에 나선다. 그런데 그걸 문제라고 보지도 않는 것 같다. 이스라엘 유태인들 사이에서 과거의 나치즘을 옹호하는 이들이 나선다면 어떻게 될까? 그걸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은 뭐라고 생각할까? 당신은 그걸 보고 어떤 말을 할 것인가? 그와 유사한 상황이 요즘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때에 정확한 가치관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아는 것이 필요하다. 이 책에서 다룬 평화 헌법의 내용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