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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끊은 이유

정치 얘기는 안 하려고 했지만,

by 한박사

나라가 연일 시끄럽다. 지각 있는 국민이라면 12월에 그 어느 때보다 뉴스 및 각종 매체들을 기웃거리며 불안해하고, 또 화가 나기도 하고 그랬을 것 같다. 나 역시 평소엔 정치에 통 관심이 없는 채 지내다가 그 일이 있고 난 후부터 여러 시사 담론들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았다.


늘 그놈의 술이 문제인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스스로를 좀 더 각성할 줄 아는 무언가를 잃지는 않았을 텐데…! 물론 그렇게 된 데에도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가장 큰 게 그의 부친관계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억압하는 무언가에 대한 반발이 그렇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만나면?


하여간 나는 자신에 대한 성찰의 시간도 함께 가졌다. 사실 최근 나는 술을 끊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물론 나는 꽤 긴 시간 금주를 한 바 있다. (임신 기간, 수유 기간) 그런데 그게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확실히 건강적 이익도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내가 다시 술을 마시게 된 계기는 나의 저혈압 때문이었다. 물론 이것도 잘 먹고, 운동을 적절히 하면 나아진다. 그런데 나도 술을 마시는 게 좀 더 간편하니까 이 방법에 의존한 것 같다. (또 술을 마시면 음식이 좀 더 잘 들어간다. 해서 소식하는 사람들이나 고기 섭취량이 적은 사람들에게 의외로 좋은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는 것.)


‘남편과의 우정 혹은 연대 의식을 공유하기 위해서~’ 라는 말 같지도 않은 목적도 있었다. 근데 보니 내가 술을 같이 마셔 주면 이 사람은 흥에 겨워 더 마시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보통 내가 적게 마시니 내 몫의 일정 부분을 남편이 더 마시게 되는 것.


보통 금주나 금연은 새해의 흔하디 흔한 결심이다. 그런데 나는 좀 일찍 시작해 보기로 했다. 아직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가 남아 있다 해도 아쉬워하지 말기. 꼭 술을 마셔야 해? 무알콜 음료도 맛있는 게 꽤 많이 나오는 게 요즘이다.


한편 최근에야 트럼프가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의 80에 가까운 나이에 재기에 성공한 할아버지, 그의 승리에는 아주 사소할 수 있지만 평소 그의 금주 습관이 어느 정도는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그러니까 제대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내가 공부를 너무 하는 것이 아닌가 하면서 어떤 회의감에 빠진 적이 있었다. 적당히만 알아도 살아가는 데 지장은 없는데 왜 이렇게 쓸데없이 지식을 쌓고 있나 자괴감이 든 것이다.


그때 내가 스스로 내린 답이 이거였다. 스스로 무지하면 자기가 무지하다는 것을 모른 채로 살게 되지만, 많이 알게 되면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이 많다는 걸 깨달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무지하면 몰라도 아는 척을 하지만, 무지하지 않으면 알아도 모르는 척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


그래서 술을 끊었다. 내가 후에 더 늙어 어리석어졌는데도 너무 어리석어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하는 경지에 이르고 싶지 않아서.


남편에게 좋은 술친구가 사라졌다는 것, 그것 하나는 좀 애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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