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의 굴레
여름이 되니 아이들 등하원 하는 것만으로도 힘들다. 먼 거리는 결코 아니지만, 하루 두 번 왕복하다 보면 속옷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다. 그래서 나름 열심히 수분섭취를 해주고 있지만, 날씨가 쾌적할 때보다 지치는
건 사실이다.
나는 평소에 만보기 겸 시계를 손목에 차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내가 얼마나 많이 걷는지를 대충 알고 있다. 그런데 내가 정말 놀랐던 사실이 집 안에서 걷는 걸음수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었다. 대충 4000~5000보 정도였다. 거기다 아이들 등하원 하는 것까지 합치면 거의 매일 만 보가 넘는 기록이 나온다.
생각해 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이들이 끊임없이 어지르고, 끊임없이 요구하거나 도와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식세기나 로봇청소기 같은 문명의 이기가 있어도 아이들 손이 많이 가는 시기의 엄마는 이렇게 하루 종일 움직여야 한다. (내가 엄청 깔끔하고 살림을 정갈하게 잘하는 사람이 아닌데도 그렇다.)
남편은 어쨌든 나보다 더 털털하고, 집안일은 많이 도와주지만 나처럼 많이 움직이는 건 잘 못하는 사람이다. 어느 날 청소를 하기 위해 정리하다 넋두리를 하길래, “우린 그냥 시지푸스야. 우리가 아무리 청소하고 정리해도 다시 어지럽히고, 다시 정리하고. 그냥 이거 무한반복해야 돼.”라고 웃픈 소리를 했다. 정말 절묘한 표현이라 생각했는지 남편도 쓴웃음 지으며 반박 불가.
그런데 아직 미취학인 아이들이 정리정돈을 잘하고, 절대로 어지럽히지 않는다면 그게 정상일까? 아마 정상적인 부모라면 조금 걱정스럽지 않을까? 원래 아이들은 저렇게 엉망진창으로 놀고, 끊임없이 카오스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사실 이미 어느 정도 정돈된 체계를 갖고 있는 어른 부모에게 양육에서 힘든 부분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
문제는 남자라는 남편도 그렇게 단정하고, 깔끔하진 않다는 것이다. 나 역시 엄청 깔끔한 사람은 아니라서 오히려 다행일 수도 있단 생각을 가끔 한다. 그게 아니라면 정말 매일 닦고, 훔치고, 정리하다 하루가 다 갈 수도 있으니까. 고생은 고생대로 다 하고, 매일 잔소리에 스트레스만 쌓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남편, 그리고 두 아들까지 남자만 셋인 집. 아마 내 여생은 대부분이 끊임없는 카오스 속이 아닐까. 나는 이따금씩 이런 생각들로 지레 겁을 먹곤 하는데, 정말 생각만으로도 한숨이 나온다. 물론 대부분의 일반적인 엄마의 인생이라는 것이 그런 굴레들의 연속이겠지만… (그래서 살림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들이 참 부럽다.)
그래서 나는 일종의 마음을 다스리는 수단으로 나 혼자가 된 미래의 어느 시점을 상상해 보곤 한다. 아이들도 모두 독립하여 집을 떠나고, 남편도 사별하게 된 어느 시점을. (물론 내가 더 일찍 세상을 떠날 수도 있겠지만, 확률적으로 여자가 더 오래 사니까) 그래서 집안의 모든 것이 내가 원하는 곳에 있고, 내가 원하는 대로 먹고, 자는 그런 무한한 자유의 삶을…
내가 외로움을 많이 타기도 해서, 그런 삶이 야기하는 고독도 조금 두렵긴 하다. 그래도 어딘가 굉장히 평화롭단 생각이 들면서 지금의 이 카오스적인 생활에 위안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사람이 결국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다.) 대체로 건강하게 장수하는 여자들이 미혼이거나 일찍 사별한 경우가 많은 것도 우연은 아닌 듯?! 식구들의 뒤치다꺼리가 그렇게 힘든 것이다.
무더위에 지쳐 잘 먹으려고 노력하지만, 그 과정의 일환으로 또 내가 열심히 움직여야 하고, 식탁에서 아이들의 야단법석을 받아들여야 하고, 또 열심히 정돈해야 하는(그래도 이 과정은 남편이 많이 도와준다) 일들이 연이어 있어 입맛이 뚝뚝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양육과 살림에 다소 압도되었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내가 “시지푸스”임을 이미 받아들였다. 다만 나는 신화의 내용처럼 신에게 잘못을 저지르진 않은 것 같다만…?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으면서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된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일까? 지극한 행복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르는지도. 결국은 다시 떨어질 바위여도 열심히 굴려야 한다. 그나마 내가 시지푸스보다 나은 건 언젠가는 이 형벌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땐 또 지금의 카오스적인 생활을 그리워할지도 모르겠지만.
역시 다 가질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