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어리석음
우리집은 3녀 1남. 막내인 아들을 낳기 위해 딸을 셋이나 낳은 집이다. 전적으로 친정엄마의 남아선호사상이 그와 같은 대가족을 이루게 했다고 본다. (친정아빠는 딱 둘만 낳자고 했는데, 엄마가 끝끝내 두 번의 임신을 더 했다고 한다.) 좀 더 커서 생각해 보니, 그 시대엔 흔했던 여아 낙태를 하지 않고 온전히 딸들을 다 낳은 건 어쩌면 고마운 일인지도. (하지만 3번째 임신의 경우엔 주변에서도 지우라는 말들이 많았다고…)
무튼 그렇게 귀하게 얻은 아들이 나름 잘 컸다. 그러니까 공부를 잘해서 좋은 직업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엄마의 입장에선 태어나 준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가문의 영광이 되어준 것이다. 무얼 주어도 아깝지 않은 우리 잘난 아들인 것이다.
남동생에 대해서는 누나들 역시 자랑스러웠고, 엄마의 그런 편심을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 그에게도 어떤 단점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그러니까 눈치가 없었다. 그래서 가끔 뒤에서 욕을 먹거나, 누군가와의 관계가 오래 이어지지 않는 그런 경향이 있어 보였다.
그런데 또 비슷한 여자를 만나 결혼하였고, 가끔 누나들이 좀 서운해하거나 기분 상하게 만드는 일들을 벌이곤 했다. (어쩌면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누나댁에 방문했는데 빈손으로 와서 놀고먹고만 간다든지 하는…) 그럼에도 엄마에게서 받은 편심 때문인지 그런 버릇은 좀체 고쳐지지 않은 채로 나이를 먹어 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어떤 바람이 불었는지 집을 사겠다고 했다. 일찍 결혼해서 결혼한 지 10년도 넘었는데, 내가 봤을 때 사려고 마음만 먹었으면 그전에 샀어야 훨씬 싸고 이득도 보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너무 비싼 시점에서 매매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돈이 부족했다. 나름 고연봉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모아 놓은 돈의 두 배가 넘는 집을 사려다 보니 부모에게도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엄마는 당연히 백프로 도와주고 싶어 했고, 아들의 결정을 지지했다. 그런데 사실 엄마도 현금이 부족했다.
돈자랑은 하는 게 아니라고 했던가. 엄마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우리에게 SOS를 쳤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엄마가 아들에게 얼마를 지원해 주는지 알게 되었고, 그건 따지고 보면 나에게 증여한 액수의 몇십 배는 되었다. 그런데 사실 중요한 건 “우리돈”이라 하지만, 그 대부분은 남편에게서 비롯된 “사위돈”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쯤에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사위가 무슨 호구인가?!!
나는 부모가 어느 자식을 더 예뻐하고, 그래서 얼마나 더 도와주고 그러는 것에 대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니까 전적으로 부모의 자유라고 생각한다. 뭐 어쩌겠는가. 나도 부모가 되어 보니 어떤 놈이 좀 더 맘에 들고 그런 게 있는데… 그러나 다른 자식에게 부담이나 피해를 주면서까지 한 자식만을 챙겨주려 한다면 그건 선을 넘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기가 사위와 장인장모는 엄연히 남이고, 내가 우리 시누이를 “가족”이라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남편에게 처남은 완전 남남이다. 여기서 나는 우리 엄마의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착한 사위라도 이런 상황이라면, 바보도 아니고 기분이 나빠지게 된다. 본인에게는 끔찍한 자식이라도 형제들에겐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그 형제의 배우자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왜 그걸 생각하지 못하셨을까.
내가 남편의 입장이라면, 그러니까 좀 더 덜 관대한 사람에게 이런 상황이 생겼다면, ‘저 처가 정말 빌런이네!’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남편이 어디까지나 이 상황을 감내하는 것은 그들이 사랑하는 아내의 가족이라는,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되려 남편에게 미안해졌다.
하여간 이렇게 생각을 정리해 보니, 우리 친정 참 염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뭐 이렇게 말하면 내 얼굴에 침 뱉는 꼴이지만, 최대한 상황을 객관화시켜서 보니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나중에 저러지 말아야겠구나 하고 배운다.
처음엔 지 분수에 맞지 않는 선택을 한 동생에게 화가 났으나, 생각해 보니 엄마가 가장 잘못한 것 같다. 아니, 엄마가 그렇게 키운 것이 잘못이다. 그래서 나는 돈을 빌려주긴 빌려주더라도 엄마에게 따끔한 쓴소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형제들이 점점 더 소원해지는 이유, 아마 잘 생각해 보면 그 뒤에는 부모라는 존재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