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달달한 로맨스 끌려서 선택한 드라마 '엄마친구아들' 전소민도 정해인도 별로 안 좋아하는데 왜 갑자기 끌렸나 몰라? 연말이라 좀 달달하고 싶었나 본데 진짜 큰 코 다칠 소리! 사랑 이야기 로맨스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진짜 진심 가족 드라마 그 자체였다.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그랬다.
석류, 승효, 모음 세 단짝의 우정 이야기와 그들의 가족 이야기, 그리고 석류와 승효의 사랑 이야기
석류의 성장통이 참 가슴 아팠다. 처음엔 단순히 이 사람의 우울증에 공감을 했고, 다음엔 꿈을 찾아가는 과정에 집중했고, 마지막으로 엄마로 인한 상처에 오열했다. 그리고 궁금했다. 이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나갈지 너무너무 궁금했다. 나도 해결하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밤새 쉬지 않고 드라마를 봤다. 그리고 아주 펑펑 울어서 눈이 팅팅 불어버렸다. 그런데 참.. 그렇더라
역시 드라마는 드라마였다. 한 번의 큰소리 한 번의 소통으로 말끔히 해결! 나도 이전에 소리쳐봤는데 한 번으로 해결될 리가 없지. 석류가 파혼을 하고 백수가 되어서 돌아왔는데 엄마가 창피해했다. 말로는 너를 위해지만 알고 보면 자신의 자존심이자 삶의 이유인 딸이 아무것도 내세울 수 없었기 때문이겠지. 내가 서울에서 대구로 돌아와 엄마랑 같이 동네 시장을 갔을 때랑 같았다. 아직도 서울에 있는 척 백수가 아닌 척 대구 잠깐 온 척 엄마의 머뭇거림과 대답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거 보니 나는 꽤 슬펐나 보다. 내가 아주 잘못된 일을 한거 같은 기분이 들고 나의 자존감과 자존심은 그렇게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나 보다. 나는 그저 허울뿐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던 걸까. 그냥 있는척하고 살았다. 자존감이 높은 게 아니라 그냥 자존심만 엄청 내세우고 그럴듯한 말을 하면서 합리화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리고 꿈을 잃었다. 원래도 없었던 꿈 이젠 어떻게 찾는지도 모르겠다. 옛날에는 한없이 모든 걸 해보고 싶어 하는 반짝이는 사람이었던 거 같은데 그렇게 빛을 잃어갔다. 처음에는 그런 줄도 몰랐다. 그냥 현실에 타협하며 평범하게 살고 있는 사람1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모든 것을 이겨내고 감정적이지 않고 이성적인 사람으로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다. 나는 나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참 나는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더라. 아픈 줄도 모르고 괜찮다 세뇌하며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이더라. 반짝거림이 사라지고 있는 걸 하나도 눈치채지 못하고 그냥 살아만 있는 사람이었더라. 그걸 참 빨리도 깨달았다. 이젠 어떻게 다시 반짝여지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또 살고만 있다.
다음은 승효네 이야기 부잣집 아들에 돈만 있고 다 없는 가족이라고 했다. 참 서글프지만 우리 가족은 돈까지 없다. 사랑은 당연하고 배려도 매너도 기본도 돈도 없다. 돈이 있으면 뭐라도 더 생겼을라나 암튼 아무것도 없다. 와중에 석류네는 돈이 없어서 서글픈 상황들이 나온다. 그건 또 석류 네에서 공감하게 되더라. 참나.
승효네 부모님이 이혼을 한다고 한 후 승효가 엄마 아빠한테 말을 했다. 처음으로. 34살이 먹었는데도 아직도 엄마 아빠랑 밥을 같이 먹고 싶다고 엄마 아빠 앞에서는 그저 아이가 되어 버린다고. 엄마의 아빠의 삶을 존중하지만 나는 아직도 엄마 아빠가 잘지냈으면 좋겠다고. 이혼한다는 그 말에 상처를 받는 아이라고.
그러게나 말이다 32살이나 먹은 나도 아직 엄마 아빠의 관계에 일희일비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다. 빨리 끝나버렸으면 좋겠는데 여전히 전전긍긍하고야 만다. 34살이 된 승효도 아직 그렇다는데 나도 33살이 되든 34살이 되든 똑같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는 알다가도 모르겠는 것도 아니고 그냥 모르겠다. 이 정도면 안 보고 살고 싶은데 그것도 못하겠다. 그놈의 유교사상에 세뇌된 나란 사람아. 만나서 좋은데 만나서 싫다. 엄마 아빠가 잘지내면 좋겠는데 그냥 이대로 지내다가 이혼했으면 좋겠다. 엄마가 좋은데 엄마가 싫고 아빠는 싫은데 아빠가 불쌍하다. 하나도 이해하고 싶지 않다 포기하고 싶다 생각하는데 마음대로 되지도 않는다.
진짜 어렵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도 싫어진다. 언제까지 일희일비 할 거냐고 나를 다그치게 된다. 그래서 결국 나 혼자 지쳐서 생각하길 포기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손 놔버린다. 어짜피 내가 생각해 봤자 그들은 바뀌지 않을게 뻔하니까. 근데 나는 고통을 받는다구요. 엄마씨 아빠씨 제발 내가 생각하지 않도록 해주세요. 매일 밤 빌어도 여전히 똑같다. 그냥 나만 생각하고 있는 거 같아서 갑자기 짜증과 억울이 몰려올 때도 있다. 그럼에도 어쩌겠는가 결국 가족이고 부모다. 이런 관계가 난 참 싫다.
마지막 모음이네 이야기. 참 이 가족 이야기까지 내 이야기일 줄이야. 이거 뭐 작가가 나를 모티브로 쓴 거도 아니고 드라마를 보면 볼수록 어이가 없더라. 울면서 봤는데 마지막은 짜증이 나더라. 모음이 집은 아빠가 안 계신다. 어릴 때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래 나도 그렇다. 나는 친아빠가 아주 어릴 때 내가 기억나지도 않을때 돌아가셨고 엄마는 재혼을 했다. 아 이건 다르다. 모음이는 여전히 아빠가 없다. 엄마만 있다. 나도 그러고 싶다 차라리. 모음이는 사고로 가족을 잃고 혼자 남은 조카를 키우며 아빠가 된 강기자를 좋아하게 된다. 그리고 모음이 엄마는 아주 큰 반대를 하게 된다. 나처럼 힘든 길 가지 말라고 뻔한 불구덩이 속으로 가지 말라고. 흠.. 그러고보면 아빠는 내가 있음에도 엄마랑 살게 된 게 불구덩이인줄 모르고 왔을까. 갑자기 궁금하네.
암튼 모음이네 엄마를 보면 우리 엄마가 생각나더라. 어떻게 살아왔을지 나도 아니까 슬프더라. 우리 엄마도 모음이 엄마처럼 나한테 그랬다. 월급 따박따박 받으면서 제구실하는 사람 만나라고, 언제 결혼할지 모르겠으면 빨리 헤어지고 다른 사람 만나라고, 괜찮은 집안인지 무슨 일하는지 잘 보고 똑똑하게 생각하라고. 엄마 보면 알지않냐고 자신처럼 그렇게 살지 말라고. 내가 결혼에 관심 없다니까 자기 때문이냐며 자기 때문에 그런 거냐며 그런 소리도 했다더라. 참나 그런 생각도 안 했는데 왜 혼자 멀리까지 갔나 몰라. 이런 게 자격지심이란 거겠지. 우리 엄마도 참 많이 아프고 있겠구나 싶다.
엄마랑 딸의 관계는 도대체 뭘까. 거의 뭐 자웅동체 수준. 왜 이렇게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지 모르겠다. 아직도 한 몸인 줄 아나. 빨리 탯줄 자르듯 끊어내버려야 나도 엄마도 각자 숨 쉬고 살텐데 말이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석류랑 승효랑 모음이는 다 해결되던데 나는 언제쯤 해피 엔딩을 맞이 할 수 있는걸까
하.. 드라마 보면서 이렇게 기 빨리긴 오랜만이다. 요즘 눈물도 많아졌다. 펑펑 열심히 울고 나니 기력도 없고 아직도 물속에 잠겨서 먹먹하게 있는 기분이다. 작가명대로 진짜 물고기냐구요. 언제까지 또 검은 바닷속을 헤맬지 알 수 없어 참 답답하다. 알고 있어도 안되는거보면 진짜 나 병일까? 의구심도 가져본다. 연말이라고 좀 상큼해보려다가 되려 우울감이 몰려와서 지금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이래서 함부로 뭘 보면 안 된다 요즘.
드라마 주인공들처럼 빨리 회복하고 빨리 해결하고 빨리 행복해지고 이러면 얼마나 좋아. 그들은 자기 가족 이야기 하나만 해결하고 사랑만 하면 되는데 나는 왜 세 가족을 축약해놓은 사람이 되어서 해결도 못하고 이렇게 머물러만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쉽게 생각이 고쳐지지 않는다. 다들 이렇게 산다던데 다들 정말 이렇게 살고 있나? 생각이 몸을 지배해 뜬눈으로 밤을 또 지새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