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11장 8~9절
호세아 11장 8~9절
8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히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9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나타내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네 가운데 있는 거룩한 이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성경 속 선지자 중에서 가장 해괴한(?) 명령을 받은 선지자를 꼽으라 한다면, 단연 호세아가 1등일 것이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신탁을 받는 선지자였는데, 문제는 그 내용이 가관이었다.
"너는 음란한 여인을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아라!" (호 1:2)
하나님은 왜 이런 명령을 내리신 걸까? 이는 당시 우상 숭배가 만연한 이스라엘에 대한 주님의 진노와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신탁이다. 즉 주님은 "호세아야, 너의 삶을 통해서 직접 내 심정을 느껴봐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신이 그리 말씀하시는데 뾰족한 수가 있나, 호세아는 그대로 소문난 음녀 '고멜'과 결혼식을 올린다. 그 뒤로 그의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다. 아내는 툭하면 바람나서 도망가지, 그때마다 도망간 아내를 데려오려고 값을 지불하지, 독박 육아에 시달리지......
심지어 하나님은 한술 더 떠서 자식들의 이름까지 이상하게 지으라 하신다. 장남 이스르엘은 '다가올 심판의 표징'이라는 뜻이고, 고명딸 로루하마는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자', 막내아들 로암미는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이는 곧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 그 자체였다. 우상 숭배와 외세에 의지하는 사대주의에 빠지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이스라엘을 결코 용서치 않겠다는 주님의 뜻이 담긴 작명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태도를 돌이켜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나는 너희에게 화내면서 다가가지 않겠다"라고 선언하신다. 아니, 방금 전까지 실컷 이스라엘을 저주하겠다고 하셨으면서 단 몇 장(?)만에 전면 철회하시다니. 아무리 하나님이라지만 변덕이 죽 끓듯 하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구절을 잘 읽어보면, 사실 그 어떤 구절보다도 '신'으로서의 하나님이 드러나는 구절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노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흔히들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만약 상대방이 어찌 돼도 상관없는 생면부지의 타인이라면 그 사람이 내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그에게 호통을 치거나 화낼 필요는 없다. 같은 맥락으로 부모는 자식을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자식이 어긋나지 않도록 사랑의 매를 기꺼이 든다. 이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전심으로 회개하고 돌아오길 바라셨기에 그들에게 진노의 잔을 쏟아부으신 것이다.
당연히 이 진노는 영원하지 않고, 결국 끝에는 자비와 회복이 약속된다. 아무리 아이가 미워도 때려죽이는 부모는 없듯이 하나님은 마침내 이스라엘을 용서하고 다시금 사랑하겠노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그에게서 떠났음이니라(호 14:4)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신이셨다. 사실상 이스라엘을 완전히 멸망시키고 아예 다른 민족을 창조할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악을 벌하는 것은 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신에게는 징벌과 진노와 반대되는 측면, 즉 사랑과 자비의 면모 또한 존재한다. 인간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짓거리조차 용서하고 무한한 자비를 베푸는 아가페와, 동시에 그가 저지른 범죄를 확실히 기억하고 보복하는 진노. 그 양면성이야말로 신 그 자체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그 두 가지 면모를 모두 발휘하셨다. 은혜를 원수로 갚은 이스라엘을 벌하는 동시에, 그들의 죄를 사하고 사랑하겠다는 언약을 내리신 것이다. 하나님은 내면에 들끓는 진노를 사랑으로 압도하시고, 호세아의 가정을 회복시키셔서 이를 표징으로 삼아 이스라엘에게 마음을 돌이켰다. 하나님은 벌하실 때는 확실히 벌하시지만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시는, 확실한 사랑의 주님이시기도 하다.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진노를 느낄 때가 종종 있다. 불행한 일을 맞닥뜨리거나 일이 잘 안 풀릴 때, 옛날에 저지른 일이 생각나면서 "혹시 이것 때문에 하나님이 노하신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하지만 거기서 의기소침하지 말자. 그런 생각에 잡아 먹히면 지레 겁을 먹고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기 마련이니까. 일이 잘 풀리든 안 풀리든, 하나님이 우리 삶을 이끄신다는 사실을 믿고 의지하면 그 모든 것이 결국에는 최선의 결과로 이어짐을 믿어야 한다. 즉 진정한 크리스천이라면 자비와 사랑의 하나님도 믿어야 한다.
그러니 있는 힘껏 회개하고 있는 힘껏 하나님께로 돌아오자. 하나님의 사랑에 기대어 나아가면 주님은 반드시 진노를 풀고 회복을 약속하신다. 방황하던 탕자가 돌아갔듯이 우리도 여호와께 돌아갈 시간이다.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사랑의 주님에게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