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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용 May 18. 2021

[역대 UEFA Euro Champion 리뷰] 1편

붉은 군단, 초대 유로를 제패하다.

1960 European Nations' Cup 챔피언 소련


개최지: 프랑스
본선 대회 기간: 1960년 7월 6일 ~ 1960년 7월 10일
참가국: 소련, 유고슬라비아, 프랑스, 체코슬로바키아


머리말


2020년에 하기로 했던 UEFA EURO 2020은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로 인한 락다운으로 1년 뒤인 2021년에 개최하게 되었다.

그리고 2021년 6월 11일 개막하며 터키와 이탈리아의 경기가 열린다. 그렇다 유로 2020까지 약 한 달 남은 것이다.

그래서 유로의 역대 챔피언을 리뷰하는 컨텐츠를 하려고 한다. 월드컵처럼 전 세계인의 축제라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축구 팬들에게는 유로 역시 월드컵 못지않은 큰 행사다.


소련이 우승하기까지



유로는 본래 1960년에 유러피언 네이션스 컵이란 이름으로 개최되었다.

이 당시에는 예선 토너먼트를 거쳐 올라온 네 국가 중에 한 국가에서 개최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소련은 헝가리를 제압하고 스페인의 기권을 받아 진출했으며 프랑스는 그리스와 오스트리아를 제압하고 진출했다. 그리고 체코슬로바키아가 덴마크와 루마니아를, 유고슬라비아는 불가리아와 포르투갈을 제압하고 올라왔다. 영국의 네 개 협회와 서독, 이탈리아, 스웨덴은 예선에 참가하지 않았다.

프랑스, 유고슬라비아, 체코슬로바키아, 소련 중 개최국은 프랑스로 정해졌다.

4강전에서는 소련이 체코슬로바키아를 3-0으로 대파했으며 유고슬라비아는 프랑스를 5-4로 간신히 이기고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전에서는 소련과 유고슬라비아가 맞붙었다.


결승전 양 팀 주장 이고르 네토와 보라 코스티치, 사진출처:Football Makes History


선제골은 유고슬라비아 측에서 터졌다. 전반 43분에 보라 코스티치의 크로스를 받은 예르코비치의 슈팅이 야신에게 선방에 막혔으나 밀란 갈리치가 세컨드 볼을 따낸 뒤 침착하게 슈팅해 득점했다. 전반전은 0-1로 유고슬라비아가 앞섰다.

그 뒤 후반 4분에 조지아 출신 윙어 메트레벨리가 세르비아의 왼쪽 진영을 단독으로 드리블 돌파를 한 뒤 기가 막힌 슈팅으로 동점골을 뽑아냈다. 그 뒤 유고슬라비아의 맹공을 야신이 모두 박아내며 양 팀은 연장전에 돌입한다. 특히 세큘라라치의 크로스를 빠르게 차단한 야신의 플레이에선 경이로움이 느껴졌다.

연장전에 돌입하고 유고슬라비아 측의 결정적인 찬스를 야신이 무산시켰으며 연장 후반 8분에는 조지아 출신의 아웃사이드 레프트 메스히의 크로스를 센터 포워드인 빅토르 포니델리크가 헤딩으로 넣었으며 그 골이 승부를 가르며 유럽 초대 챔피언은 소련이 되었으며 유고슬라비아는 올림픽 3회 연속 준우승을 포함해 메이저 대회 네 번째 준우승을 거두며 눈물을 삼킨다.


우승국 소련은 어떤 팀이었을까?


브라질이 4-2-4로 1958 월드컵을 제패했지만 아직 유럽에서는 WM 시스템이 대세로 자리 잡던 시절이다. 1960년에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낸 레알 마드리드도 그랬고 유로 결승에 올라온 소련과 유고슬라비아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소련은 견고한 세 명의 수비수와 측면과 중앙을 오가며 수비하는 하프백을 뒀으며 인사이드 포워드와 아웃사이드 포워드, 즉 윙어와의 스위칭을 바탕으로 상대 수비수를 괴롭혔다.

소련 대표팀 라인업


감독: 가브릴 카차린


사진출처: 법정스님의 소유



소련의 황금기의 시작을 알린 감독이다. 야신을 발탁해 적극 기용하며 올림픽 금메달을 땄으나 1958 월드컵에서 8강에서 탈락하며 사임했다. 이후 다시 돌아와 소련을 초대 유럽 챔피언으로 올리며 부활했다. 그의 전술은 중유럽의 다뉴브 학파의 영향을 많이 받아 스위칭 플레이를 선호했지만 최전방 공격수까지 스위칭 플레이에 동원하지는 않았다.






골키퍼: 레프 야신 (디나모 모스크바)


사진출처: 법정스님의 소유


1929년 10월 22일생 (결승전 당시 30세)


자타공인 당대 최고의 골키퍼이자 역대 최고의 골키퍼, 예선부터 결승전까지 빼어난 선방으로 팀의 승리에 공헌했다. 특히 결승전에서의 활약은 대단했다.

초대 유로의 올스타팀에 선정되었으며 우승팀인 소련 대표팀에서 유일하게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들었으며 1960년 발롱도르 5위를 기록했다.




라이트 풀백: 기비 초헬리 (디나모 트빌리시)

1937년 6월 27일생 (결승전 당시 23세)

조지아 출신이며 1960년대 상반기 소련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이었다. 제공권에 강점이 있었으며 수비 기술이 훌륭했으며 굉장히 침착했으며 센스가 대단했다. 1960년에 처음 국가대표팀에 발탁됐음에도 긴장하지 않고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레프트 풀백: 아나톨리 크루티코프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1933년 9월 21일 (결승전 당시 26세)

유러피언 네이션스 컵 전후로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선수로 수비 전 지역에서 활약할 수 있었던 선수다. 훗날에는 리베로에 정착한다.


센터 하프: 아나톨리 마슬론킨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1930년 6월 29일 (결승전 당시 30세)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에서 소련 탑 리그를 세 번이나 우승한 소련 수비의 주축이다. 1956년 멜버른 올림픽 금메달 때부터 활약했으며 이 대회에서는 수비라인의 리더로 수비진을 조율했다.


라이트 하프: 유리 보이노프 (디나모 키예프)

1931년 11월 29일 (결승전 당시 28세)

디나모 키예프의 레전드이자 당대 유럽에서도 이름을 날렸던 하프백으로 네토와 함께 소련의 황금기의 서막을 알렸다. 강인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견고한 수비력을 보여줬으며 넓은 시야에서 나오는 뛰어난 패싱력도 겸비했다. 유로에서도 네토와 함께 상대 중원을 완벽하게 잡아먹었으며 유럽 최고의 하프백 중 하나인 체코의 마소푸스트도 그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레프트 하프: 이고르 네토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사진출처: 법정스님의 소유


1930년 1월 9일 (결승전 당시 30세)


당대 유럽 최고의 하프백 중 한 명이며 보이노프와 함께 소련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하프백이다. 창의적인 플레이메이커이자 견고한 수비수였던 그는 뛰어난 전술 이해도를 바탕으로 레프트 백에서도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으며 뛰어난 리더십으로 유로에서도 주장을 맡았고 상대 중원을 완벽하게 요리하며 초대 유로의 올스타팀에 선정된다.





아웃사이드 라이트: 슬라바 메트레벨리 (토르페도 모스크바)

사진출처: 법정스님의 소유




1936년 5월 30일 (결승전 당시 24세)


조지아 출신의 양 날개의 오른쪽 날개로 빠른 스피드와 정교한 드리플을 활용한 돌파 능력으로 이름을 날렸다. 유고슬라비아를 상대로 결승전에서도 동점골을 넣으며 팀에 우승에 크게 기여하며 초대 유로의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인사이드 라이트: 빌렌틴 이바노프 (토르페도 모스크바)

사진출처: 법정스님의 소유



1934년 11월 19일 (결승전 당시 25세)

인사이드 포워드, 즉 오늘날의 공격형 미드필더나 처진 스트라이커의 위치에서 뛰었으며 측면 공격수와의 스위칭 플레이에도 능했다. 1956년 멜버른 올림픽 금메달부터 소련 황금기의 전반기를 이끈 공격의 핵심이다. 유로에서도 메트레벨리와 함께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며 초대 유로의 올스타팀에 선정되었다.




센터 포워드: 빅토르 포니델리크 (SKA 로스토프)

1937년 5월 22일 (결승전 당시 23세)

소련 대표팀의 최전방을 맡았던 공격수다. 강한 피지컬 능력으로 제공권 싸움에 능했으며 결승전에서는 메스히의 크로스를 받아 헤딩으로 득점하며 팀의 우승에 방점을 찍었다. 이 공로로 초대 유로의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인사이드 레프트: 발렌틴 부부킨 (로코모티브 모스크바)

1933년 4월 23일 (결승전 당시 27세)

1960년 전후로 짧은 전성기를 이끌었던 인사이드 포워드였다. 유로 결승에 출전하며 우승에 힘을 보탰다.


아웃사이드 레프트: 미하일 메스히 (디나모 트빌리시)

1937년 1월 12일 (결승전 당시 23세)

조지아 출신의 양 날개의 왼쪽 날개로 좌측면의 가린샤, 소련의 가린샤라 불렸던 선수다. 기술적인 드리블 능력을 활용한 폭발적이 돌파력을 앞세워 상대의 오른쪽을 허물었다. 유로에서도 메트레벨리와 함께 상대의 측면을 허물었으며 결승전에서는 포니델리크의 결승골을 날카로운 크로스로 도왔다.


결론


소련은 이 우승으로 1960년대 초반 유럽을 대표하는 강호로 자리 잡았으며 레프 야신은 자타공인 최고의 골키퍼의 자리를 더 확고하게 한다.

조지아의 양 날개도 이 대회로 이름을 날렸으며 이바노프와 네토, 마슬론킨도 커리어의 방점을 찍었다. 이후 소련 축구는 1972년 유로까지 유럽을 대표하는 강호로 자리매김한다.


사진 윗줄: 야신, 네토, 포니델리크, 보이노프, 초헬리, 이바노프

사진 아랫줄: 쿠르티코프, 부부킨, 마슬론킨, 메트레벨리, 메스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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