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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presario Oct 27. 2021

분권의 관점에서 지역문화 생태계를 생각한다.

 용어가 이해관계와 맥락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도 있다. 지역문화 생태계를 둘러싼 ‘분권’이 그러하다. 일반적으로 ‘문화분권’은 중앙정부의 획일적 정책에 대한 지역문화의 고유성과 독자성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의 자율성에 대한 요구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지역으로 이 논의를 가져오면 행정-중간지원기구-시민·예술가-이해관계자들 간 권한과 역할 분담의 측면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용어의 사전적 정의를 먼저 살펴보자. 분권(分權)은 이익(利)나 힘(力), 즉 권리와 권력을 나누는 것이다. 영어로 decentralization이다. 소수 사람, 계층, 집단의 권력 집중화(centralization)를 부정, 반대하는 (de)것을 의미한다. 권한이 한 곳에 모여 있는 상태에서 집중을 배제, 분산을 지향하는 것이 바로 분권(decentralization)이다. 


 지역 내 문화 분권은 문화 생태계 간 권한의 분산을 통한 권한 위임(empowerment)의 과정으로 구체화될 수 있다. 분권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권한 위임에 대한 지역문화 생태계 별 합의가 필요하다. 권한 위임의 과정을 행정이 주도하면 거버먼트(government)가 될 것이고, 풀뿌리 생태계 주체들이 적극적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하게 된다면 이야말로 지역문화 거버넌스(governance)가 형성되는 것이다. 권한 위임은 ‘갑’과 ‘을’의 계약적 관계가 아니다. 지역문화 생태계 주체들에게 더 많은 권한과 의사결정권을 부여하고 관리·감독을 줄이는 것이다. 세계 최대 콘텐츠 기업 넷플릭스의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가 그의 저서 ‘규칙 없음’에서 창의적 일을 하는 집단은 구성원들의 임파워먼트와 관리·감독을 위한 규칙과 규정의 최소화를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지역문화 생태계 주체들의 권한 위임은 공론화의 과정을 통해 명확한 역할 분담을 필요로 한다. 그 기준은 누가 더 전문성을 가지고 효율적으로 공공적 가치를 잘 실현 수 있는가이다. 역할 규정을 통해 권한을 위임받은 행정-중간지원기구-예술가·시민들은 동등한 파트너십을 추구해야 한다. 문화 거버넌스의 관점에서 문화 자치를 수용해야 한다. 경계할 점은 회의 횟수, 참여 인원, 특정 단체 및 계층 중심의 형식적 거버넌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자칫 소수의 특정 그룹이 이끄는 거버넌스는 ‘내가 하면 거버넌스, 네가 하면 거버먼트’의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도 있다. 공론장은 그야말로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공개적이어야 하며, 어젠다 중심의 다층적이고 다면적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공론의 장을 통한 의사표현과 결정이 문화 자치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 지역문화 생태계에 이런 경향이 미진해 보이는 것은 못내 아쉽다.


 문화분권과 자치의 관점에서 독일과 일본의 문화정책 사례가 눈에 띈다. 독일과 일본의 경우는 법과 제도로 지역문화 분권, 특히 시민문화의 자치를 지원하고 있다. 독일은 분권에 기초한 문화 연방주의 전통이 두드러진다. 나치 시대를 거치며 권력이 한곳에 집중되면 국가적 위기를 불러온다는 집단적 자성에서 이러한 전통은 더욱 강해졌다. 문화정책 역시 분권과 자치의 관점이 철저히 반영되었다. 지역문화 분권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문화적 욕구와 의사를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문화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다. 중앙집권이 아닌 분권을, 문화예술인과 시민은 문화 자치를 보장받고 있는 것이다. 

 일본 지역문화정책의 특징은 그동안 행정 주도에 의한 하향식 방식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지역사회의 자발성과 자율성을 강조한다. 문화 자치는 각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진흥계획에서도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역문화 창조의 주체는 시민이고, 시민의 자주성, 주체성의 존중을 바탕으로 행정은 그 기반 만들기와 지원 정책을 정비한다는 것이 지방자치체 문화진흥의 기본원칙이다. 또한, 일본의 문화 자치는 문화예술 표현의 자유에 기반한다. 예컨대, 도쿄도는 문화 조례의 기본원칙으로 「문화 내용에 개입하거나 간섭하지 않도록」하는 규정을 명문화하고 있다. 문화의 본질론적 측면에서 ‘자유’, ‘자립성’, ‘주체성’의 존중이야말로 문화정책 입안과 추진의 기본적 원칙인 점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분권, 권한 위임, 자치만이 강조되는 지역문화 생태계는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가진다고 할 수 없다. 무엇보다 문화 주체별 ‘책임성’과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공공지원은 세금으로 조성되었기에 그 지원금이 누가, 무엇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쓰이는가에 대한 설명 책임을 가진다. 운용의 책임성이 강조되는 것이다. 지역문화 생태계 주체들은 공공성을 바탕으로 문화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확산해야 할 책임이 있다. 또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개·공유함으로써 운영적, 재정적 투명성을 지역사회 이해관계자들에게 제공하여 신뢰성을 확보해야 한다. 행정, 의회, 시민, 지역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얻은 신뢰와 투명성은 결국 분권, 권한 위임, 자치를 위한 착근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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