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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돌 Nov 21. 2023

글을 잘 쓰고 싶다면 이것부터 해라

이공계 출신이 알려주는 글쓰기에 대하여


나는 실업계 공업고등학교 화공과를 졸업 후, 대학에서는 화학공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에는 기술직 공무원에 종사하면서 200만 원 고료 박재삼신인문학상 수상으로 문단에 등단했고, 월간 '좋은문학'으로 수필 등단, 월간 '문학21'로 평론에 등단했다. 


저서로는 30대 초반에 수필집을 발간했고, 30대 말과 40대 말에 각각 시집을 발간했다. 충청소방학교에서 '시와인문학'을 강의를 했고 '내가 걸어온 문학의 길'이라는 테마로 작은 공연장에서 개인 콘서트를 개최한 적도 있다. 


그렇다면 이공계를 졸업한 내가 문학활동을 하고 저서를 발간할 수 있었던 근간은 어디에 있었을까. 문학을 전공하지 않고도 글을 글을 잘 쓰는 방법은 없을까.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시도해야 하나. 지금도 많은 유튜브에서는 글 잘 쓰는 요령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고 심지어 이곳 브런치에서도 글 쓰는 요령에 대해 길라잡이를 하고 있다.  


대부분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안타깝게 주마간산 격으로 흐르면서 정확하게 맥을 잡지 못해 오히려 글을 쓰고 싶은 문학청년이나 늦깎이 문학인들에게 적지 않은 혼선을 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한쪽에서는 많은 독서가 글쓰기의 기본이라며 많은 다독을 권장하고 있고, 또 한쪽에는 많이 쓰는 것이 글쓰기의  바이블이라며 무조건적인 글쓰기를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 


맞는 말일까. 백 프로 수긍하기에는 어렵다. 왜냐하면 독서 없이 막연히 글쓰기에 치중한다면 정저지와(井底之蛙) 식인 우물 안 개구리 되기 십상이고 글을 쓰지 않고 막연히 독서에 치중한다면 그 글은 실체가 없는 허공 중에 뜬 구름 잡는 이야기로 흐르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렇다면 글쓰기의 기본은 무엇일까. 많이 읽고 많이 써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만이 능사일까. 그렇지도 않다. 독서는 속독보다 정독이 중요하고 글쓰기는 윤색과 정제의 과정이 중요하다. 즉 열 편의 글을 쓰는 것보다 한 편의 글을 열 번 퇴고하는 것이 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어제는 독서토론회에 참석했다. 토론이 끝나고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어떤 분은 글을 잘 쓰고 싶은데 단어의 한계가 발목을 잡고 있다고 했고 어떤 분은 국문학을 전공했지만 시에 대해 어떻게 실타래를 풀어야 할지 몰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각 개인이 사용하는 단어는 정해져 있다. 심지어 개인이 사용하는 단어는 수만 개밖에 되지 않는다는 설도 있다. 누구나 적정한 단어나 고르는데 어려움이 있다. 문학 용어는 더더욱 그러하다. 한 편의 수필을 쓰는데도 많은 문학적 기교가 글 쓰는 이를 괴롭힌다. 어떤 고급한 단어를 사용할 것인지, 중의법이나 활유법 같은 수사법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또 작품을 극대화하기 위해 문체는 어떻게 설정해야 되는지 많은 고민을 한다. 


시 쓰기 역시 마찬가지다. 시어 하나가 시 전체에 미치는 의미, 심상, 음악적 효과, 어조 등에 천착하면서 정밀하고 세련된 내적구조를 직조해야 한다. 함축성과 상징성을 지녀야 하고 또 낯설게 해야 하며 명징한 이미지로 형상화시켜야 한다. 그래서 시어 하나 조탁하는데도 며칠, 혹은 몇 달이 걸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시 쓰기부터 고찰해 보자. 시를 잘 쓰기 위해서는 무조건 많이 읽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시나 많이 읽으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저급한 시는 아니 읽는 게 낫다. 인터넷에 떠도는 사랑 타령의 감성시나 제대로 등단하지 않은 시인의 시 무조건 다독하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사실 삼류 문학회의 동인지도 안타깝지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를 쓰겠다고 한다면 제일 먼저 신춘문예 시집부터 읽어라. 적어도 20년 치 시집을 구입해서 정독해야 한다. 신춘문예 시집은 신문사별로 등단한 시와 등단 시인의 신작 시 5편을 소개하고 있다. 이 시들은 신춘문예 병을 앓고 있는 내로라하는 신인들 수백 명 중에 뽑힌 이 시대의 현실참여를 대변하는 최고의 시다. 


20년에서 30년간의 신춘문예 시집을 읽고 나면 반드시 나만의 시어사전을 만들어야 한다. 약 6개월에서 1년간 시어사전을 만들고 틈틈이 머릿속에 담아두자. 그리고 시를 쓸 때는 시어사전을 옆에 두고 시를 쓰자. 예컨대 '바다의 시를 쓰고 싶다면 바다와 관련된 시어사전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바다'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파도, 배, 갈매기, 해안선, 섬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면 시어사전 중에 단어 찾기인 컨트롤키와 F를 눌러 원하는 단어를 찾으면 된다. 내가 갖고 있는 시어사전에 바다를 치면 어떤 시어들이 나올까 검색을 해보자.  


바다 : 간간히 취한 바람이 비틀거리며 해안으로 올라오고 그때마다 놀라 잠을 깨는 뱃고동 소리

바다 : 갈비뼈 앙상한 바다 한 모금 하얀 부리에서 흘러나와 소금빛 매운바람으로 부서진다

바다 : 감기를 앓는 목선은 밧줄에 묶이어 해안에 버려져 있고 밤새 먼지처럼 내리는 백설은 허기진 꿈들을 하얀 나비로 날아오르게 한다. 간간 뼈 부딪는 환청이 들려오고 누군가의 시린 넋이 바다 깊이 부침할 때 이윽고 해안을 적시는 한 장의 겨울은 바다에서 주검으로 포장되어 나간다

바다 : 겨울바다 수평을 몇 소절로 날아올라 바닷가 교회당 첨탑 위에 앉는다

바다 : 겨울이 다른 곳보다 일찍 도착하는 바닷가. 그 마을에 가면 정동진이라는 억새꽃 같은 간이역이 있다. 계절마다 쓸쓸한 꽃들과 벤치를 내려놓고 가끔 두 칸 열차 가득 조개껍질이 되어버린 몸들을 싣고 떠나는 역. 여기에는 혼자 뒹굴기에 좋은 모래사장이 있고, 해안선을 잡아넣고 끓이는 라면집과 파도를 의자에 앉혀 놓고 잔을 주고받기 좋은 소주집이 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외로운 방들 위에 영롱한 불빛을 다는 아름다운 천장도 볼 수 있다. 바닷바람에 철로 쪽으로 휘어진 소나무 한 그루와 푸른 깃발로 열차를 세우는 역사, 같은 그녀를 만날 수 있다.

바다 : 그렁그렁하니 가슴팍을 비집는 마을의 불빛 눈알 뒤집으며 주먹다짐하기도

바다 : 바라보면  바다는 한 장의 푸른 손바닥

바다 : 보라, 파도의 씨눈들이 밟히는 네 영혼의 길에서 하얀 내 유골의 잔해가 빛난다

바다 : 새벽마다 허옇게 바다를 벗겨내는 어부들이 선창가에 비릿한 욕지거리를 잔뜩 풀어놓으면 고래입 같은 아가리 배에서는 온통 욕지기질로 헐떡이는 생선들,/경매가 시작되면 선창가는 거대한 고래 뱃속이다. 부시시 무너지는 어둠 속에서 퍼덕거리다 뒤로 나자빠지는 그네들의 흥정/오징어처럼  먹물을 뒤집어쓰고도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파장의 도시-하루를 새벽에 몽땅 떨이해 버리면 그제야 졸음은 해일처럼 몰려온다

바다 :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그네들의 희망은 선창에 선적된 채, 언제 출발할지도 모른다

바다 : 해안선을 따라 늘어선 집들이 유리창을 번득이며 바다를 보고 있다. 한지를 두드리며 누군가의 생을 탁본하는 밤이면 그대가 너무 깊게 박고 간 내 가슴속  못 하나가 쉼표처럼, 그대의 죽음 밖으로 삐져나와 바다로 간다. 난파선에서 실종된 사람들의 바다를 끌고 와 고동, 그 빈 먹통 속으로 확 죽음을 펼쳐 보이는 안개


나는 30대 중반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시를 쓰게 된 배경은 수필집을 발간한 후 문학 동인회에 가입하여 활동을 했었다. 문학회에서 사실 수필가는 이단아였다. 모임에서는 시합평이 주류를 일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수필가의 자리는 말석이었다. 사실 나는 문학회의 기조에 합류하기 위해 시를 써보기로 했다. 


시를 쓰기 위해 제일 먼저 내가 한 것은 신춘문예시집 20권을 직접 구매해서 시어사전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것을 작성하는데 최소 하루에 2시간씩 6개월이 걸렸다. 성과는 놀라웠다. 그 후 많은 시 공모전에서 입상을 했다. 예를 들어 중랑신춘문예 금상, 용산도서관 공모 최우수, 국회주관 시공모 동상, 공무원문예대전에서 장관상 2회를 수상했다. 이 모두가 시어사전 덕분이었다. 


그렇다면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수필사전을 만들어야 한다. 나에게는 시어사전과 소설사전 두 개의 사전이 있다. 소설사전의 전신은 습작사전이었다. 이 사전은 고등학교 때부터 만들었다. 책을 읽으면 밑줄을 쳤고 소설사전에 옮겨 놓았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도 옆에 필기도구가 있었다. 내가 사용해 보지 않은 단어나 문장을 모아놓았다가 소설사전에 옮겨 놓았다. 시어사전과 소설사전이 두꺼워질 수록 나는 거듭나고 있었다. 


지금도 시를 쓸 때는 시어사전을 참조하고 수필을 쓸 때는 소설사전을 많은 도움을 얻고 있다.  예를 들어 '술'과 관련된 문장을 쓴다고 하자. 그러면 제일 먼저 '술'과 관련된 유의어를 소설사전을 통해 검색하는 것이다.  내 소설사전에는 아래의 문장들이 검색된다. 


술 : 난로를 끼고 앉아 술추렴을 하고 있었다

술 : 눈은 취기로 게슴츠레져 있었다.

술 : 두주불사(斗酒不辭에-말술도 사양하지 않음)는 淸濁不問이었다.

술 :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해 방바닥에 퍼지르고 누워

술 : 빈 술병처럼 뒹굴고 괴로워했던 것일까

술 : 술이 내게 용해되었다가 표피에 은거에 대해 몇 달을 고집했다

술 : 초췌해진 얼굴로 비틀거리며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취해 방바닥에 퍼질르고.

술 : 혼자 술병을 기울이고 있었다 


학창시절 재산목록 1호였던 일기장

그렇다면 이렇게 소설사전과 시어사전을 만든다고 해서 누구나 시인이 되고 작가가 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가장 중요한 문장력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장력은 딱 하나다. 많이 써야 한다. 문장력을 늘리는 방법으로 일기를 강추한다. 


미약하지만 내 문장력의 팔 할은 일기에서 나왔다. 이공계를 나와서 그나마 문학을 할 수 있었던 원천은 바로 일기였다. 문장력을 높이고 싶다면 1년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기를 써보자. 일기 쓸 때도 시어사전과 소설사전을 적절히 활용하자. 


그러면 1년 후에는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고 수필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고3 일기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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