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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라 Jan 12. 2023

논술전형으로 합격했지만 언어영역 점수는 똥이었던 이유

입장 정리 #9 혼자 말하기 대장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2009년 당시 수능은 정말 대단한 입시제도였던 것 같다. 수리영역 몇 문항을 제외하고는 모두 5지선다 객관식이고 결과 또한 숫자로 표현되지만, 수능 점수가 나의 성격을 아주 제대로 말해주고 있었다. 이를 내가 깨닫기까지는 대략 15년이나 걸렸지만 말이다.


당시 내 입시에서 늘 발목을 잡았던 과목은 언어영역이었다. 수능날에도 어김없이 언어영역을 망해서 재수를 택했다. 터무니없는 내 언어영역 점수를 보고 놀란 사람은 없었지만 희한하게 난 재수를 택했다. 그러니 수능을 '망했다'는 표현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내 언어영역 점수는 원래 그 점수였고, 게다가 사실 언어라는 게 당장 열심히 판다고 해서 성적이 훅 오를 수 있는 과목이 아니지 않은가. 이거 때문에 재수를 하는 게 맞나, 다시 태어나는 게 더 빠르지 않나, 이거 그냥 내 점수 같은데, 뭐가 달라지긴 할까 의심이 많이 들면서 어찌어찌 공부는 했다.


그런 내가 정작 입시는 논술전형으로 합격했고, 방송가에서 몇 년 간 소소하게 말하는 직업을 해보기도 했다. 어느 순간 나는 소위 '말'로 먹고살고 있었다. 모두 같은 '말'인데, 그렇다면 나는 부단한 노력 끝에 끝내 언어영역을 극복한 것일까.


아니다. 정답은 NO.

결국 나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만 탁월했고, 남의 말은 참 안 듣는 '소통 불가' 유형이었던 것이다. 출제자의 의도가 궁금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관심이 없다. 파악하고자 하는 의지가 약하니 지문에서 말하는 내용을 제대로 알아차리기 어려웠던 것 아닐까. 생각해 보면 난 텔레비전을 보거나 라디오를 듣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발언권이 없고 납득이 되지 않더라도 저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만 있어야 하니까.


하지만 논술이나 말하기는 내 생각만을 전달하면 그만이니 신명 나게 떠들어댔던 것 같다. 정보를 전달하는 리포터나 내 의견을 논리 정연하게 적어내는 논술이나 모두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일방적인 소통에 불과했으니까. 그게 나한테 맞았던 것이다.


서론이 길었지만, 결국엔 이 언어영역 고자이자 외톨이 발화자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또 한 번 고충을 겪게 된다는 이야기가 포인트다.


언어영역을 현실에서 마주하게 되니 사람들과의 진정한 대화가 어렵다고 느껴졌던 때가 왔다. 사람들을 만나고 집에 오는 길에 상대방의 이야기는 기억나지 않는다. 정말로 기억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할 틈을 주지 않아서 실제로 말한 것이 없을 수 있다. 내 이야기만 실컷 떠들었던 기억이 나며 괜히 머쓱해진다. 민망하고 후회스럽고 미안한 마음에 다음엔 꼭 친구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리라 다짐해 보지만, 다음에 만나면 또 똑같다. 지나간 카톡을 훑어보아도 비슷하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만 나는 별 또렷한 피드백이 없이 나의 실시간 이야기를 전달한다. 내가 왜 이럴까 싶지만 '인간은 원래 잘 안 바뀐다'라며 또 스스로를 이상하게 위로한다.


나는 혼자 떠들어대는 게 맞아서 논술이나 말하기로 먹고살았다고 표현했지만, 스스로가 소통 불가 유형이라는 걸 깨닫자 꾸준히 리포터나 아나운서를 했어도 결국 훌륭하게 성공하지는 못했겠구나 싶다. 나한텐 맞지만 남이 받아주지 않을 일명 '나 혼자 말하기' 활동.


MBTI 툴이 유행하면서 매우 기뻤던 적이 있다. 나의 부족한 성격이나 스타일을 쉽게 변명할 수 있는 방법으로 최고다. MBTI는 남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를 잘 포장할 수 있어 보인다. 심지어 나는 MBTI가 말해주는 내 상세한 성격들도 꼼꼼히 채 다 읽어보지 않는다. 그냥 나를 변명해 줄 수 있는 몇 가지만 골라 기억한다. MBTI 빙고 등 관련된 재밌는 짤들을 유머랍시고 들이대며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고 가볍게 말하면, 자연스럽게 나의 단점 개선하기를 쉽게 거부할 수도 있다.


이러다가 정말 내 옆에 아무도 안 남게 되는 것 아닌가. 부자연스럽더라도 요즘은 의식적으로 사람들의 이야기에 리액션하고 공감하고 심지어는 마음에도 없는 사회적인 대화까지 은근슬쩍 보태보기도 한다. 오히려 가식적이라고 느껴질 순 있겠다. 또 이 글을 읽는 내 지인들이 앞으로 나와 대화할 때 '쟤 지금 진심인가' 하는 의심을 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공감 없는 대화보다는 누군가가 공감하려고 노력하려는 대화가 좀 더 생산적이지 않나 생각해 본다.


다른 사람의 말을 이해하는 것에 앞서서 들어주는 것도 참 쉽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더 내 말만 하게 된다. 누군가와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은 제한적이고, 나도 정해진 시간 내에 내 이야기를 서둘러 털어내고 싶은 것이다. 경쟁할 게 없어서 대화 지분을 두고 신경전인가. 참으로 팍팍하다. 그래서 단시간 내에 밀도 있는 대화를 해야 하는 아줌마들이 모이면 대화에 절대 마가 뜨지 않나 보다. 예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이 나이가 들면서 느껴지고, 점점 내가 바로 그 모습이다.


의식을 하고서라도 부단히 노력하다 보면, 상대의 말을 듣는 것에 익숙해지고 자연스러워지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대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잘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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