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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입장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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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라 Apr 19. 2023

이기적인 효도

입장정리 #10 부모, 자식

올봄, 유난히 병원에 갈 일이 많았다. 처음엔 한꺼번에 닥친 여러 사건들로 인해 머리가 아팠다. 이번 달에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어쩌다 우연히 같은 시기에 몰린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리가 그럴 나이구나' 싶었다. 부모님께서 편찮으실 수 있는 나이. 부모님께서 가볍게 다치시고도 회복이 더뎌지실 수밖에 없는 나이.


개인적인 일정들을 전면 취소했다. 사실 어른들께서 몸이 불편하시다고 해서 뭘 많이 해드린 건 없다. 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다. 그래도 그저 하루 한 번씩이라도 얼굴 뵈려면 그 길이 편했다. 아무리 병원이 가까워도 갈 준비하는 시간, 가는 시간, 뵙는 시간 등등 따지고 보면 시간이 반나절로는 부족했다. 약속을 취소하기 위해 친구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들은 말은 “너 착한 며느리구나”, “너 착한 딸이구나”였다.


”아니야, 나 안 착해“라고 답한 것을 두고 친구들은 예의상이었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너무나도 진심이었다. 사실 난 계속해서 이기적인 효도를 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부모님들을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은 나를 위한 길이었다. 이게 다 결국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 일들이 아닌가. 엄마 괜찮으신지 물어보는 전화도, 입원해 계시는 어머님께 반찬배달, 커피배달하는 것도. 한 번 목소리 듣고, 한 번 얼굴 뵙고 나면 한동안은 내 마음이 편하니까.


내가 가면 왔다고 좋아하시는 엄마 얼굴 보면 마음이 참 안정된다. 뭐 대단한 걸 하지 않아도 그냥 한 번 가기만 해도 엄마는 좋아하신다. 직접 밥을 차리면서 고생을 하셔도 엄마는 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신다. 효도가 대단한 게 아니고 그냥 자주 뵈면 되는 건가 싶다가도, 이렇게 쉬운데 난 왜 이전엔 얼굴 뵙는 거 조차 잘 못했던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변화의 기점은 출산이었다. 아이를 낳고 나니 양가에 더 자주 가게 된 것 같았다. 나는 효녀가 아니라 오히려 불효녀구나 싶었다. 육아가 끝나는 날은 임종 때라더니. 엄마는 또 우리 아이들을 키워주고 계셨고 나는 언제쯤 효도를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부모님이 편찮으시고 나니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건 형제자매였다. 친정과 가까이 사는 언니가 대부분 엄마의 병원 일정을 맞춰줬고, 시어머니도 남편과 아가씨 덕분에 나의 역할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형제자매가 있으니 간간히 부모님을 신경 쓰는 일이 특별히 힘들거나 스트레스가 되지는 않았다.


다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걱정거리는 부모님의 건강도 아닌, 가족들의 수고로움도 아닌, 바로 나의 노년기였다. '내 자식은 무조건 외동이다! 둘째는 없다!'라고 강력히 외치고 있지만, 이것이 과연 정말 내 아이를 위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모든 형제자매가 우애가 좋고 아름다운 그림으로 지낼 수는 없지 않나’라는 합리화로 둘 이상 키우는 것을 거부해 왔는데, 아무리 사이가 좋지 않은 형제자매일지라도 부모님이 편찮으실 때는 서로 큰 위로와 힘이 된다고 한다.


자식한테 손 벌리지 않고 아무리 내가 잘 살아내 보겠다고 한들 하나밖에 없는 아들한테 결코 짐이 되고 싶지는 않은데 혼자서 큰 부담을 느낄까 벌써부터 두렵다. 엄마나 아빠가 병원에 있으면 그게 혹시나 마음에 걸리려나. 이렇게 힘들 때 마음 털어놓을 곳이 없으려나. 이런저런 걱정을 하면서 남편과 우스갯소리처럼 늙어 아프면 조용히 어디 들어가서 우리끼리 잘 살자고 말한다.


친구들끼리 부모님 이야기를 하다보면 병간호보다도 가장 어려운 것은 몸이 안 좋은 부모님을 모시고 의사 앞에 데려다놓기까지라고들 한다. 모두가 동의하던 중 한 친구는 부모님께서 스스로 매년 건강검진을 받으시고 몸에 안 좋은 신호가 나타나면 바로 병원으로 가시는 게 익숙하시다고 했다. 그 친구는 부모님께서 아프면 본인만 아시고 자식들한테는 말씀을 잘 안 하시는 것 같아 그것대로 또 걱정되고 속상하다고 하지만, 아이 엄마들은 ‘진짜로 내가 건강하게 나이 들고 자식한테 기대지 않기 위해서는 내 몸을 스스로 꾸준히 관리하는 것이겠구나’ 하고 역으로 깨닫는다. 우선은 내가 건강해야겠고, 그 다음으로는 내가 스스로를 잘 돌아봐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이렇게 불효로 시작한 글에서 또 내 자식만 생각하는 불효로 끝맺음을 한다. 난 언제쯤 부모님의 사랑을 되갚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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