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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병찬 Jan 18. 2024

여유를 담은 글쓰기


싸락눈이 날려 어제의 길바닥을 때리기 시작했다. 기온이 점점 올라가더니 눈이 쌓이는 둥 마는 둥 한 길바닥을 어느덧 빗물이 덮고 있었다. 이 모든 날씨의 경과를 사무실에서 CCTV 화면을 통해 지켜보았다.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 동생과 함께 LCK(리그오브레전드 대회) 개막전을 보기로 한 터라, 귀가하는 두 다리는 종종댔다. 여유롭게 가자고 타일러도 듣는 척하지 않던 두 다리를 가까스로 달랜 건, 눈비가 얼어 미끄러워진 길바닥이었다. 크게 한 번 넘어질 뻔한 뒤 내쉰 안도의 한숨은, 종종대던 귀가 걸음도 함께 진정시켰다.


오늘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섰을 땐, 길바닥의 살얼음이 많이 사라졌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비가 온 뒤의 흙 내음은 언제 맡아도 상쾌하다. 하늘과 구름의 조화는 바쁜 출근 걸음을 멈추게 하고 사진 몇 장을 찍을 여유를 선물했다. 비가 온 뒤면 언제나 흙 내음과 하늘에 귀 기울였던 것 같다. 실패하는 법이 없으니 그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외의 것들은 좀처럼 관찰하지 못한다. 무엇이 관찰할 만할 대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의 아침이 조금만 더 여유 있었다면, 비 온 뒤 꽃피우는 다른 것들을 발굴할 수 있었을까?


반대로 비가 오는 날 외출할 때면 언제나 정신이 없다. 비가 오면 언제나 우산을 들어줄 손이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시시때때로 튀기는 빗물에 주의를 늦출 수도 없다. 이럴 때면 주위를 둘러보기보다, 오직 목적지에 일찍 도착해서 짐 같던 우산이나 접어두는 것이 상책이다. 그리고 그날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은근한 생각을 피하지 않는다. 그렇게 정신없던 비가 그치면, 흙 내음과 맑은 하늘 따위로 이전의 수고를 보상받는 것이다.


여유 있는 날에는 정처 없는 산문을 쓰고 싶다. 글을 쓰며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여유가 없을수록 글에 짜임새 있는 결론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짜임새 있는 직선적 결론도 좋지만, 그보다 조금은 곡선을 그리는 글도 괜찮다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그런 글이 오히려 읽는 사람만의 생각을 할 여지를 준다는 것을 느끼면서이다. 결론의 색채가 묻어 있는 그간 나의 몇몇 글을 바라보며, 아직은 여유를 더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글을 쓰다 나중으로 덮어 두는 용기도 내 보고, 발행하지 않는 비밀스러운 글도 더 써 보고, 쓰던 글을 잊어보기도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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