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여행
파이네 그란데 산장
칠레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트레킹을 하는 2박 3일 동안 파이네 그란데 산장에 묵었다. 여섯 명씩 사용하는 방을 남녀 구분하느라 남편과 나는 다른 방에 배정되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다인실 기숙사를 이용했던 경험이 있어, 샤워용품이 하나인 것 말고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같은 방을 사용하던 일행 중 두 명이, 산장 전체에 두 개밖에 없는 세면대를 차지하고 빨래까지 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세면대를 사용하지 못했다. 산장에는 세탁실이 아예 없어 대부분은 속옷만 갈아입고 빨래는 가방에 넣어 되가져 갔다.
세면대를 차지하고 민폐를 끼친 두 사람은 방에서 냄새난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처음에는 무시하고 지나쳤는데 그중 한 명이 나를 지목하며 더럽고 냄새나서 구역질 난다는 심한 말까지 했다. 더 이상 참으면 안 된다 싶어 되받아쳤고 고성까지 오고 갔다. 60년 가까이 살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기가 막히고 화가 나 몸이 떨렸다.
다음 날 새벽, 준비를 마친 내가 창문 앞에 앉아 있는데 그 사람은 바지 갈아입게 비키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나도 눈을 부라리고 맞대응하며 안 비켰다. 심한 악담을 한 바가지나 들었지만, 그 이후로 그 사람은 내게 시비 걸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나를 피해 다녔다.
한평생을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편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장에서 보낸 시간이 힘들었지만, 우울감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썼다. 몇 시간씩 산을 오르내리며 걷고 멋진 풍경을 감상하다 보면 복잡한 심경과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마음에 힘도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