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집 떠난 지 한 달째, 비엔나에 도착했다.

비엔나에서 드로잉 배우며 두 달 살기

by 여백

이 주일 간 아이슬란드 여행을 마치고, 오스트리아로 향했다. 아들의 여자 친구 소피아가 비엔나 공항으로 마중 나왔다. 소피아와 함께 아들이 살고 있는 잘츠부르크로 가는 기차를 탔다.

아들은 회사에 며칠 연차를 냈고 우리 부부는 아들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잘츠부르크 근교에 있는 장크트 길겐, 할슈타트, 알타우지, 그룬드지, 소금 광산, 다섯 손가락 전망대 등을 여행했다. 행복하고 흐뭇한 시간이었다. 잘츠부르크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잘츠부르크를 출발해 인스브루크에서 사흘 머물고 그라츠에서 6일을 지내며 슬로베니아 류블랴나까지 여행했다. 그리고 비엔나에 도착하니 집 떠난 지 한 달이 지났다.


이번 여행도 오랜 시간 고민하고 준비한 건 아니었다. 아들이 비엔나에서 대학원을 다녔는데 졸업하기 전에 취직이 되었고 일을 하다 보니 학기가 끝나도록 논문을 완성하지 못했다. 바로 마무리하겠다는 말과 다르게 자꾸 뒤로 밀렸다.

해가 바뀌고 8월이 되어서야 논문이 통과되었고 졸업이 가능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졸업식은 11월이라고 했다. 졸업식 참석을 핑계로 세 달간의 여행을 급하게 준비했다. 아이슬란드,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인스브루크, 그라츠를 여행하고, 두 달간 비엔나에서 살기로. 사실 비엔나에서 두 달 살기를 결정했던 이유는 어이없게도 우리 가족의 의사소통 부족 때문이었지만 그래도 멋진 추억을 남겼다.


그라츠에서 비엔나로 가기 위해 OBB 기차를 탔다. 남편이 저렴한 표를 샀다고 하더니 기차는 모든 역에서 쉬며 천천히 비엔나 중앙역으로 향했다. 그래도 시간 많은 여행 자니까 별 상관없었다.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내리고 타는 사람들을 구경하니 지루하지 않게 시간이 잘 흘렀다. 사실 이동 수단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엔 익숙해져 있었다.


지도를 찾아보니 우리가 지낼 아파트는 비엔나 중앙역이 아닌 melding 역에서 가까웠다. 기차가 melding역에 도착하자 후다닥 짐을 챙겨 내렸다.

아파트에 가방만 두고 택배 짐을 찾으러 소피아네로 갔다. 운 좋게 우리 아파트에서 버스 한 번에 갈 수 있는 멀지 않은 곳이었다. 한국에서 아이슬란드로 출국하기 전, 비엔나에서 두 달간 지내며 입을 겨울 옷을 비엔나에 살고 있는 소피아네로 보냈었다.


소피아가 저녁에 수업이 있고 수업 후에는 우리 아들이 사는 잘츠부르크로 간다고 해서 서둘렀다. 짐만 찾아 나올 생각이었는데 직접 만들었다는 애플파이와 일일이 까서 예쁘게 꾸며놓은 귤을 보니 그냥 일어설 수 없었다. 성의를 생각해 애플파이 한 조각과 차를 마시고 일어섰다.


남편이 예약한 아파트는 방과 거실이 널찍했다. 화장실과 목욕탕이 분리되어 있어 편리한 반면 부엌이 좁았다. 그래도 식기 세척기와 오븐까지 있어 두 달간 지내기에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또 바로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고 지하철 역도 가까워 위치도 좋았다.

하지만 난방기를 틀었는데도 춥고 부엌 한편에 매달린 채 실내에 그대로 노출된 보일러에서는 어마어마한 소음이 났다. 이리저리 조작해 보아도 라디에이터는 따뜻해지지 않았다. 침대에는 두꺼운 이블이 있어 푹 뒤집어쓰고 잠을 청했다. 피곤해서인지 금세 잠에 빠져들었지만 그 아파트에서 두 달간 지낼 생각을 하니 답답하고 심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