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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백 Feb 02. 2024

25. 내 인생 최고 평화로운 시간 (4월 29일 토)

40일간 산티아고 순례길 그림일기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카미노 Bercianos del real Camino ~ 레리에고스 Reliegos      

  숙소 때문에 목적지를 레리에고스로 바꿔서 20km 가볍게 걸었다. 

  걷다가 마을에 이르러, 늘 그렇듯 카페 콘 레체를 마시러 영업 중인 바(bar)에 들어갔다. 직원이 우리보고 한국말로 인사하길래 놀랐다. 

  커피를 마시며 쉬고 있는데 순례길에서 종종 마주치며 인사하던 재미교포 아저씨, 몇몇 우리나라 사람들, 연예인 이무송씨가 들어왔다. 한국 라면을 먹으러 왔단다.

  아무 생각 없이 커피를 마시고 있던 엘 브루고 라네로의 <라 코스타 델 아도베>라는 바(bar)에서 한국 라면을 판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직원들이 한국말하는 거였다.

  우리는 스페인에 와서 음식 때문에 고생하지 않아서 라면이 별로 당기지 않았다. 커피로 힘을 얻고 다시 순례길로 걸음을 옮겼다.      


  이른 시간부터 해가 뜨겁게 내리쬐었지만, 오늘 걷는 길에는 나무가 있고 바람도 간간이 불며 땀을 식혀주었다. 얼마 전까지 거센 바람에 덜덜 떨던 생각이 나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민들레가 지천으로 피었다. 우리나라 흔한 꽃을 여기서 보니 반가웠다.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나는 파란색과 파란 하늘이 좋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본 익숙한 민들레가 반갑다.

  레리에고스는 작은 마을이라 큰 건물이나 특별히 볼 것은 없고 순례자만 보였다. 예약한 알베르게를 찾아가는 중 새로 지은 어느 알베르게에 미국 국기, 브라질 국기, 프랑스 국기 그리고 태극기가 꽂혀있는 것을 보았다. 미국은 워낙 큰 나라이고, 브라질도 크고 같은 스페인어권이며, 프랑스는 바로 옆 나라지만 우리나라 태극기가 펄럭이는 모습은 놀라웠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우리나라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보여주는 증거 같았다. 오늘도 우리나라 순례자를 많이 만났다. 

  걷고, 먹고, 쉬고, 자는 게 다인 순례길 생활은 단순하다. 평생 긴장하고, 조바심치고, 종종거리며 살았던 우리나라에서 생활이 먼 꿈속 일처럼 느껴진다. 생각해 보니 순례길을 걷고 있는 요즘이 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하고 평화로운 시간 같다. 걷는 것 이외 어떤 역할도, 책임도, 임무도 없다. 걷다 보면 머릿속 생각은 사라지고 마음은 고요해진다.         

          

골목을 따라 알베르게를 찾아가는 순례자 이외 사람들을 거의 볼 수 없던 오래된 작은 마을 레리에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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