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여행
볼리비아 국경선을 통과하며 여권에 출국 도장을 찍었다. 다시 차를 타고 칠레 국경 검문소에 이르러 미리 작성한 서류를 제출하고, 짐 검사하고, 여권에 입국 도장을 찍고, 국경선을 넘었다. 칠레 쪽에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올랐다. 칠레 입국 심사가 까다롭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실제 입국 절차는 간단했다.
칠레
칠레는 남북으로 길이가 4,300km로 지구상에서 가장 긴 나라로 풍부한 먹거리와 다양한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남쪽 파타고니아 지역의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등반이 칠레 여행 목적이어서 설렘과 긴장감이 교차했다.
아타카마 사막
아침과 저녁 쌀쌀했던 볼리비아 우유니에서 오느라 스웨터를 입고 있었는데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 도착하니 한여름이다. 호텔에 들르지 않고 바로 아타카 사막 달의 계곡 투어를 간다고 해서, 트렁크와 짐을 맡긴 곳 화장실에서 얇은 옷으로 갈아입고 나오니 사용료를 내란다. 언제든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깨끗한 우리나라 화장실이 그리웠다.
달의 계곡 투어
칠레 달의 계곡은 볼리비아 달의 계곡과 비교도 안 될 만큼 컸다. 바람이 불자 바람결에 모래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마른 진흙 옆으로 드러난 지층은 마치 지구의 속살을 보는 듯한 멋진 풍경이지만 내 기분은 최악이었다.
평소 말이 별로 없는 남편은 분위기 띄우려 그러는지 여행 내내 과장된 목소리로 떠벌이고, 이기적인 사람한테도 친절하고, 여러 사람 도와주며 오지랖 넓게 굴더니 결국 내 눈에는 호구처럼 보였다. 그런 모습이 못마땅해서 나는 남편과 다퉜다.
내 좁쌀 같은 마음을 드러내고 나니 후련하기는커녕 나 자신에게 화가 더 났다. 엄청난 규모의 신비한 사막 풍경을 보면서도 별 감흥이 일지 않았다.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에 갔다. 식당 화장실에서 줄을 섰는데 일행 중 한 명이 너무 자연스럽게 내 앞으로 새치기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어이없지만 놀랍지도 않았다.
저녁 식사 후 바로 칼라마로 이동해야 해 시간 절약을 위해 인솔자는 대구 요리를 예약해 두었다. 보통은 각자 음식을 선택했다. 그 대구 요리를 먹고 복통과 설사가 났다.
기분이 안 좋은 채 밥을 먹어서 그런가 싶었는데 여러 사람이 탈이 났고 심한 사람은 병원 응급실까지 갔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은 약을 먹고 하루 이틀에 걸쳐 괜찮아졌다. 집단식중독인 듯했다. 그러나 우리가 칠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각자 약 먹고 회복하는 길밖에 없었다.
칼라마에서 비행기를 타고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도시가 바뀔 때마다 호텔이 바뀌고 체크인 때마다 일행들은 한꺼번에 달려들어 먼저 체크인하려고 치열한 신경전과 몸싸움을 벌였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접수대에 여권을 놓는 차례대로 순서를 정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자신의 여권을 앞쪽에 슬쩍 끼워 넣었다. 차라리 못 봤으면 좋은데 내 눈에는 그런 모습이 유난히 잘 보여 괴롭다.
몸뿐 아니라 마음도 지쳐 칠레 수도 산티아고 투어는 포기하고 호텔 근처 슈퍼마켓만 다녀온 후 침대에 늘어져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