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
들판의 황금벼가 학생들의 발길을 반기던 가을, 국민학교별로 인근마을에 봉사활동을 나갔다.
봄, 가을 두 차례 농번기가 되면 실시하는 학교의 연례행사다.
봄에는 보리를 베거나 모심기를 하였고, 가을에는 벼 베는 일을 주로 하였다.
여섯 학교 가운데 나의 모교는 여태껏 중학교 가까이 있는 동네로 배정받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거리도 꽤 멀거니와 처음 들어 보는 마을이다.
'아~ 참, 별일이네!'
일찌감치 자취방을 나서 동기들과 삼삼오오 짝을 지어 1시간여를 족히 걸었다.
학생들 대부분 집합시간 보다 일찍 와서 낯선 동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9시가 되어가자 동네 어르신들이 학생 일꾼을 낙점받으러 모여들었다.
70여 명의 학생들 남녀 따로 열을 맞춰 앉았다.
그런데 앞쪽에서 선생님과 정답게 얘기를 주고받는 저기 저 젊은이, 왠지 낯이 익단 말이지.
'누구지?' 알듯 말듯, 사돈의 팔촌까지 모셔와 얼굴을 맞춰 봤지만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누구지, 누구지' 생각이 날듯 말듯,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천천히 꼼꼼하게 대조해 보았다.
성별: 남자, 나이: 청년, 키: 훤칠, 외모: 준수........
뜨악!
B선배다!
이건 말도 안 돼!
선배가 거기서 왜 나와?
여기가 선배 마을이라니!
당혹감에 뒤로 자빠질 뻔하였다.
밀담이 오간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순간 스쳤다.
선배들의 담임선생님, 오늘따라 유난히 내 이름을 자주자주 크게 부르시는 것 같단 말이지.
우연이라 하기에는 무언가가 석연찮았다.
선생님과 털털한 웃음을 섞어 대화를 하면서도
후배들을 쓱 쓱 훑어보던 B선배, 나를 찾는 듯하였다.
"언니야, 저기 저 선배 아까부터 계속 우리 쪽을 보고 있다"
"우리 중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나?"
"언니는 저 선배 알아?"
후배의 아리송 물음에 나는 모르는 척, 딴청을 피웠다.
2년 만에 선배를 재회한 내 가슴은 뛰고 있었다.
"미경아, 여학생 00명 데리고 이분 따라가"
선생님의 부름에 여학생들을 이끌고 아주머니를 따라가면서 선배 앞을 비켜갔었다.
한마디 말도 주고받지 못하고 흔들리는 눈빛만 남겨둔 채 멀어져 갔다.
선배는 졸업할 당시 보다 더 늠름해 보였다.
멋진 청년이 되어 있었다.
밝게 웃는 모습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