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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

by 김준성


내 이름은 김준성이다.

광산 김가, 준 걸 준(俊), 이룰 성(成).

많은 것을 펼치고, 세상을 이룬다는 뜻이다.

…방금 내가 지어냈다.


어릴 적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할머니가 철학관에서 비싼 돈을 주고 지어오신 이름이라고.


그런데 내가 아는 할머니는,

만원짜리 작명소에서 뽑기를 몇 번이고 돌려

자기 마음에 드는 이름을 골라오셨을 것 같다.

최소한 내가 아는 할머니는 그렇다.


할머니가 골라주신 이름.

어떤 뜻으로 골랐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 이름에는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그 마음만큼은 어떤 가격표가 붙어 있든 진짜였을

테니까.


그리고 이제는 내가 그 이름을 다시 읽어보려 한다.

누가 붙여준 뜻을 그대로 외우기보다,

내가 살아온 방식으로, 내가 선택한 방향으로

내 이름에 새 의미를 덧씌우고 싶다.


나는 자유롭고 싶다.

누군가의 기대에 맞춘 삶이 아니라,

내가 내 걸음으로 살아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마음은 사실 오래전부터 있었다.

내 몸에도 작은 증거가 하나 있다.

팔 한가운데에 있는, 귀여운 파도 문신.

군대 첫 휴가 때 나와서 새긴 작은 수채화다.


어릴 때부터 문신을 하고 싶었다.

감정과 기억을 몸에 새겨두고, 잊지 않고 싶다는 로망 같은 것.

그런 얘기를 엄마에게 꺼내면 엄마는 늘 “안 돼”라고만 하셨다.

이유는 설명해주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께 불효할 마음도, 반항할 마음도 없었다.

다만 이유 없이 막히는 문 앞에서는,

‘안 되는 이유’보다 ‘해도 되는 이유’를 찾는 쪽에 더 가까웠다.


그래서 몰래 했다.

그리고 몰래 잘 숨겼다.

하지만 엄마가 알아차리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처음엔 엄마가 많이 서운해하셨다.

엄마는 나를 키우면서 좋은 것만 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들이 스스로 몸에 무언가를 새겼다는 사실이,

엄마에게는 “내가 잘못 키운 건 아닐까”라는 걱정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

한동안 엄마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때 나는 문득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키워준 이 몸, 내가 건강하게 잘 쓰고 있어.

내가 여기에 문신을 한 건 엄마가 만들어준 몸에 낙서를 한 게 아니라,

엄마가 준 몸을 내가 내 방식대로 ‘사용’해본 거야.”


엄마는 그 말에 안도했는지,

안도한 김에 나를 때리려고 하셨고,

상황은 이상하게 웃기게 흘러갔다.


생각해보면 이름도 그렇고, 몸도 그렇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지어주고, 키워주고, 만들어준 것들이 있다.

그 안에는 분명 사랑이 담겨 있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살아낼지’는 결국 내 몫이다.


언젠가 내가 부모가 되고,

내 자식이 자기 방식대로 독립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그때쯤엔 오늘의 엄마 마음이 더 또렷하게 떠오를 것 같다.


나는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같은 말로 책임을 떠넘기고싶지 않다.

‘이 집의 주인은 나다’ 같은 말로 사랑을 규칙으로 만들고 싶지도 않다.


그리고 나는 아마, 같은 마음으로 흔들리다가도

결국 이렇게 말해주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래. 네가 너를 살아내는 거라면,

그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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