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밖이 아니라, 숨 쉴 공기를 찾는 중
어렸을적 호주에 유학간 친구가 있다.
친구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호주에서 살기 시작해서,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 꽤 오랫동안 그곳에서 생활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친구는 호주에 있는 동안 늘 “한국에 빨리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그래서 얼마 전, 호주에 딱 1주일만 여행 다녀오겠다고 계획했던 게 더 놀라웠다.
그런데 계획과 달리 친구는 호주에서 1주일을 더 머물다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돌아온 뒤, 호주에서 느낀 것들과 생각들을 내게 들려줬다.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호주가 싫었던 게 아니라, 사실은 학교 생활이 힘들어서 한국을 핑계로 호주를 싫어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오히려 지금은 “한국이 생각보다 살기 불편하게 느껴졌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해줬다.
그 이유를 들어보니 단순히 돈 문제만은 아니었다.
물가는 호주가 더 비싸지만, 그만큼 급여나 보상에 대한 만족도가 느껴졌고,
무엇보다 ‘일을 잘하면 그만큼 인정받고, 내 가치가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생각이 많아졌다.
친구가 호주에서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의 긍정적인 에너지, 그리고 그 안에서 얻은 자존감이 느껴졌다.
“일을 하고 싶다”는 의욕까지 다시 생겼다는 말이 왠지 멋있게 들렸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정리하고 우선순위를 세우는 모습도, 확실히 이전과 달라 보였다.
물론 나는 친구의 경험을 그대로 겪은 건 아니고, 친구의 이야기를 통해 한 단면만 본 거다.
당장 호주로 떠날 생각은 없지만, 이상하게도 내 마음 한 켠이 움직였다.
한국에서만 살아온 내가, 혹시 너무 익숙한 환경 안에서만 세상을 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약간의 걱정도 들었다.
나는 한국 나이로 26살이고, 대학을 나오지 않았고, 17살부터 일을 해왔다.
23년부터는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느끼는데, 한 일을 오랫동안 꾸준히 이어오지 못한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이런 상태에서 만약 내가 호주로 간다면, 그게 혹시 도망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니, 내가 흔들린 이유는 “도망”보다는 “확장”에 더 가까웠다.
만약 내가 호주에 간다면, 단순히 떠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 능력으로 어느 정도의 수입을 만들 수 있는지, 얼마를 모을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세워보고 싶다.
그리고 그 생활이 내게 잘 맞는다면, 더 긴 미래를 계획해볼 여지도 있을 것 같다.
내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은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나는 인정받을수록 에너지가 올라오는 편이고,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우선순위를 정리하면서 삶의 여유도 가져보고 싶다.
한국에서도 그런 환경을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26년 동안은 쉽게 만나보지 못했던 것 같다.
물론 내가 아직 좁은 시야로만 살아왔을 수도 있다.
다만 내가 경험한 한국의 분위기는, 때때로 능력이나 시도를 인정하는 방식이 조심스럽고 보수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었고,
사람들이 서로를 경쟁자로 바라보는 시선이나, 보여주기에 집중되는 공기도 종종 있었다.
나는 내가 살아온 한국을 사랑한다.
하지만 동시에, 나에게는 집단의 분위기(눈치, 비교, 보여주기)가 에너지를 많이 소모시키는 환경일 때도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됐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계획을 세우고 공유했을 때, 그 계획이 틀어지면
사람들이 과정 전체를 보지 않고 단면만 보고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경우도 종종 봐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과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존중하는 마음이 든다.
다만 나는 이제 “한국이 나쁘다”가 아니라, “나와 맞는 방식이 조금 다를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중이다.
내가 호주가 매력적으로 느껴진 건, 성현이의 사례처럼
“환경이 먼저 사람을 밀어올리는 느낌”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반면 한국에서는 내가 스스로 필터를 달고, 환경을 선택하고, 공기를 바꾸기 위해 더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지금, ‘어디로 가야 할까’보다
‘어떤 환경에서 내가 더 살아나는 사람일까’를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