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미화
어릴 적 나는 헤어짐이 너무 무서워서, 기억을 통째로 지워버렸다.
지워버리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 하나가 내 마음에서 빠져나가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의 바닥이 같이 뜯겨 나가는 느낌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선택했다. 기억을 ‘정리’하는 게 아니라, ‘삭제’하는 쪽을.
그때의 나는 몰랐다.
사람의 기억은 휴지통에 버리면 끝나는 파일이 아니라는 걸.
의식은 지웠다.
그런데 무의식이 남았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일상을 살았는데, 몸이 먼저 반응했다. 길에서 비슷한 뒷모습을 보면 자동으로 시선이 따라갔다. 같은 향이 스치면 이유 없이 목이 막혔다. 어떤 노래 한 줄에 심장이 쿵 내려앉고, 지나가던 계절이 문득 ‘그 사람의 계절’로 변해버렸다.
내가 지운 건 기억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설명서였다.
“왜 힘든지”를 설명할 문장들이 사라졌으니, 감정은 갈 곳을 잃고 방 안을 떠돌았다. 그래서 더 힘들었다. 슬픈데 슬픈 이유를 모르겠고, 그리운데 그리운 대상이 흐릿했다. 이건 이별이 아니라, 정체불명의 통증이었다.
그다음 사랑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찾아왔다.
이번에는 반대로 갔다.
미친 듯이 사랑했다. 정말 말 그대로였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내가 줄 수 있는 관심, 시간, 마음, 눈물, 참음, 이해, 배려, 기다림… 가능한 모든 걸 쏟아부었다. 누가 보면 ‘저 정도면 자기를 잃겠다’고 할 만큼.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시간 끝에는 한 가지 감정이 남았다.
“나는 다 했다.”
그 말은 무서운 보호막이기도 했다.
‘나는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하지 말자’라는 문장으로, 나 자신을 잠깐은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아무 생각 없이 잊었다. 마음이 텅 비었는데도, 이상하게 편안했다. 마치 큰 파도가 지나간 뒤의 바다처럼.
하지만 시간은 늘, 한쪽만 편들지 않는다.
시간은 기억을 편집한다.
사람은 잔인한 일을 오래 들여다보지 못한다.
그래서 기억은 자꾸 ‘살 만한 것’만 남긴다. 좋은 장면, 웃던 얼굴, 다정했던 말, 따뜻했던 눈빛. 그때의 내가 사랑이라 믿었던 것들이, 하이라이트처럼 반짝이며 떠오른다.
그리고 그 반짝임이 더 잔인했다.
처음의 이별은 “없어진 것”이 아팠다면,
시간이 지난 뒤의 이별은 “있었던 것”이 아팠다.
좋았던 기억만 남으니, 나는 계속 비교하게 된다. 지금의 공기와 그때의 공기, 지금의 나와 그때의 나. 그 사람의 장점만 떠오르니, 이별은 어느새 ‘내가 놓쳐버린 행운’처럼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처음보다 더 힘들었다. 마치 이별이 끝난 게 아니라, 더 예쁜 형태로 다시 시작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이별을 어렵게 만드는 건 ‘사람’이 아니라, ‘편집된 기억’이라는 걸.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후회가 없게 헤어지자.
정확히 말하면, 후회가 나를 잡아먹지 않게 헤어지자.
그 방법이 뭔가 거창한 치유나 상담이 아니라는 게 웃기기도 했다.
나는 아주 현실적인 방식으로 기억의 균형을 맞추기로 했다.
추억이 떠오를 때마다, 일부러 ‘싫었던 기억’을 불러왔다.
만남 중에 화가 턱끝까지 차오르던 순간들.
내가 했던 말이 공중에서 무시당하듯 떨어지던 순간들.
내가 배려를 ‘기본값’처럼 제공하고도, 당연하게 소비되던 순간들.
대화가 통하지 않아 스스로를 설명하다가 지쳐버린 날들.
내 자존심이 작게 접히고, 또 접히고, 결국 종이처럼 얇아지던 밤들.
나는 그 장면들을 일부러 꺼냈다.
추억이 날 미화하려고 할 때마다, 나는 현실을 가져와서 옆에 놓았다.
잔인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하는 건 상대를 미워하는 작업이 아니었다.
나를 속이지 않는 작업이었다.
나는 깨달았다.
좋았던 기억만 들고 있으면, 나는 계속 돌아가고 싶어진다는 걸.
돌아가면 또 똑같은 방식으로 상처받을 텐데도, 기억이 예쁘게 편집되면, 사람은 아픈 곳으로도 다시 걸어 들어간다. 그게 그리움의 무서움이다. 그리움은 “그때가 좋았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때로 도망치고 싶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정말 그 사람을 사랑했나,
아니면 ‘좋았던 장면들’만 사랑했나.
내 마음을 가장 혼란스럽게 만든 건, 이 질문이었다.
사람을 사랑하는 건 전체를 사랑하는 건데, 나는 어느 순간부터 ‘좋았던 장면들’과만 연애를 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이미 내 삶에 없는데, 기억 속 하이라이트만 붙잡고 다시 시작하려고 했다. 혼자서.
내가 싫었던 기억을 떠올리기 시작하면서, 이별이 갑자기 ‘쉬워졌다’기보다, 한 가지가 분명해졌다.
나는 돌아가면 안 된다.
그건 자존심 때문이 아니라, 생존 때문이었다.
내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면, 나는 나를 또 잃을 것 같았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 경계를 다시 지우고, 내 감정을 또 눌러 담고, ‘괜찮아’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강요할 것 같았다.
싫었던 기억을 불러오는 건, 나에게는 ‘안전벨트’ 같은 거였다.
나는 내가 어디에서 다쳤는지 정확히 알아야, 다시 같은 곳에서 넘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더 알게 됐다.
이별은 ‘상대를 지우는 일’이 아니라,
‘나를 다시 찾는 일’이라는 걸.
어릴 때의 나는 헤어짐이 무서워서 기억을 지웠다.
그때의 나는 “내가 사라지는 것”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르다.
지금의 나는, 기억을 지우지 않는다.
좋았던 것만 붙잡지도 않는다.
싫었던 것만 붙잡지도 않는다.
나는 그냥, 있는 그대로를 기억하려고 한다.
그 사람과의 시간에는 아름다움도 있었고, 추함도 있었다. 설렘도 있었고, 무너짐도 있었다. 따뜻함도 있었고, 차가움도 있었다. 이 모든 걸 다 인정할 때, 비로소 그 관계가 ‘추억’이 된다. 미화가 아니라, 기록이 된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이렇게 생각한다.
이별이 쉬워진 게 아니다.
내가 나를 버리지 않게 된 거다.
그리고 이게, 내가 배운 가장 현실적인 사랑의 방식이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며, 나를 더 잃지 않는 것.
좋았던 것만 추억하지 않고, 나를 아프게 했던 순간들도 함께 기억하는 것.
그래서 다시는 같은 방식으로 나를 잃지 않는 것.
이별은 끝이 아니라, 균형이다.
나를 살리는 쪽으로, 기억을 다시 배치하는 일.
나는 이제 그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