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났지만, 다시 가까워질 수는 없었다.

허전함이 남아도, 내가 왔던 길은 사라지지 않는다.

by 김준성

오래된 옷장을 열면 가끔, 잊고 지내던 향이 올라온다.
기억이란 건 참 이상해서, 문을 열기 전까지는 없던 것처럼 조용하다가도
한 번 공기를 타면 그때의 온도를 그대로 데리고 온다.


거의 10년 만에 연락이 끊겼던 친구가 그랬다.
반가웠다. 설렜다.
마치 오래 전 즐겨 입던 옷을 다시 꺼내 입는 기분이었다.


“아, 이 옷 아직도 괜찮네.”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입어보니, 단추 몇 개가 마음에 걸렸다.


움직일 때마다 어딘가가 살짝 불편했다.


옷이 나빠서가 아니라, 내 몸의 결이 그 사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술잔을 앞에 두고 오래된 박스를 꺼냈다.
그 박스는 원래 보관함 깊숙한 곳에 있어야 했다.
꺼낼 필요가 없었던 것, 꺼내면 공기가 탁해지는 것.
나는 말하고 싶었다.


“이건 다시 넣어두자. 오늘은 좋은 이야기만 하자.”

하지만 친구는 계속 박스를 열었다.
미안하다고 말하면서도, 미안함을 ‘내려놓기’ 위해 계속 꺼내 보이는 듯했다.


그때 알았다.
그 말은 나를 위한 사과가 아니라, 자기 안의 무게를 덜기 위한 고백일 수도 있겠구나.


나는 화가 나지 않았다.
크게 슬프지도 않았다.
그저 마음이 피곤해졌다.
따뜻한 방에 들어갔다고 생각했는데, 창문이 열려 있던 느낌.


몸이 먼저 알아차린다.
‘여긴 오래 머물 곳은 아닐지도 몰라.’

과거를 꺼내는 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다만 지금의 내 하루는, 그 과거 위에 다시 눕기엔 너무 단단해졌다.


나는 이미 다른 리듬으로 숨을 쉬고 있었다.
친구는 예전의 박자에 맞춰 대화를 돌리려 했고,
그 박자는 이제 내 심장과 잘 맞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된다면, 나는 다른 방식으로 앉아보고 싶다.
술이 아니라 맑은 물을 앞에 두고,
과거가 아니라 지금의 날씨를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대화가 다시 그 박스로 돌아가려 한다면,
이번에는 더 분명하게 말할 것이다.
“나는 거기까지는 함께 들어갈 수 없어.”

친구가 밉지 않다.
오히려 고맙다.


이번 만남은 나에게 한 가지를 다시 알려줬다.
불편함은 상대를 판단하라는 신호가 아니라,
내가 나를 보호하라는 신호라는 것을.

인연은 억지로 이어붙인다고 좋은 모양이 되지 않는다.


맞지 않는 단추를 힘으로 끼우면, 결국 천이 찢어진다.
그래서 나는 이제 “좋게도, 나쁘게도” 규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조금 거리를 두고, 흘러가게 두는 것.


그게 가장 안전하고, 가장 예의 있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한때 가장 친했던 친구였기에 더 시렸다.
같은 시간이 흘렀는데, 내가 앞서 나간 듯한 느낌이
어쩐지 미안하게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틈이 어긋났다면, 억지로 메우는 건 사랑이 아니라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서로가 서로의 계절을 바꿔줄 수는 없다.

성숙한 관계는 서로를 구해주지 않아도 되는 관계라고 믿는다.


만약 관계를 유지하려면 누군가가 감정적으로 내려가야 하고,
그 역할이 늘 내 쪽이 될 것 같다면
그건 ‘관계’라기보다 ‘구조’가 되어버린다.


나는 그 구조를 이제는 알아차릴 수 있다.
그래서 슬픈 것이다.
알아차린 만큼, 놓아줄 수밖에 없으니까.

이제는 건강한 이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슬픔이 따라오는 건 너무 자연스럽다.


그저 이 두 문장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 나는 이만큼 왔구나.
이 친구는 여기까지였구나.


허전해도 이상하지 않다.
눈물이 나도 이상하지 않다.
그건 내가 진심으로 관계를 대했던 사람이라는 증거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같은 방향을 가진 사람들을 조금 더 가까이 두고
그렇지 않은 인연은 정중히 보내줄 줄도 알아야 하는 시기다.


당분간 마음이 잠깐 빈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그 빈자리는 언젠가
새로운 리듬이 들어올 공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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