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뮈엘 베케트 1952 민음사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고 처음 들었던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처음에는 한번 읽고는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 독서모임에서 발표는 해야하길래 뭐라도 잡자싶은 마음에 두번째 읽으면서 생각한 것들을 정리했다.
1. 등장인물의 이름의 의미
① Albert Vladimir(Didi) - 러시아 슬라브계 이름으로 Vladi는 통치하다이고 Meru는 훌륭하다이므로, Vladimir는 ‘훌륭한 통치자’라는 뜻이다. 네 명의 주인공 중에서 이성이 있는 인물로 상황과 주변과 시간에 대해서 잘 안다. 모자에 집착한다. 네 명 모두 모자를 쓰고 있지만, 어쩌면 블라디미르가 집착하는 모자는 머리에 쓰는 것이기에 ‘두뇌’를 상징하는 것이나 통치자의 ‘관(冠)’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끈에 묶여 목에 상처가 있는 럭키에게 동정심과 분노를 가지며 인간은 평등하다고 생각한다. 고도를 기다리는 주체이다. <블라디미르(p.102) 그게 아니라, 내가 있었으면 네가 얻어맞을 짓은 못하게 했을 거란 말이다.>
② Estragon(Gogo) - 약초 Tarragon을 뜻하는 프랑스어이다. 타라곤은 프랑스 요리에서 중요한 향신료이다. 구두에 집착하는데, 그의 구두는 작고 앞이 벌어진 허름한 구두이다. 에스트라공이 집착하는 구두는 ‘낮은 자존심’을 상징한다.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포조가 먹고 버린 뼈다귀를 주워 먹고, 5프랑이라도 달라고 구걸한다. 세상에 관심이 없고 세상에 대한 회피로 늘 자고 싶어 한다. 삶에 비관적이며 죽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에스트라공(p104) : 난 원래 그렇다. 금방 잊어버리거나 평생 안 잊어버리거나 둘 중 하나다.>
③ Pozzo – 이탈리아어로 우물을 의미한다. 바구니와 주머니에서 주절주절 물건을 내놓으며 부를 과시한다. 특히 시계와 파이프에 집착한다. 거만하며 권위적이며 협박도 잘한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기만의 우물에 빠져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만 말하려 한다. 사람을 채찍으로 때리는 전근대적인 인물이다. 권위의 상징인 시계와 파이프를 잃어버리고 시력까지 상실하면서 저물어가는 ‘구시대’를 상징한다. <블라디미르(p148) : ‘사라진 그 옛날의 아름다운 추억이여!’ 괴로울 거다!>
④ Lucky – 영어로 행운이라는 뜻이다. 60년 전에 포조가 사서 노예 같은 처지로 구박과 폭력을 당하면서도 팔리지 않으려고 짐을 다 들고 서 있는다. 잘하는 것은 장광설인데, 말을 잃음으로써 그의 가치는 더 하락한다. 특별히 집착하는 것은 없지만, 목에 묶인 끈에 반응한다. 주인과 연결된 끈은 럭키에게 ‘생존’을 상징한다. 작가는 비참한 운명 속에서도 살아남은 것이 럭키가 가진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포조(p50) : 솔직히 말해서 이런 녀석은 쫓아 버릴 것도 없이 그대로 죽여버려야 하는 건데. (럭키 운다)>
⑤ Godot – 극의 내용대로라면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에게 잠자리와 먹을 것을 제공해 줄 수 있는 마을의 재력가이다. 다른 주인공들과 다르게 이름에 의미가 없다. 두 형제를 양과 염소의 목동으로 두며 블라디미르에게 못 온다는 전갈은 보낸다. 명석한 블라디미르가 고도의 수염의 색깔을 소년에게 물은 것으로 보아 실제로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2. 세계대전 이후의 프랑스
『고도를 기다리며』가 탈고되고 초연했을 때는 1952~1953년이다. 당시의 프랑스는 극심한 혼란에 시달리던 때였다. 수년간 독일 나치의 공격과 지배를 받으면서 국토가 황폐해졌고, 1946년에 새로운 정부(제4공화국)가 세워졌으나 높은 물가, 잦은 파업, 불안한 정국 그리고 식민지였던 베트남과 알제리의 독립전쟁으로 불안이 고조되던 상황이었다. 즉 미래가 불투명하고 국가의 자존심이 가장 낮았던 시대였으리라 생각된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Anti-Roman(앙티로망)이라는 사조가 생겼는데, 사르트르(카뮈와 설전을 벌이던 실존주의 철학자)가 샤로트의 『미지인』서문(1948)에 처음 사용하였다. 앙티로망은 ‘전통적인 소설의 형식과 관심을 부정하는 새로운 수법을 시도하는 것’으로 1950년대에 프랑스에서 유행하였다. 『고도를 기다리며』와 같이 특별한 줄거리나 뚜렷한 인물이 없고 사상의 통일성도 없는 자유로운 시점이 특징이다. 사뮈엘 베케트는 앙티로망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3. 종교의 시대가 저물어갈 때
①『고도를 기다리며』가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블라디미르가 구세주와 함께 못 박힌 두 도둑 이야기를 꺼내며 성경의 부정확성을 지적한다. 이 이야기가 담겨 있는 복음서는 신약 성경의 4대 복음서 중의 하나인 「누가복음서」인데, 예수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을 다루고 있다. 누가는 예수의 제자가 아니고 바울이 선교한 인물이다. 실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던 상황을 지킨 이는 열두 제자 중에 유일하게 요한뿐이다. 요한은 「요한복음서」를 썼다.
② 포조가 럭키를 팔러 가는 시장은 생소뵈르 시장인데, ‘구세주’라는 의미이다. 생소뵈르는 프랑스 남부에 있는 도시 이름이고 생소뵈르 성당(St. Sauveur Cathedral)은 500년경에 지어진 초창기 그리스도교 성당이다. 이것은 지역을 특정할 수도 있고, 일부러 구세주를 비판하려는 장치로 볼 수도 있다.
③ 20세기 초중반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데미안(1919),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1930), 이방인(1942)은 물론 그리스인 조르바(1946) 등에서 전쟁의 참상에 도움 되지 못한 서구의 종교, 즉 그리스도교에 실망하고 비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4. 힘겹게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위로
① 크누크 - 포조는 60년 전에 럭키를 크누크로 두었다. 옛날 궁정의 어릿광대는 재미난 말과 행동으로 웃음을 주었다. 이것을 상징하듯 ‘연극’‘서커스’‘뮤직홀’등의 단어가 극 중에 나온다. 네 명의 등장인물은 관객에게 크누크가 되어 우스꽝스러운 말과 동작으로 웃음을 준다. 욕설 퍼붓기나 세 개의 모자 돌리기는 어릿광대의 재롱 중의 하나이며, 럭키가 속사포처럼 쏟아낸 아무말 대잔치도 크누크의 역할이다. 등장인물들은 엉뚱한 춤을 추며 맹맹한 연극에 활기를 준다.
② 약자 –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노숙자이며, 럭키는 거의 노예와 같으며, 포조는 시력을 상실하여 장애인이 되었다. 불안한 사회 속에서는 모두가 약자와 같을 것이다. 관객들은 늙은 노숙자와 장애인들이 하루를 버티는 것을 보며 그들에게서 위로받고, 그들을 응원하며 같이 고도를 기다린다.
5. 내일을 밝히는 희망의 무대
고도는 오지 않고 막은 내리지만,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퇴장하지 않는다. 이것은 ‘내일’은 고도가 올 것이라는 희망을 보여주는 열린 결말이다. 사는 것이 배고프고 고달플지라도 ‘내일’이라는 희망을 품으면 그래도 살만하다는 뜻을 담고 마무리한다.
사뮈엘 베게트는 삶은 지배하는 것은 고통이라 하였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고도’는 고통을 견디게 하는 기약 없는 기다림이며 ‘내일’이라는 이름의 희망이다.
p52. (포조) 이 세상의 눈물의 양엔 변함이 없지. 어디선가 누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면 한쪽에선 눈물을 거두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오. 웃음도 마찬가지지요. 그러니 우리 시대가 나쁘다고는 말하지 맙시다. 우리 시대라고 해서 옛날보다 더 불행할 것도 없으니까 말이오. 그렇다고 좋다고 말할 것도 없지. 그런 얘긴 아예 할 것도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