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의 파숫군 요산 김정한

김정한 선생 단편선『사하촌』을 읽고

by 방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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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국 동쪽에 있다고 이름지어진 낙동강(洛東江). 강원도에서 남해까지 천삼백 리를 굽이굽이 흐른다. 길고 긴 시간 유유히 흐르던 강물은 마침내 물줄기에 모아온 토사를 쏟아낸다. 평야는 새로운 생명력을 얻어 기름지고, 쌓이고 쌓인 토사는 섬을 이루고, 땅을 풍요롭게 한다.


우리 시대에 낙동강의 파숫군이 살았다. 낙동강을 좋아해서 거닐고 보고 들은 것을 글로 빚었다. 그는 소설가인 요산 김정한 선생이다. 선생은 높은 금정산 남쪽으로 연결되는 남산 아래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에는 서울, (일본) 동경, 남해 등 부산 밖에서 활동하였으나 동아일보가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삭제 기사로 폐간 위기에 몰리자 동아일보 동래지국을 인수하면서 부산으로 돌아왔다. 결국 반년도 안되어 동아일보는 폐간되고, 선생은 치안유지법으로 옥고를 치르자 「묵은 자장가」를 마지막으로 붓도 꺾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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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요산 김정한 선생의 『사하촌』을 읽었다. 대표작인 『사하촌』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김정한 선생의 단편선에는 총 열한 개의 중 ‧ 단편 소설이 실려있다. 선생은 ‘나는 그물을 가지고 구름 잡는 듯한 이야기는 자신이 없다.’라고 「오키나와에서 온 편지」 서두에서 말한다. 선생의 단편은 모두 있을 법한 일이거나, 실제 있었던 일이다. 일본 유학 중 잠시 돌아왔을 때 처가가 있던 양산에서는 농민 봉기 사건이 있었다. 선생은 이 일에 적극 참여하면서 경찰에 연행되어 고문까지 받았다. 결국 유학을 접고 남해에서 교원 생활을 하며 단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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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단편 소설은 동경 유학 생활 중에 쓴 「구제 사업」이나 제목만 남아 있고 내용은 전해지지 않는다. 고국 땅으로 돌아와 1932년에 처음 발표한 단편은 「그물」인데, 사음(마름)의 ‘그물’에 걸려 소작논을 떼이는 농민이 주인공이다. 조선일보 신춘 문예에 당선되어 김정한 선생을 중앙 문단에 이름을 알리게 한 「사하촌」은 절 아랫마을 소작농들의 억압된 삶이 결국 봉기로 이어지는 듯한 결말로 끝난다. 이렇듯 선생의 소재는 시작부터 현실에 있었다. 붓을 꺾은 지 이십오 년 만에 발표한 소설은 ‘차마 묵묵할 도리가 없’는 마음으로 쓴 「모래톱 이야기」인데, 그때부터 선생은 낙동강을 배경 삼아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선생은 항상 시의적절하게 당대의 화두를 신속하게 단편으로 발표했다. 「모래톱 이야기」는 을숙도 원주민을 몰아내려는 유력자의 횡포를, 「인간 단지」는 1970년에 국제신문에 보도된 부랑자 수용시설인 영화숙 ‧ 재생원이 음성 나환자 수용시설인 성화원을 습격한 사건에서 시작되었다. 영화숙 ‧ 재생원 ‧ 성화원은 같은 원장이 운영하였는데, 각종 보조금 ‧ 후원금 횡령과 노동력 착취와 가혹한 폭력으로 지금도 법정에 있다. 「오끼나와에서 온 편지」는 1973년부터 오끼나와에 노무자로 파견된 우리나라 처녀들과 1975년에 교도통신에 실린 배봉기 할머니의 위안부 증언을, 자전적 소설인「위치」의 창작 배경에는 박정희 정권의 동아일보 백지 광고 사태가 있고, 가장 어두웠던 1985년에는 마지막 단편인「슬픈 해후」를 발표했다. 해방 전의 주제는 봉건적 사회에서 벌어지는 지주들의 수탈이라면, 해방 후의 주제는 근대화라는 명목으로 벌어지는 국가의 폭력과 무관심이다. 하지만 두 시대가 통하는 것이 있다면 등장인물들이 부조리한 현실에 체념하지 않고 연대와 공동체로 맞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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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촌』 마지막 장을 덮고, 요산 김정한 선생의 발자취를 찾고 싶은 마음에 부산 금정구 남산에 있는 『요산 김정한 문학관』으로 향했다. 김정한 선생이 태어나신 생가의 일부가 복원되었고, 그 옆에 문학관이 있다. 문학관의 규모는 작았지만, 그분이 작품을 쓰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전시되었다. 직접 만든 우리말 카드가 커다란 서랍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고, 장편 소설 『삼별초』를 쓰기 위해 1014년부터 1273년까지 중요한 일을 월별로 구분하여 꼼꼼하게 쓴 고려사 연대표도 있었다. 그날그날의 기록을 남긴 듯한 누렇게 색바랜 일기장들도 있었다. 그것은 한 개인의 이야기면서 선생이 보고 듣고 만난 역사의 한 모습이기도 했다.


김정한 선생이 예순 가까운 연세에「모래톱 이야기」로 다시 붓을 들었을 때, 부산은 선생의 소설 속으로 들어왔다. 부산 사투리로 말하고 천마산, 구포, 하단, 자유시장 등 낯익은 지명이 나오고 을숙도의 자연을 소개한다. 그것은 부산에 대한 “소개”이고, “증언”이다. 차마 ‘묵묵할 도리가 없어’「모래톱 이야기」에서 갈밭새 영감의 바람처럼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세상의 약자에 대한 기록을 남기려는 마음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소외와 차별과 억압 속에서도, 그리고 실패로 끝났을지언정 찬란히 빛나는 인간의 고유 권한인 저항으로 그들의 존재 이유를 밝힌다. 이러한 밑바탕에는 사랑이 깔려 있다. 소설가가 비뚤어진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고 폭로해봤자 소외되고 억압받는 하층민의 비참한 삶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민초들의 삶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될 것이다. 「모래톱 이야기」의 건우는 끝내 학교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중학교도 졸업 못하고 사회에 나갔을 건우는 그래도 그에게 관심을 주었던 선생님을 평생 생각하며 힘들 때마다 위로받았을 것이다. 김정한 선생의 마음은 『논어』에 나오는 공자님 말씀을 빗대서 말하면 “충서(忠恕)”라고 할 수 있다. ‘진심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 바로 타인에 대한 공감이다. 어린 시절에 종조부에게 한학(漢學)을 배웠다던 김정한 선생의 마음에 일찍이 충서(忠恕)가 씨앗이 되어 평생을 일관되게 뜨거운 마음으로 작품을 쓰셨을지도 모르겠다. 선생이 따로따로 심었던 단편들은 마침내 커다란 연리지가 되어 부산 문학에 깊은 뿌리를 내렸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가 피는 봄이 되면 요산 김정한 선생이 다녔던 낙동강을 따라 ‘조마이섬’이라 불린 을숙도에도 가보고, 「수라도」의 배경인 양산 원동면 화제리에도 가보고 싶다. 올해 『요산 김정한 문학관』에서 문학관 개관 이십 주년을 맞이하여 선생의 소설뿐만 아니라 수필도 새롭게 선보일 수도 있다니, 수필가로서 선생의 수필집인 『낙동강의 파숫군』의 재출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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