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계간지『여기』68호
저 산에 지는 해는 쉬고 싶어서 지느냐
날 두고 가는 임은 가고 싶어서 가느냐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음음음 아라리가 났네
내 나이 스무 살 때 『서편제』가 개봉했다. 눈이 멀어 시선이 느껴지지 않은 송화가 보이지 않는 먼 곳을 응시하고, 유봉이 그녀를 다그치는 그림이 영화관에 큼직하게 걸려 있었다. 사람들은 줄을 이어 영화를 봤고, 한국 영화 최초로 백만 관객을 넘었다는 기사를 방송이 연일 내보내고 신문은 대서특필했다. 이제 갓 어른이 된 나는 영화가 주는 감성을 제대로 읽지는 못했지만, 유봉과 송화와 동호가 황량한 돌담길을 지나며 신명 나는 ‘진도아리랑’을 부르던 행복한 모습은 기억에 남았다. 아니 어쩌면 방송을 통해 수십 번도 더 보아서 영화의 한 대목이 각인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소리를 향한 양아버지의 집념과 파국으로 치닫는 영화의 비극도 이 구성진 ‘진도아리랑’ 장면에 묻혀버렸다. 당시 위력적인 할리우드 영화가 쏟아지던 영화 시장에서 『서편제』는 한국 고유의 소리로 한국 영화계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끌었다.
추수할 것 없는 쓸쓸한 청산도의 돌담길을 걷는다. 바다, 바람, 물결, 나무, 언덕, 동산… 십일월의 청산도는 『서편제』의 ‘진도아리랑’이 울려 퍼질 때처럼 풍경은 쓸쓸하지만, 마음만은 신명 나는 민요 가락처럼 설렘으로 가득 찼다. 흑발과 백발이 섞인 초로의 부인들은 소녀들처럼 까르르 웃어가며 돌담길을 걷고 쪼르르 사진을 찍으며 바다와 바람이 주는 행복을 만끽한다. 부산에서 청산도까지. 어둑한 새벽부터 서둘러 그 먼 길을 단숨에 달려왔지만, 문학기행이라는 즐거움 속에서 오히려 웃음꽃이 더 크게 피었다. 누가 선창했는지, 우리는 당리의 돌담길에서 구성지게 ‘진도아리랑’을 부르고 어깨춤을 추며 금세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같은 길을 걷는다는 것, 같은 것을 본다는 것. 오래된 회원도 갓 들어온 새내기 회원도 친구가 되어 나란히 황톳길을 걷는다.
십일월의 황량함 속에서도 아직 돌담 아래 봉숭아는 주렁주렁 붉은 꽃을 피웠고, 맨드라미도 닭 볏 같은 꽃잎을 빨갛게 치켜세우며 자태를 뽐낸다. 어린 시절 우리 동네에도 집집이 담 아래 봉숭아와 맨드라미가 담뿍 피어있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첫눈에 대한 희망을 담아 봉숭아 꽃잎을 찧고, 백반을 넣어 섞은 후에 손톱에 올려 비닐로 싸고, 명주실로 돌돌 감았었다. 작은 손톱을 물들인 다홍색이 소녀의 수줍음이었다면, 선홍색으로 고고하게 피어있는 맨드라미는 마치 귀부인 같은 당당함으로 보였다. 꽃말이 ‘열정’인 맨드라미가 동네에 많이 심겨진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청산도 해설사 선생님이 청산도에 맨드라미가 많은 이유를 설명하는데, ‘닭벼슬꽃’이라고도 불리는 맨드라미는 자식이 출세하여 벼슬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담긴 꽃이란다. 청산도 해설사 아니랄까 봐 청산유수로 흐르는 해설사 선생님 설명이 이어진다. 얼마나 땅이 척박하면 돌을 쌓은 후에 구들장을 놓고 다시 흙을 덮어 농사지었겠는가. 지금은 전복과 멸치 등 수산업으로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청산도이지만, 옛날에는 정말 팍팍한 삶이었으리. 이런 척박한 땅에서 자식이 입신양명하여 출세하기를 바라는 희망을 맨드라미에 담아 돌담 아래 심었나 보다. 그러고 보니 율곡 이이 선생이 그려진 오천 원 뒷면에도 신사임당의 그림인 맨드라미가 은은하게 그려져 있는 것도 같은 의미일 거다.
『서편제』에서 임권택 감독이 그때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청산도까지 와서 영화의 가장 행복하고 희망적인 장면을 찍었던 이유가 이런 연유일 것 같다. 약장수와 다투고 맥없이 터벅터벅 걷던 느린 걸음. 갑자기 아버지는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을 부르고, 수양딸이 ‘아라리가 났네…’ 받아 부르고, 아들은 ‘덩, 덩, 덕 쿵덕’ 세마치장단에 맞춰 북채를 힘차게 두드린다. 단단한 돌담과 빨간 맨드라미, 짙은 바다. 모든 것이 희망이었다. 영화의 배경이던 60년대에도, 영화를 개봉한 90년대에도, 삼십여 년이 지난 오늘도 청산도는 여전히 희망적인 파랑이다.
패스트푸드, 고속 열차, 택배 배송. 우리는 빠름의 편리함 안에서 살고 있다. 편해서 좋지만, 쉼표를 어디에 찍어야 할지 모르고 하루를 보낼 때도 많다. 현대인의 여유와 쉼에 대한 동경으로 느린 마을 청산도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 봄에는 유채꽃과 청보리밭이 당리를 가득 메웠고, 여름에는 동글동글 몽돌 해변인 진산리 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기고, 가을에는 국화리의 단풍길을 걸으며 붉은 단풍나무를 감상하고, 겨울에는 슬로길을 따라 범바위에 오른다. 청산도는 2007년에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Slow city)로 지정되는 영광을 얻었다. 까다로운 슬로시티의 조건을 충족하는 청산도는 슬로시티 그 자체이다. 청산도 여기저기 그려진 달팽이 그림처럼, 청산도 앞바다에 떠 있는 거북이 바위처럼, 청산도는 느림과 여유의 미학 속에서 조화롭게 발전해 간다.
씨줄과 날줄을 탄탄하게 교차하며 ‘청산도는 쉼표다’를 새기듯이, 땅과 시대와 사람이 만들어온 역사와 철학이 바탕이 된 청산도의 이야기는 파란 바다를 따라 쉬엄쉬엄 이어진다. 잠시 내 마음에도 희망의 쉼표를 찍는다.
덧> 슬로 시티 : 2025년 현재 총 15개 도시 지정 – 완도군 청산도, 신안군 증도, 담양군 창평면, 하동군 악양면 그리고 예산군 대흥면, 상주시 함창읍, 청송군 주왕산면, 영월군 김삿간면, 제천시 수산면, 태안군 소원면, 영양군 석보면, 김해시 봉화마을, 서천군 한산면, 춘천시 실레마을, 장흥군 유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