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 1948. 민음사
일본의 사기극은 끝났다. 가면은 벗겨졌고, 나라는 파괴되었다. 가면을 쓰고 기괴하게 웃던 아이는 이제 표정이 없다. 아니 존재가 느껴지지 않는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은 다자이 오사무의 마지막 소설이다. 출판사에 『인간 실격』을 보낸 후 출판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다섯 번째 만에 성공한 자살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고, 곧 출판된 『인간 실격』에 이목이 쏠렸다. 연재하고 있던 「굿바이」는 그가 남긴 마지막 여운이다.
그는 천재이다. 그의 소설은 예리하고 섬세하게 천천히 사회 고발을 확장해 간다. 초기의 작품들은 『직소』처럼 부당한 제도에 대한 한 개인의 고발이 많다. 점점 그는 확대하여 『사양』에서는 수백 년 내려온 일본의 귀족제도에 대한 몰락을 그렸고, 마지막 『인간 실격』에서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한방 먹였다.
오바 요조(大庭 葉藏)의 이름을 해석하면, ‘넓은 마당에 감추어진 잎’정도로 볼 수 있다. 요조는 나무에 매달린 이파리처럼 가볍게 행동하지만, 실제 감정을 숨기며 넓은 세상에서 살아간다.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 크게 다스린다)의 이름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보인다.
1. 외부인의 눈에 보인 요조의 어린 시절은 웃고 있지만 웃는 얼굴이 아니다. 마치 일본 특유의 눈만 웃고, 입은 웃지 않는 ‘일본인 미소’처럼. 세종대학교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일본인의 이러한 미소에 대하여 옛날 사무라이 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무사 앞에서 불편함을 드러냈다가는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하니까 사람들이 속마음을 숨기고 겉으로 웃는다는 것이다. 일본은 이런 가짜 미소(대동아 공영권)를 가지고 조선과 중국 그리고 더 멀리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하지만 일본이라는 나라는 넓은 세상에 있는 하나의 잎에 불과하다. 바람 불면 바들바들 떨 수밖에 없는 이파리는 강한 척 가면을 쓴다.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겪으며 스스로 강하다는 자기기만에 빠졌고, 연합국들과 동급이라 생각했다. 다자이 오사무는 일본 본토의 북쪽 끝인 아오모리현 쓰가루 지방 출신이어서 그쪽을 배경으로 삼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오모리현이 일본의 변방이기에 세계의 변방인 일본으로 표현하기에 안성맞춤이기도 하다. 일본은 서양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익살로 그들에게 인정받고, 일본 국민을 속이면서 세계 중앙으로 진출했다.
2. 도쿄에서의 흥청망청 돈을 쓰며 문란하게 살던 오바 요조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아버지가 도쿄의 집을 정리하면서 경제적 위기에 부딪쳤다. 요조처럼 세계에 불어닥친 대공황을 타개할 능력이 일본에게는 없었다. 결국 더 파괴적인 방법으로 외부에 시선을 돌려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더 강압적으로 조선을 억압하였다. 마치 요조가 스스로를 파괴하며 알코올과 약물에 의존하듯이. 결국 요조가 정신병원에 갇히듯이 일본도 세계에서 고립된다.
또한 집안과 외모와 머리를 다 갖춘 오바 요조에게 빠진 것은 책임감이다. 사람과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야말로 다자이 오사무가 본 ‘인간이 가져야 할 자격’이다. 요조는 궁지에 몰리면 항상 도망한다. 자살하려 하거나 줄행랑을 치거나 술에 의존하거나. 그는 자신 스스로조차 책임지려 하지 않고 일도 하지 않는다. 일본 제국주의가 무리하게 일으킨 전쟁은 패배했다. 본토에는 원자폭탄이 두 개나 떨어졌고, 다자이 오사무도 가족들과 함께 피란길에 올랐다. 전쟁이 끝나고 미군 점령군이 들어왔을 때, 군국주의를 주창했던 일본 정부는 ‘민주주의 만세’를 외쳤다. 그들의 부끄러운 행태는 『인간 실격』의 시작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로 이어진다.
3. 가까운 사람을 속이며 뿌듯해하던 오바 요조는 요시코 사건 이후에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늙기 시작한다. 또 요시코와 호리키가 그를 속여서 정신병원에 감금하고, 늙은 식모는 ‘여느 때의 상자와는 다른’약을 사 온다. 자기기만에 걸려 넘어진 요조처럼 일본 제국주의도 대동아 공영권을 주장하며 사람들의 귀와 눈을 막은 속임수로 아시아를 전쟁의 도가니에 몰아넣었지만 결국 패망했다. 인과응보이고 사필귀정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일본은 항복했다. 더 이상 식민지에서 짜내올 물자도 없었고, 일본 본토도 파괴되었다.
오바 요조가 머리가 굉장히 붉은 늙은 식모에게 맡겨진 채 허름하고 낡은 큰 집에서 생활한 3년은 점령군인 미군에게 유린당한 일본 본토의 3년이다. 식모는 붉은 머리이고 이름은 테스이다. tess가 의미하는 것은 <trans Eurasian security system 유라시아 안보시스템>이다. 식모가 요조에게 잠들게 하는 칼모틴이 아닌 밤새 화장실에 가게 하는 헤노모틴을 사 온 것도, 미국이라는 나라가 일본을 제대로 대접을 해주지 않는다는 암시가 숨어 있다. 일본은 제대로 일어서지 못하고 구린내만 풍기는 나라가 된 것이다. 아니면 모른 척 자신들이 파괴한 세계를 잊으려 했겠지만, 결국 잠을 이루지 못하고 냄새나는 방귀(へ)를 뀌며 제국주의가 싼 똥을 치워야 한다는 의미도 가진다.
오바 요조의 나이는 27살이다. 일본이 제국주의에 도취되어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만주사변을 일으킨 1931년부터 따지면 1948년은 27년이 되는 해이다. 또 사람들은 백발이 많은 요조를 마흔 살 이상으로 보기도 한다. 세계의 신생국인 일본은 결국 자기 꾀에 걸려 확 늙어버린 것이다.
『인간 실격』을 덮으며 가장 궁금했던 구절은 마담이 마지막에 한 말이다. “그 사람의 아버지가 나쁜 거예요.” 마담의 말에 생각했다. 왜 아버지를 나쁘다고 할까. 생각 끝에 아버지를 단순한 오바 요조의 아버지가 아닌 제국주의에 심취하여 국민을 제대로 성장시키지 못한 지배계급으로 보았다. 일본 사회를 탐구하고 윤리적 문제를 소재로 다룬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들은 어둡다는 이유로 문학상에서 번번이 낙방하였다. 다자이 오사무는 신문을 통해 “작은 새를 키우고, 무도회를 보러 다니는 것이 그렇게 훌륭한 생활인가?”라고 공격하거나 자신의 소설을 통해 권세를 누리는 소설가를 대놓고 비판했고, 그 작품인 『쓰가루』를 가장 아꼈다고 할 정도로 스스로 뿌듯해했다.
1948년 6월 13일, 다자이 오사무는 연인 야마자키 도미에와 약을 먹고 다마강 수원지에 투신하였다. 다섯 번째 만에 성공한 죽음이다. 그리고 7월 25일에 『인간 실격』이 출간되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은『인간 실격』과 『유다의 고백』만 읽었다. 그러나 그의 생애와 소개된 다른 작품들을 볼 때, 그에게 수식어처럼 따라다니는 Decadence(퇴폐, 쇠락)나 無賴派(무뢰파)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는 현실을 외면한 것이 아니고 부조리한 일본의 모습과 윤리를 비판하고 싶었고, 그러한 목소리를 소설에 담았다. 그의 소설은 퇴폐미가 아니고 반성과 참회를 담고 있다. 단순히 『인간 실격』이 소심한 부잣집 도련님의 파멸만 다루었다면 이처럼 모든 사람의 심금을 울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가 『인간 실격』에서 철저하게 일본에 대해 ‘직소’했다면, 『유다의 고백』에서는 사랑하는 조국을 위한 자신의 고뇌를 ‘참회’한다.
다자이 오사무는 조국을 사랑했다. 그래서 『인간 실격』은 이렇게 끝난다. “우리가 알던 요조는 아주 순수하고 자상하고… 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아니 마셔도… 하느님처럼 좋은 사람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