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수미 Jun 27. 2024

딸의 성장통

  딸에게 첫 번째 성장통이 찾아왔다. 청소년기의 아이들이 다 그렇듯 친구 문제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 워낙 소극적인 아이라 중학생이 되어 활발하게 친구들과 함께하고 다양한 체험을 하는 것이 너무 이뻤다. 딸도 그동안 뿜어내지 못한 에너지를 매일매일 쏟으며 재미있는 중학 생활을 한다. 그런 아이가 어젯밤에 울었다.  

초2때 쓴 첫 동시

  딸은 초등학교 다닐 때 밖에서 친구들과 뛰어놀기보다 교실에서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다독상도 받고 독서 골든벨에서 4등을 하기도 했다. 글쓰기에도 관심이 많아 간혹 동시를 짓곤 했다. 얼마 전에 시민 공원에서 학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백일장을 주최하길래 나들이 삼아 다녀오길 추천했더니 정말로 친구랑 갔다. 두 소녀는 아침 일찍 돗자리와 필기도구를 준비해서 백일장에 참가했다. 시제는 ‘바다’였는데, 어떻게 기승전결에 맞춰서 잘 쓰고 제출했단다.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 거리가 있는 공원에서 구경도 하고 놀고 온다더라. 마침 정명훈 지휘자의 공연이 시민 공원에 있다고 알려주니 친구와 공연까지 잘 보고 어둠이 내려앉은 후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는 집에서 경전철을 타고 시민 공원을 다녀왔는데, 친구랑 단둘이 다녀온 가장 먼 길이었다. 아이를 데리러 마중 나갔다가 같이 돌아오는 길에 그날의 모험을 재미나게 들었다. (시민백일장에서 아이와 친구는 중학생 장려상을 받았다.) 그날의 추억이 어찌나 좋았는지 두 소녀의 행진은 계속되었다.     

  딸 친구가 아이에게 토론대회를 나가자고 제안했다. 목소리가 세상 작은 두 아이가 논쟁을 벌이는 토론을 나가겠다니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적극 추천했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에서 세운 부산포 해전이 ‘대첩’으로 승격되어야 하느냐 마느냐가 주제이다. 마침 나도 이 부분에 대해 향토 사학자에게 수업을 듣고 있어서 잘 아는 부분이고 아이가 이런 역사에 관심을 가지면 좋을 것 같았다.      

  딸과 친구는 대회장에서 지정해 준 네 권의 책을 읽으며 열심히 토론대회를 준비했다. 순풍만 불 것 같던 두 아이에게 위기가 찾아온 것은 어제였다. 딸은 학급행사에도 참여하기로 했는데, 딸 친구는 그것이 못마땅한 듯하다. 내가 볼 때 두 가지를 같이 하는 것이 큰 무리가 아니었고 딸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토론 지도 선생님이 딸에게 한 가지만 집중하면 좋겠다고 하니 딸은 학급행사를 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그래서 같이 참여하기로 한 단체 대화방에 참가를 못 할 것 같다고 올렸고, 세 아이 중에 두 아이는 흔쾌히 알았다고 했는데, 한 아이가 화가 난 듯한 부호를 달았단다. 딸은 미안한 마음에 그때야 나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앞의 사정을 모르고 학급행사에서 친구랑 단체로 참가하니 해야 한다고 말했다. 딸은 토론 친구에게 다시 학급행사를 나가겠다고 했는데, 그 친구가 불같이 화를 내며 장문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자기는 정말 열심히 토론대회를 준비하는데 상대방은 그렇지 않다는 것에 실망한 듯하다. 토론대회까지 접자고 한다. 결국 딸은 눈물을 흘렸고, 처음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나와 남편은 친구들에게 딸이 크게 잘못했음을 알려주었다. 단 하루 사이에 결정을 번복하는 것이 친구를 화나게 한 행동이고, 학급행사에서도 같이 연습한 친구들에게 갑자기 안 한다고 말한 것은 책임감 없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처음에 딸에게 일의 시작과 끝을 다 듣지 않고 쉽게 조언해 준 부모의 문제도 있었음을 시인했다. 딸은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이번에는 네 명의 친구에게 미안해서 나오는 눈물이라고 한다.      


  이렇게 된 이상 학급행사는 안 하는 것이 맞다, 친구에게 토론 준비를 잘하겠다고 자꾸 이랬다 저랬다 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반 친구들에게도 정식으로 미안한 마음을 담아 사과하라고 조언했다. 딸은 오늘 아침 안 떨어지는 발걸음으로 학교에 갔다. 나와 남편도 어떻게 되었을까 걱정되어 하루 종일 시계만 본다.      

  20여 년 전에 재미있게 보았던 청소년 드라마 『반올림』이 생각난다. 중학생 이옥림(고아라 役)이 겪는 사랑과 우정의 성장 드라마이다. 청소년들에게 잘 어울리는 제목이다. 오늘 아이를 보니 지금 솔과 라 사이에서 허덕인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을 이용하여 반올림한다. 그저 함께 놀기만 하면 좋았던 시절은 지났다. 딸에게 책임과 의무가 생겼다. 결과를 번복하면 안 된다던가, 사과에 진심이 담겨 있어야 한다던가, 두 가지 일을 병행할 때는 더 열심히 해야 한다던가… 아이는 이번에 호되게 성장통을 겪었다. 어두운 얼굴로 땅만 바라보며 등굣길에 나선 딸이 하굣길에는 친구들과 화해하고 웃는 얼굴로 꽃을 보며 돌아오면 좋겠다. 지금 수국이 탐스럽게 피었는데 수국처럼 밝게 웃는 얼굴이길 바란다.     

덧말>

딸은 친구들과 화해하고 언제나처럼 활기차게 집으로 돌아왔다.

책가방만 던져놓고 친구랑 놀겠다고 나갔다.

참 다행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