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수미 Oct 31. 2024

어머니

흰 것

  창백한 반달만 떠 있다. 겨울바람이 창호지 문을 덜그럭거릴 때, 한 여인이 혼자서 아이를 낳았다. 그녀의 어린 큰 딸은 불리지 않은 빳빳한 미역으로 미역국을 끓이고 더 어린 작은 딸은 옆집에 가서 시간을 물었다. ‘금방 12시 종을 쳤으니까 한 5분쯤 지났나 보다.’ 달이 머리 꼭대기에 걸렸을 때 아기는 태어났다. 날이 밝자 아기의 누나들은 아기의 태를 묻으러 산에 갔다. 소나무 아래 흰 무엇이 있길래, 그곳에 아기의 태를 묻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흰 것은 백복령이었단다.     

 

  언젠가 남편이 태어난 집에 가 본 적이 있다. 작은 돌담이 있는 작은 마을은 시간이 멈춘 채 수십 년이 흘렀다. 한 사람 지나갈 수 있는 작은 골목을 올라가니 마당에서 포구가 한눈에 보인다. 슬레트 지붕에 방 두 개, 부엌 한 개, 그리고 작은 마당. 수십 년 전에 시댁은 집을 팔고 섬을 떠나 육지로 나왔다. 남편 나이가 다섯 살 때이다. 아버지는 이미 육지에서 수협에 근무하셨고, 집에 오시는 날은 한 해에 날을 꼽았다. 어머니 혼자서 다섯 남매를 낳았다. 아마 처음에는 시할머니랑 큰어머니가 도와줬을 테지만, 남편은 오로지 어머니 혼자서 낳았다. 이제는 누군가의 창고로 쓰이는 그 집 안에 들어가니 낯설면서 친숙한 두 가지 느낌이 한꺼번에 몰려든다.     


  월요일 아침에 전화벨이 울렸다. ‘오늘’을 넘기지 못할 것 같다는 큰아주버님 말씀이다. 일주일 전에 뵈었을 때 사랑하는 손자를 알아보고 손자에게 ‘할머니 보고 싶었어요’라는 말을 들었었는데. 설마, 하면서도 부랴부랴 짐을 싸고 학교에 간 아이들을 조퇴시켜서 어머니에게 갔다. 흰 서리처럼, 냉냉한 침묵만 가득한 차 안. 쉬지 않고 달렸지만, 어머니는 끝내 막둥이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가셨다. 조상이 도왔을까. 남편은 차를 장례식장으로 몰았고, 우리가 도착했을 때 어머니도 도착하셨다. 장례식장 직원들의 배려로 안치실에서 어머니와 마지막으로 만났다. 어머니의 몸은 아직 온기가 있고 보들보들했다. 하지만 흰 머리만큼 몸도 희어지고 있었다. 혹시나 붙잡으면 다시 잡힐까 봐 어머니의 몸을 흔들며 가지 말라고 큰 소리로 불렀다. 끝내 어머니는 다시 눈을 뜨지 못했다. 유언처럼 남은 말씀 한마디만 귓가에 울렸다. ‘행복해야 한다.’ 정신이 온전했을 때 하신 마지막 말씀이다.     

  전국에 흩어졌던 형제 조카들이 모였다. 상주들을 바쁘게 할 요량으로 문상객들도 흰 구름처럼 밀려들었다. 입관하는 시간. 장례지도사는 흰 장갑을 끼고 친절하게 입관 절차와 용품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하였다. 아마도 처음에는 희었을 거다. 언제 만드셨을까. 오랫동안 보관하면서 흰 수의는 노래져 버렸다. 수의를 입고 있는 어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니 꿈인가 생시인가 경계에서 생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럽게 흐르는 눈물 속에서 장례지도사의 말이 들린다. 한지 고깔, 용의 비늘, 일곱 개의 탑, 노잣돈, 관포. 아이들은 외롭게 혼자 낳으셨지만, 가는 길은 자식들의 배웅을 받으셨다. 어머니가 가시는 날에 첫눈이 내렸다. 어머니는 깃털 같은  흰 눈을 맞으며 흰 새처럼 날아가셨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두어 달 전부터 머릿속을 하얀 지우개가 지우곤 했다. 지우개가 지나간 자리는 하얗게 비워졌고, 어머니는 수십 년의 세월을 잊었다. 아침이면 옷을 갖춰 입고 모자를 쓰고 가방을 싼 채 배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아야 왜 아직 배가 안 온다냐?’ 그러면 큰아주버니는 ‘방에 가 계시오. 뱃고동 소리 들리면 부르러 갈 테니까요.’ 어머니가 가고 싶었던 섬은 어디일까. 물어보았지만, 그곳이 어디인지 어머니도 모르신다. 본능이 이끄는 대로, 고향 소모도일 수도 있고, 다섯 아들딸을 낳고 키운 대모도일 수도 있다.  어머니가 정말 배타고 떠나실까봐 어머니 뒷모습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한강의 『흰』을 읽다 보니 어머니가 생각났다. 흰 겨울, 흰 달, 흰 밤, 흰 복령, 흰 실, 흰 머리, 흰 수의, 흰 눈, 흰 가루. ‘흰’ 것이 이렇게 어머니와 잘 어울린다. 어머니와 흰 것. 두 개가 더 떠오른다. 항상 어머니는 삼 년간 간수를 뺀 소금을 주셨다. 수분이 하나도 없어 고실고실하고 딱딱한 소금을 만질 때, 마치 다이아몬드 결정체를 손바닥에 궁글리는 느낌이 이럴까 싶다. 그리고 하얀 설탕. 소문난 어머니 손맛의 비결은 설탕이었다. 적절한 설탕으로 달지 않으면서 맛있게 만든 음식은 아무도 따라갈 수 없는 어머니만의 눈대중 손맛이었다.      


  어머니가 가신 지 벌써 삼 년이다. 혼자서 다섯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는커녕 아이를 낳자마자 밭에 나가서 일하셨다. 그렇게 쉼 없이 일하셨고, 결국 나이가 들자, 온몸에 안 아픈 데가 없으셨다. 이제 고통 없는 곳에서 편하게 지내시겠지, 싶지만, 그래도 가끔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진 속 어머니는 그저 웃고 계신다.


작가의 이전글 부산의 다크투어, 기장 죽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