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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르미 Oct 28. 2022

영화 에세이, <네버 렛 미 고>를 보고 나서

“인간다움을 유예하는 길”


가끔씩 뜬금없는 상상을 할 때가 있다. 로봇으로 인해 편리해진 일상이라던가, 의료기술이 발달해 죽지 않게 된다던가 하는 상상들 말이다. 조금은 다른 맥락이었지만, 영화 <Never Let Me Go>와 같은 상상 역시 해본 적 있다. 임신을 하지 않고 유전자 조작으로 나의 유전자를 가진 복제 아이를 만드는 상상이었다. 한편 영화에서는 인간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장기를 제공하는 복제인간의 등장을 전제한다. 영화는 헤일셤의 복제인간인 캐시, 토미, 루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를 본 후, 영화의 내러티브에서 굵직한 부분들을 세 가지의 테마로 정리해보았다. 첫째 ‘캐시와 토미의 관계’이고, 둘째 ‘루스의 자아성찰’ 그리고 셋째 ‘갤러리의 존재’이다.


‘캐시와 토미의 관계’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이다. 수술대 위에 누워있는 토미를 바라보는 캐시의 장면으로 이 영화의 서사는 시작한다. 시작부터 비극적인 결말이지 않을까 유추해보게 되었는데 이는 슬프게도 맞아떨어졌다. 둘의 진정한 사랑은 ‘루스’로 인해, 그리고 사실이 아니었던 ‘기증 유예’로 인해 안갯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그럼에도 마지막 캐시가 수평선처럼 곧은 벌판을 바라보며 토미를 떠올리는 장면에서의 대사는 캐시와 토미의 관계가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게 한다. 벌판을 보며 토미를 떠올리고, 토미가 걸어올 것 같은 상상을 하지만 그 이후를 떠올리고 싶어 하지 않아 하며, 복제인간이 살리는 사람들의 목숨과 자신들의 목숨이 그토록 다른 건지 스스로 확신을 내리지 못하는 물음이 곧 캐시가 인간성에게 던지는 저항의 메시지로 들렸다. 마치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정의 내릴 수 없는 난제에 던진 돌직구와 같았다.



두 번째로 주목하게 된 테마는 바로 ‘루스의 자아성찰’이다. 루스는 캐시와 토미 사이에 흐르는 감정을 빨리 알아채고, 토미를 캐시에게서 빼앗았다. 캐시와 토미의 관계를 끊어내는 역할이었다. 그러나 이후 캐시가 간병인이 된 이후 10년간 서로 만나지 못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되자 토미를 함께 만나러 가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실제로 토미를 만나러 가서 캐시와 토미와 함께 해안가에 있는 버려진 배를 보며 자신의 진심을 고백한다. 자신이 버려질까 봐 둘의 관계를 끊어낼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잘못에 용서를 구하며 이제라도 둘의 진실된 사랑으로 기증을 유예받기를 소망하며 주소가 적힌 쪽지를 건넨다. 특히 이 장면에서 가장 돋보였던 것은 루스가 기증이 시작된 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다고 스스로 고백한다는 점이다. 과거를, 즉 자신을 성찰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고유한 특성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계속해서 복제인간과 인간의 차이를 좁히려는 작가의 설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 번째로 영화에서 ‘갤러리’는 특별한 존재이다. 인간다움을 증명하는 길로써 등장하는 ‘갤러리’라는 존재는 여러 생각을 가능케 한다. 먼저 헤일셤 교장은 ‘갤러리’를 헤일셤 아이들의 표현과 창의성을 증명하는 도구로 사용하였다. 즉 헤일셤 복제인간의 인간다움을 증명하기 위해 선택된 것이었다. 반면 토미가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그렸던 그림들은 교장의 의도와는 전혀 상반되는 것이었다. 토미의 내면에 있는 감정을 표현해내는 것으로, 토미의 진정한 사랑이 담긴 것이었다. 마지막에 기증 유예를 신청하러 간 곳에서 그들이 만난 헤일셤의 교장은 이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헤일셤은 복제인간을 성장시키며 인간의 도덕성과 더불어 복제인간의 인간성을 시험하는 공간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시험의 공간이었던 헤일셤에서 자란 캐시와 토미, 루스는 공간에 복종하지 않았다. 물론 자신의 장기를 기증해야 하는 결과적 운명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헤일셤이라는 공간이 설정된 목적에 이용되지 않았다. 인물들이 표현해내는 감정들의 미세한 떨림과 감독이 의도적으로 설정한 이미지와 구도들이 이를 암시한다. 가장 극적으로 표현된 부분이 캐시, 토미, 루스가 마지막에 함께 보러 간 해안가의 버려진 배가 등장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차를 타고 가다가 펜스에 가로막힌다. 마치 복제인간은 절대로 ‘인간’이 되지 못한다는 인간의 우월성을 상징하는 듯했다. 마치 복제인간은 도구로써 사용되어야 한다는 인식의 상징 같기도 했다. 그러나 토미와 캐시가 잘 걷지 못하는 루스를 부축하며 펜스를 넘어 해안가로 걸어가는 장면을 통해 영화의 메시지를 유추해볼 수 있었다. 인간다움을 정의 내리고, 복제인간을 시험해보는 것은 결국 인간의 우월성을 공고히 할 뿐이다. 반면 토미와 캐시, 루스는 쉽게 펜스를 넘어 마냥 걷는다. 해안가의 버려진 배를 보러 가기 위해, 자신들의 의지에 따라 행동한다. 단순한 행동 속에 굳은 의지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세 가지 테마에 따라 영화의 굵직한 부분들을 정리해보았다. 영화를 보며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인간다움을 시험하고, 증명하는 매체로 ‘예술’이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영화에서는 예술을 인간의 창의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던 반면, 개인적으로는 창의성이 아닌 ‘사랑의 표현’에 예술의 지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캐시와 토미의 관계처럼 말이다. 캐시와 토미를 보며 창의성으로 인해 예술이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인간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감정들 중 가장 소중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간직하고 기록하고 나누기 위해 예술이 시작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현대미술 전시를 보러 갈 때마다 여러 사회적 이슈들을 비판적으로 해석해 표현하는 작가님들의 결과물들 깊은 곳에도 결국 인간애, 즉 사랑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사랑이라는 감정이 없으면 관심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고, 관심이 없다면 결국 표현의 동기는 발견될 수 없을 것이다. 기증을 유예하기 위한 길로 캐시와 토미가 ‘예술’로 증명하려 했던 진정한 사랑이 ‘인간다움’ 그 자체가 아닐까. 예술은 캐시와 토미처럼 표현의 도구로 사용되어야 한다. 헤일셤 교장처럼 예술을 단순히 증명의 도구로 사용한다면, 그것이 인간다움을 유예하는 길이 되어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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