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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희 Apr 23. 2022

웅크려듬의 냄새를 벗어나자.  봄이다.

소극적인 행동과 마음은 죄악이 되는 계절

4월 20일.


여느 때와 같은 날이지만,

조금은 다른 점이라면 오늘은 몸이 노곤하고

마음이 무기력하다는 점은 좀 다르겠다.



굿모닝 , 데일리 루틴.

그래도 매일 아침에 하는 일이라면 엄마라는 옷을 내 몸에 끼워 입고 아이를 깨워 세수를 시키고 아침까지 어떻게든 먹이며 예쁜 옷을 입혀가지고는 다정히 아이 손을 잡고 유치원으로 향하는 것이다.


유치원 문 앞. 선생님께 아이를 인계하고 돌아서는데 조금은 개운하지만  찜찜함이 앞서기 시작한다. 집에 가는 그 길목에서는 아주 잠깐 그러니까 아주 잠깐의 고민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유인즉슨 다이어트 후에 요요현상으로(코로나때문이라고는 차마 양심 때문에 하지 못하겠다.)  다시 불어난 체중을 빼본답시고 며칠 동네 어귀를 산책했는데 오늘따라  발이 무거워서 집으로 가고 싶어 졌다. 일단 발걸음을 옮기긴 하는데 집과 산책코스갈랫길 앞에 서서 눈을 질끈 감고는 아파트 입구 쪽으로 택한다.





맞다. 나는 하루 운동을 거를 작정인 거다.  풀기에 보면 일개미들이 아이들이 먹다 버린 사탕 냄새를 맡고는 일렬로 줄지어 오밀조밀 사탕을 향해  기어가는 장면을 보지 않나. 그게 꼭 나 같았다. 내가 게으름의 본능에 충실한 개미 같아서 솔직히 좀 웃기다. 집에 꿀발라놓은 것도 아닌데 다급히 종종걸음을 친다.


집에 오면 매일의 루틴을 거행한다.  조금 더 부지런할 필요성이 있는 아침이다. 나는 애써 베란다 문을 활짝 열고 , 널브러진 이부자리를 정리해보고 켜켜이 쌓인 젖은 수건들을 세탁기에 넣어 표준 코스 키가 눌러놓고는 무거워진 어깨를 들어 청소기를 들고 지겨지만 필수 의식인 청소를 거행한다. 10분.. 20분. 슬슬 어지럽다. 그리고 잠시 누워있고 싶다는 내 생각은 간절해진다.  

현관 앞에 위치한 침실로 이끌리듯 들어가 큰 몸뚱이를 푹하니 던지고 푹신한 이불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번엔 개미가 아니라 굼벵이일지도.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시간 그리고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 시간이며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격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cf의 카피 문구가 간절해진다. 흔히 이런 걸 보고 사람들은 그걸 게으름이라고 부른다. 하긴 10시면 직장인들은 업무를 시작할 시간이니 나는 너무 빨리 방전된 아닌지 걱정도 되기도 하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이불속에 코를 박아 잠시 눈 좀 붙이려는데 , 어디선가 익숙한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상상 속의 냄새일지도 모른다. 킁킁 냄새를 맡아본다. 흡사 오래된 이불 냄새도 아니고 퀴퀴한 곰팡내도 아닌데 그냥 너무 익숙해서 싫은 집 냄새에 가깝다고 판단된다. 상상을 해보자면 한 겨울 하루 종일 아무 데도 나가지 않고 , 온종일 침대 한구석 내 자리에 누워 몸의 지도를 이불에 그리고는 늘 움츠려 있었던 그 겨울날 오래된 이불 냄새와 흡사하다. 이틀을 감지 않아  벅벅 긁어대던 기름진 머리냄새일지도 모르겠다. "운동 좀 해라  살이 더 쪘네." 핀잔 주는 엄마의 전화에 이제 곧 일어날 거라며 거짓말을 하고는 다시 누워버렸던 내 몸의 냄새가 기억나기도 한다. 그렇게 귀찮음이 찾아올 때 게으름이 찾아오려 할 때 무기력의 공기가 내 방에 가득 차고 잊었던 퀴퀴한 움츠려듬의 냄새가 항상 내 코에 찌릿한다. 그때의 그 냄새  답답한 공기가 오늘은 함께 하는 기분이다. 몸은 더 찌뿌둥하고 무기력함은 더 몰려온다. 가만히 있는다고 나아질 건 없다.



이제 오전 11시 누워있으면 뭘 해 바깥으로 나가자.


이제 열심히 살아보기로 한지는 6개월이 지났다. 어떤 책임감 때문인지 내뱉은 말 때문인지 원인은 모르지만 나는 많이 바뀌려고 애를 썼고, 의식이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본보기를 꾸준히 보여주려 부지런을 떨었다. 책을 읽고 기록을 하고 가끔 산책도 하고 뭐 먹고살지 고민도 하고. 요샌 이렇게 생각해본다.


' 누워있으면 뭘 해 바깥으로 나가야지. 나가서 퀴퀴한 게으름의 냄새도 무기력한 공기도 저 쨍한 햇빛 속에 소독해야지. 그리고 따뜻한 볕에 광합성을 해야지. 사람도 동물이잖아 어쨌든 자연의 섭리를 거부할 수 없으니 해를 보고 맑은 공기를 마신다면 내 마음이 한층 더 나아질지도 몰라. '


나는 행동이 인식을 앞선다는 것을 보일 작정이다. 바람막이에 프라다 원단 고무줄 바지를 챙겨 입고 모자를 쓰고 운동화를 신고 오늘은 산책코스로 뒤늦은 걷기를 하러 출발한다. 오늘은 경춘선 숲길이 선택했다. 봄날의 흐드러진 꽃들이 보고 싶어졌다.  꽃 이름은 모르지만 제각기 색을 뽐내고 어떤 조향사도 만들어내지 못할 향기의 꽃들이 저 멀리서도 눈에 보인다. 사람들도 눈에 들어온다. 많은 사람들이 걷기 운동을 하고 자전거를 탄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도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도 상관없이 어디론가 걷는다. 다들 무기력의 냄새를 없애려 광합성을 하러 나왔을지도 모르겠고, 혹은 그저 살을 빼기 위해 앞만 보고 걷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사람들은 활기차고 눈빛은 살아있었다. 어쨌든 여기 모인 사람들은 행동이 의식을 이긴 승리자들인 셈.


내가 산책로를 따라 쭉 걷는데 이번엔 낯선 냄새가 내 코를 찌르기 시작한다.  이번엔 냄새가 아니라 향기에 가깝다. 달큼하면서도 진해서 코를 박고 맡으면 머리가 멍해질 것만 같이 깊은 향의 원액. 색은 오색빛깔 원색에 탁함이란 1도 찾아볼 수 없음이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가 꽃들 앞에 쪼그려 앉아 연신 사진 셔터를 누를 만큼 오늘의 꽃은 참 예뻤다.


'인간의 힘으로 저렇게 예쁜 꽃 만들기 경진대회를 만들어도 자연의 이치는 죽어도 따라오질 못할 거야 '


스스로 원색의 색을 만들고 향을 뿜어내는 꽃의 기운이 생생해서 좋았다. 오늘의 산책은 이만하면 성공이다.


침대에서 빠져나오길 잘했다. 아니면 이런 꽃도 못 볼뻔했으니까. 가다 보니 한 시간을 걷다가 이내 내 개미굴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해가 중천이니 배도 고프다. '집에 가면 흰밥에다가 맛있는 프라이와 김치를 먹어야지. 그리고 책을 읽고 블로그에 독서감상문을 써야겠다. 책도 새로 읽어야 하고'  할 건 많네. 그렇다 사람은 나가서 해를 보아야 한다. 가끔은 눕고 싶을 때 억지로 서있기도 하고 계단도 오르내려보고 슬퍼도 웃어보고 무기력해도 바쁜 척 좀 해야 한다. 봄이 아닌가. 봄에는 누구나 그래야만 한다.


오늘은 봄의 기운이 한껏 좋았는지 게으름의 냄새도 움츠려듬의 냄새도 나지 않았던 봄날의 하루였다.  내일도 꽃구경을 하러 나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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