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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계절 Oct 16. 2023

(분노의) 뜨개구리

뜨개질 하면 차분해진다고 누가 그랬어

2년 전인가, 3년 전인가. 뜨개인들에게 유행이었던 아이템이 있다. 대바늘로 만드는 개구리 인형, 이른바 ‘뜨개구리’다. 오늘은 뜨개구리를 만드는 동안 겪은 고난과 역경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이 귀여운 친구의 완성 사진을 먼저 보고 넘어가자. 글을 쓰고 있는 시점으로부터 약 10분 전 완성된 따끈따끈한 아이다.    

 


1. 발단

오랜 친구 A가 있다. 귀여운 걸 아주 좋아하는 친구다. 주변에 뜨개질하는 사람이 나뿐이었는지, 그 친구는 뜨개구리 사진을 보내주면서 만들어달라고 했다. (본인이 만들 생각은 없어 보였다.) 뜨개구리 첫인상은 귀여웠다. 눈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았고, 막 뜨개질 초보 커트라인을 벗어나 자신감이 넘쳐있던 내게 도전의식도 심어주었다.


처음에는 정말 만들어줄 생각이었는데 당시 뜨고 있던 옷이 있기도 했고 일이 바쁘던 때라 어물쩍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나 도안을 찾아보니 유료였다. 굳이 돈을 주고 사고 싶을 만큼의 욕구는 없었기 때문에 또 그렇게 한 번 넘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영원히 도망쳤어야 했지만 실패했기 때문에 이 글이 나왔다.


2. 전개

A를 데리고 뜨개실 가게를 간 게 화근이었다. 고백하자면 뜨개구리는 이미 기억에서 지워졌고, A와 시간이 맞아 함께 갔을 뿐이었다. 나는 내 작품을 위한 실을 골랐고 A는 뜨개구리를 위한 실을 골랐다. 무려 세 볼의 실과 바늘까지 사서 내게 건넸다. 뜨개인에게 실과 바늘을 제공하면서 작품을 요구한다면 이건 정당한 요구다. 유료 도안까지 결제해준 친구를 위해 바늘을 들었고 마침내 캐스트온.    

  

3. 위기

시작하자마자 위기였다. 손이 커 4mm 보다 얇은 바늘은 손에 쥐지 않는 내가 생전 처음 3mm의 숏팁으로 코를 잡고 뜨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실은 자꾸 빠지고 바늘은 손에 익지 않아 미끈거리고. 결국 한 줄도 못 떴다. 코 3개 거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다니. 난 아직 멀었구나.


한계를 느꼈지만 잠시 고민하다 실을 두 줄로 겹쳐 4mm 바늘로 뜨기로 했다. 인형이 조금 커지겠지만 일단 해보자, 라고 어리석은 생각을 해버렸다. 3mm 바늘과 4mm 바늘의 편물 크기가 얼마나 차이 나는지 모르는 자의 선택이었다.


더듬더듬 도안 읽으면서 뜨는데, 이게 뭐람. 왜 이렇게 어려워. 겉뜨기와 안뜨기를 제외하고 알아야 하는 기법이 10개. 심지어 두 코 모아 겉뜨기,가 아니라 k2tog로 써있다. 영어로 써 있다는 말이다. 세상에. 영어 약어를 익혀두지 않고 필요할 때마다 대충 검색하면서 뜨개질 해왔던 내 과거가 미웠다. 덕분에 나는 몸통을 뜨는 데에만 수차례 검색을 해가며 기법을 하나씩 찾아봤다.


어떻게든 몸통을 뜨고, 뒷다리를 떴다. 뒷다리 두 개를 뜨고 나니 내 눈에 보이는 건 손바닥 크기의... 두꺼비? 이게 뭐지? 아직 앞다리가 없어서 그런가, 왜 징그럽지? 차마 이틀 동안 끙끙대며 뜬 편물에 입 밖으로 징그럽다는 말을 하진 못하고 목구멍으로 삼켰다. 하지만 내 노력을 무시하듯 동생이 무심하게 한마디 했다.


“뭐야. 너무 징그러워.”


애써 못 들은 척, 눈을 달아주려는데 일부러 사 온 플라스틱 인형눈이 들어가질 않았다. 납작하고 실로 고정할 수 있는 눈을 샀어야 했는데 불룩하고 고정되지 않는 눈을 샀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여기까지 시행착오를 겪자 손이 저절로 바늘을 놔버렸다.


에라이 때려치워! 나는 뒷다리만 달린 개구리(?)를 뒤로하고 뜨개를 포기했다. 그렇게 한참 지나고, A가 은근한 독촉하기 시작했다. 실까지 건네주고 반년이 넘도록 아무 소식이 없으니 그럴만하다. 큰소리 치며 금방 떠주겠다고 장담했던 과거의 나를 욕하면서도 13년 지기 친구를 위해 나는 다시 뜨개구리 앞으로 돌아갔다.

    

4. 절정

홧김에 개구리를 포기했다고 그동안 뜨개를 쉰 건 아니었다. 대바늘 코바늘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떴다. 그래서인지 다시 개구리로 돌아왔을 때 시작이 어렵지 않았다. 얇고 작은 바늘이 무서워 굳이 두 겹씩 잡지 않아도 됐고 장력 조절도 자연스러웠다. 나.. 조금 강해진 걸까?


새로 시작한 개구리는 이틀에 걸쳐 (조금 고생했지만) 완성했다. 여기서 두 번째 고난이 발생한다. 이 조그만 아이에게 옷을 입혀주려는 생각이 잘못되었던 걸까. 나도 다른 뜨개구리들이 입는 스웨터를 주고 싶었을 뿐인데.


일단 옷이 너무 작아서 원형으로 뜰 수가 없었다. 전개도처럼 평면으로 뜬 다음 마지막에 원통으로 이어줘야 하는데, 하필 내가 뜨려는 디자인이 줄무늬였던 거다. 소매 분리도 평면, 목단과 밑단도 모두 평면. 이걸 줄무늬로 뜨고 나면 지옥이 펼쳐진다. 뜨개의 모든 과정 중 내가 가장 기피하고 싫어하는 것, 바로 실 정리. 귀여운 앞면과 그렇지 못한 뒷면이 날 기다렸다.


수많은 가닥을 하나씩 정리하고 있으면 차라리 개구리를 두 마리 뜨고 말겠다는 생각만 든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실 정리를 끝내고 나면 드디어 뜨개구리 완성이다.      


5. 결말

사진으로 본 뜨개구리와 내 손으로 만든 뜨개구리는 느낌이 다르다. 사진 속 남의 뜨개구리도 귀엽지만 내가 뜬 뜨개구리는 훨씬 귀엽다. 앙증맞고 깜찍하다. 잘못 샀던 플라스틱 인형눈 대신 집에 있던 단추를 달아준 것도 좋은 선택이었다. 덕분에 더 장난스럽고 개구쟁이 같은 느낌이 난다.


완성하자마자 집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친구를 위해 만들었기 때문에 곧 내 손을 떠나간다는 사실이 슬프다. 하나를 더 만들면 되지 않겠냐고 하겠지만 친구에게 약속한 개구리는 두 마리. 등이 노란색인 개구리를 만들어야 한다. 아직 미션을 완수하지 못했다. 임무 완수 전에 내 뜨개구리는 없다. 그러니 어서 뜨자. 오늘도, 내일도 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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