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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계절 Oct 22. 2023

언제쯤이면 어른이 될까 - 카라 스웨터

가늠되지 않는 미래를 떠올릴 때 꼭 듣는 노래가 있다. 윤현상과 아이유가 함께 부른 ‘언제쯤이면’이라는 노래다.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며 언제쯤이면 웃으며 마주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노래인데, 음악적 구성도 좋지만 나는 무엇보다 그 단어 자체에 꽂혔다. ‘언제쯤이면’이라는 말의 어감이 그렇게 좋다. 이 노래를 오랜만에 찾아들었는데, 유난히 이번 뜨개가 오래 걸린 탓이었다. 대체 언제 완성하냐는 마음으로 노래를 들으며 떴다. 

시간이 오래 걸린 이유를 찾자면 첫째가 내 게으름일 수 있겠지만 이번에는 그런 이유 말고 진짜 핑계가 있었다. 우선 ‘주디스 매직 캐스트온’을 처음 해봤다. 아니, 뜨개를 몇 년이나 취미로 가졌다는 사람이 어떻게 주디스를 이제야 처음 해보나, 하고 생각할 수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니까. 하지만 진지하게 뜨개를 즐겼던 지난 몇 년 동안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다. 왜냐면 어려워 보이니까....


어려운 게 싫다. 취미가 아니어도 날 힘들게 할 것들이 사방에 널렸는데 굳이 재밌자고 시작한 일까지 내가 고민하고 애쓰며 이뤄내야 하나? 평범하게 코 잡고, 겉뜨기와 안뜨기, 그리고 코를 늘리거나 줄이는 방법만 알아도 뜰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지만 어느 순간 입이 트이며 풍월을 읊은 서당개의 심정으로 나는 갑자기 발전 의지가 솟구치고 말았다. 정말 아무 동기 없이 말이다. 좁은 원통 뜨기가 귀찮아 매번 반소매 혹은 조끼만 만들던 사람인데, 갑자기 긴 소매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거기에 더해 그동안 외면해온 기법을 익혀야겠다는 생각까지 모두 한 번에 들었다. 대체 무슨 바람이 든 건지 알 수가 없다. 사람이 이렇게 갑자기 변하면 큰일 난다던데. 


이유가 뭐든 이렇게 의지가 충만해지는 건 1년에 몇 번 없으니 생각난 김에 바로 바늘을 들었다. 새로 익힐 기법을 주디스 매직 캐스트온으로 정하고 긴 소매 옷을 생각하니 자연스레 카라 스웨터로 정해졌다. 역시 욕심만 많은 내 도안 목록에 카라 스웨터가 있어 따로 도안을 찾아볼 필요도 없었다. 자, 그럼 준비는 다 되었고 시작만 하면 되는데 두 줄 뜨자마자 손을 멈췄다. 이게 맞아?


영문으로 Judy’s 라고 시작하는 걸 보니 주디라는 분이 아마 처음에 만들었거나 널리 알린 사람인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런 방법을 생각하신 겁니까 주디 선생님. 보통 편물을 양면으로 뜨기 위해 많이 쓰는 방법인데, 정작 편물은 양면으로 엉망이 되고 나만 진땀을 빼고 있었다. 처음 몇 번을 코 잡기에서 실패하다가 겨우 틀리지 않고 코를 건 후에도, 이쪽 저쪽 바늘을 옮기는 과정에서 자꾸 코가 빠지고 풀리는 바람에 풀어내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카라 스웨터에서 가장 중요한 카라를 뜨는 데에만 일주일은 걸렸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한 스웨터. 에어울 라이트 그레이 색상을 사용했고, 두 줄로 잡아 5mm 바늘로 진행했다. 카라와 고무단은 4mm 바늘로 떴다. 소매를 뜨면서도 대체 얼마나, 어디까지 떠야 할지 몰라서 뜨다가 열 번도 더 입어봤다. 도안에 분명 떠야 하는 단수가 적혀 있었지만 게이지가 완전히 같지 않은 이상 도안은 그저 참고용이다. 입어 보면서 어느 길이가 내 팔에 가장 잘 어울리는지 고민하며 떴다. 손목을 지나 손등을 살짝 덮는 포근함을 위해 여러 번 입은 노력 덕분에 원하는 기장으로 완성되었다. 


이제 주디스를 익힌 덕분에 장바구니에 담아두기만 했던 다른 도안들도 건드릴 수 있다. 아직 한 번에 정갈하고 예쁜 태가 나오진 않지만 그래도 시도를 해볼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나. 어릴 때는 이 나이쯤 되면 하고 싶은 일은 모두 하고 살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재는 게 많아져 못 하는 일 투성이다. 


고등학교 때였나, 써놨던 일기 중에 ‘어른이 되면 더는 새로운 걸 배우고 싶지 않다’는 말을 쓴 적이 있다. 인생의 목표가 수능과 입시였던 수험생이었던 때다.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걸 몰랐던 18살의 일기였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만나이 도입으로 어려진 게 아니라 원래도 어린 사람이었다. 어른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짊어지기 싫어하는, 어중간한 사람이다. 몸은 자랐는데 책임은 힘겨운 내가, 언제쯤이면 받아들임과 떠나감에 익숙해지고 인내할 줄 아는 어른이 될지 모르겠다. 대체 언제쯤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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