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리모델링 공사를 했다. 욕조를 없애고 샤워 부스를 만들었다. 화장실은 훨씬 넓어졌으나, 내가 그토록 좋아하던 욕조가 사라져 무척 서운했다. 나는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고 입욕제를 넣은 뒤 몸을 쉬게 하곤 했다. 온몸에 열이 오르고 땀이 쫙 나면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집에 욕조가 없다.
두 달쯤 지나 결국 이동식 간이 욕조를 구입했다. 크기가 너무 커서 욕실에 안 들어가면 어쩌나, 너무 작아서 몸을 충분히 움직일 수 없으면 어쩌나.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리뷰가 가장 많은 제품으로 골랐다. 요즘은 리뷰 조작도 많다지만, 제품에 대한 지식이 없을 땐 그나마 리뷰가 등대 역할을 해주기도 하니까.
예전 욕조보다 크기는 작지만, 접이식이라 쓰지 않을 때는 접어서 세워 놓을 수 있어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욕조에 몸을 담그니 온몸이 노곤해지며 피로가 풀렸다. 그 온기 속에서 문득 어머니와 목욕 다니던 시절이 떠올랐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우리 가족은 외할머니와 몇 년을 같이 살았다. 강동구 길동,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선 그곳이 당시에는 논과 밭, 과수원이 펼쳐진 시골이었다. 겨울이면 추수가 끝난 논에 물이 얼어 썰매와 스케이트를 탔다. 신나게 놀고 나면 어김없이 얼굴과 손이 텄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손이 터서 피가 나곤 했다.
겨울밤이 되면 어머니는 물을 따뜻하게 데워 우리 4남매를 모두 앉혀 놓으셨다. 손을 물에 불리게 한 뒤 때를 밀고, 잘 말린 후 바셀린을 듬뿍 발라 주셨다. 다음 날이면 손이 보드라워졌지만, 그 효과는 며칠 가지 않았다. 찬 바람을 맞으며 놀면 손은 다시 텄고, 어머니는 또 바셀린을 발라 주셨다.
어머니의 또 다른 겨울 행사는 우리를 대중목욕탕에 데려가는 일이었다. 새벽 4~5시에 일어나 1시간쯤 걸어서 목욕탕에 갔다. 사람이 붐비기 전, 물이 더러워지기 전에 씻기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우리를 뜨거운 욕조에 집어넣어 몸을 불리게 한 뒤 한 명씩 때를 밀고 머리를 감겨 주셨다.
"네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다 씻기고 나면 기진맥진해서 정작 내 몸 씻을 힘도 없다."
철없던 나는 때를 너무 세게 민다고 투덜거리기만 했다. 목욕을 마치고 나오면 어머니는 온몸에 로션을, 튼 손에는 바셀린을 꼼꼼히 발라 주셨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공중목욕탕의 뿌옇게 서린 김, 비누 향과 물 내음이 섞인 특유의 개운한 냄새, 그리고 기력이 다해 탈의실 평상에 잠시 누워 계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엄마, 이제야 집이 완성된 거 같아. 욕조가 없는 집은 미완성된 집이었어." 새로 산 욕조에서 목욕을 마치고 나온 딸이 행복한 표정으로 말했다.
딸아이의 발그레한 볼을 보며 나는 다시 그 시절 평상에 누워 계시던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쩌면 그때 우리를 완성시켜 주었던 건 뜨거운 목욕물이 아니라, 당신의 몸이 부서져라 자식들을 씻기고 챙기셨던 어머니의 그 고단한 사랑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