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제발 검증된 음식 좀 먹으면 안 될까?

식재료는 적어도 말대꾸는 안 하니까

by 정희

결혼 전, 요리는 늘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김장철이면 엄마와 여동생이 밤새 김장 준비를 할 때도 나는 "난 못해"라며 책만 붙들고 있었다. "넌 솜씨가 없으니 설거지나 해"라는 말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너무나 당연했다.


하지만 결혼 후, 참 난감해졌다. 밥때가 되면 가족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며 밥을 달라고 했다. 겨우겨우 밥상을 차려내긴 했지만 늘 엉망이었다. 동생들이 우리 집에 오면 "엄마 집 반찬이랑 누나 집 반찬이 똑같아"라고 말하곤 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는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친정에서 얻어먹는 것도 너무 눈치가 보여 그만하기로 했다. 식구들 하루 세끼를 책임져야 하는 처지. 그렇게 내 인생의 훈련은 시작됐다.


시간이 흐르며 요리 솜씨가 조금씩 나아졌고, 아이들에게 좀 더 특별한 음식을 먹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좋은 식당에 데려가고 싶었지만 주머니 사정은 넉넉지 않았다. 게다가 두 아이의 식성이 너무 달랐다.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먹성이 대단해 간호사가 "이 아이는 남들의 세 배는 먹어야 잠을 자요"라고 했을 정도였다. 반면 딸은 작게 태어나 잘 먹지도 않고 입맛은 까다로워 웬만한 음식은 한두 번 먹고 나면 다시는 입에 대지 않았다. 그 아이에게 뭐라도 먹이고 싶다는 간절함 때문에 나는 더 요리에 매달렸다.


그때부터 전 세계 요리 레시피를 뒤지며 연구를 시작했다. 적은 돈으로 맛있고 새롭고 재미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끝없는 실험을 이어갔다. 처음 만든 음식은 거의 무조건 실패했으나 성공할 때까지 계속 만들었다. 버리는 재료가 아까워 마음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는 수업료라 생각했다. 안 만들어 본 음식은 아프리카의 쿠스쿠스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며칠 전엔 느억맘 소스의 꼬릿한 냄새에 비위가 상한다더니, 이날은 크림 파스타를 먹고 속이 울렁거린다며 하소연을 시작했다.


"여보, 나는 매일 이름도 모르는 정체불명의 음식을 먹고 있어. 남들은 된장찌개에 김치 먹는다는데, 나도 제발 검증된 음식 좀 먹으면 안 될까?"


며칠은 한식을 차렸지만 곧 다시 내가 만들고 싶은 음식으로 돌아갔다. 바질 페스토, 크림 파스타, 팟카파오무쌉 같은 음식에 질색하는 남편의 불만에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새롭고 낯선 경험을 많이 해야 아이들이 어떤 도전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나름의 명분 아래서였다.


그러던 중 큰 변화가 찾아왔다. 그렇게 잘 먹던 아들이 군대에 가버린 것이다. 이후 제대하고 취업, 독립까지 해버리자 냉장고에 식재료가 줄지 않았다. 고민 끝에 학교에 음식을 가져가기 시작했다. 피자, 오코노미야끼, 나쵸와 라구 소스, 바질 페스토와 빵, 시나몬 롤, 분짜 등 국적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음식을 준비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동료 선생님들은 "사 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어요", "퇴직하시면 꼭 식당 하세요. 저희가 단골 할게요"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이 이야기를 자랑스레 늘어놓으면 딸은 "엄마, 그건 선생님들이 엄마 기분 좋으라고 하는 빈말이야"라며 찬물을 끼얹곤 했다.


그래도 나는 기죽지 않고 또다시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 학교로 향했다. 동료들이 맛있게 먹는 행복한 표정을 보는 것이 나의 기쁨이었고, 그 덕분에 더욱 신이 나 음식을 만들게 되었다.


학교에서의 반응에 으쓱해져 있을 때 딸이 말했다.


"엄마는 요리를 하는 게 아니야. 그냥 호기심 실험을 하는 거지. 만만한 게 식재료니까."


변명하고 싶었지만 대신 이렇게 말했다.


"그래, 식재료는 너희처럼 말대꾸도 안 하고 반항도 안 하잖아.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게 바로 식재료야."


아이들은 또 이렇게도 말하곤 했다. "엄마, 세상에 먹을 음식이 하나씩 없어져. 엄마가 그 음식을 잘하게 될 때까지 계속 만들어서 너무 많이 먹어서 나중엔 그 음식이 먹기 싫어져." 그러면 나는 대답한다. "내가 원하는 맛이 나왔다 싶으면 미션 클리어야. 성공할 때까지는 계속 먹어야지 어쩔 수 없어."


누군가 내가 만든 음식을 먹고 행복해하면 나도 행복하다. 그 행복을 위해 오늘도 나는 음식을 만든다. 비록 지금은 남편과 나, 둘 뿐이지만.


내 요리 실험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는 식기세척기와 코스트코다. 이 둘이 없었다면 나는 이토록 자유롭고 열정적으로 실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의 사랑, 나의 동반자, 식기세척기와 코스트코. 고맙다.


아참, 냉장고도 있다. 고장나지 말고 나랑 계속 같이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