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방, 그리고 마음의 빈 방
VR 속에서 만난 고대 이집트
며칠 전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몰입형 VR 전시 〈쿠푸왕의 피라미드〉를 다녀왔다. VR 기기를 착용하고 전시장 안을 걸으며 직접 탐험하는 전시였다.
순식간에 서울을 떠나 4,500년 전 고대 이집트 한복판에 서 있었다. 가이드 캐릭터 '모나'의 안내를 따라 피라미드 깊숙한 곳, 왕의 방과 왕비의 방을 걸어 들어갔다. 꼭대기에 올라 고대와 현재의 풍경을 번갈아 내려다보았고, 태양의 배를 타고 나일강을 건너며 파라오의 장례 의식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다.
호접몽과 메타버스
체험 내내 인간의 뇌가 얼마나 영리하면서도 허술한지 실감했다. 평평한 바닥을 걷고 있었지만 VR 속 낭떠러지 앞에서는 실제로 다리가 후들거렸고, 바위틈에 빠질까 조심스레 발을 내디뎠다. 고글을 벗고 밖에서 그 모습을 본다면 웃음이 나왔을 것이다.
문득 장자의 호접몽이 떠올랐다.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다 깨어난 장자가 내가 나비의 꿈을 꾼 것인가, 나비가 내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혼란스러워했던 이야기. VR 속에서 나는 현실의 나를 잊고 고대 탐험가가 되었고, 고글을 벗은 뒤에도 그 생생한 감각을 단순히 가짜라 부르기 어려웠다. 어쩌면 장자는 이미 2천 년 전에 오늘날 메타버스와 현실의 경계 혼란을 꿰뚫어 본 것이 아닐까.
가짜가 주는 진짜 위로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지는 이 경험은 단순한 놀라움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의 뇌가 가상 속 감각을 실제처럼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오락을 넘어 현실의 결핍을 보완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심리치료 현장에서는 VR이 PTSD 환자의 불안을 줄이거나, 공황장애 환자가 두려운 환경에 조금씩 적응하도록 돕는 데 활용되고 있다. 차가운 기술이 다친 마음을 어루만지는 도구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 쓰이는 기술이, 더 오래되고 더 깊은 결핍을 채우는 데도 쓰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형편이 어려운 집안의 장녀로 태어나 동생들의 제2의 부모라는 무거운 역할을 먼저 배워야 했다. 충분히 받지 못한 채 먼저 주어야 했던 그 시절의 허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세상에 완벽한 부모는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가난이나 무지, 혹은 그들 자신이 받지 못한 상처 때문에 자식을 온전히 품어줄 여유가 없었음을. 그래서 우리는 조금씩 구멍 난 가슴을 안고 흔들리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VR 속에서 이상적인 양육자를 만들어 체험하게 한다면 어떨까. 현실의 부모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지만, 가상의 부모는 조건 없는 지지와 사랑을 줄 수 있다. 비록 프로그래밍된 눈빛과 대사일지라도, 뇌가 그것을 다정한 관심으로 받아들여 준다면, 그 경험이 수십 년 묵은 마음의 흉터를 조금씩 아물게 해 줄지도 모른다. 그 체험이 오래된 결핍을 메우고 현실을 살아갈 힘을 준다면, 그것은 더 이상 가짜가 아니다.
가상현실이라는 차가운 기술 속에서, 가장 인간적인 치유의 가능성을 엿본 하루였다.
어쩌면 인간에게는 생을 통해 반드시 채워야 할 사랑의 총량이 정해져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