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 의자 위에서 <얼터드 카본>을 생각하다

by 정희

며칠 전부터 이가 몹시 아프다. 얼마 전부터 속을 썩이던 가장 안쪽 어금니가 사달이 난 것이다. 흔들리기 시작하면 결국 뽑고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는 예고된 통증이 찾아왔다.


젊은 시절부터 치아 관리를 철저히 해 왔다. 식후 양치질은 물론 치간칫솔과 치실도 빼놓지 않았고, 일 년에 한두 번 스케일링과 정기검진을 받았다. 50대까지만 해도 치과에서는 이 나이에 이렇게 건강한 잇몸은 보기 힘들다고 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이렇게 관리만 하면 평생 치아 문제로 고생할 일은 없을 거라 자부했었다.


그런데 60이 넘어가니 자꾸 안쪽 어금니가 말썽을 부린다. 결국 뽑고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는 선고를 받았다. 오랫동안 지켜온 잇몸 자부심이 무너지는 듯한 허망함. 앞으로도 내 몸은 이런 식으로 계속 낡아갈 것이라는 사실이 서러웠다.


가장 큰 걱정은 운동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줌바 댄스, 음악에 몸을 맡기다 보면 마치 내 몸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 순간 나는 음악과 하나가 된다. 내 의지는 여전한데, 고작 낡아가는 육체 때문에 멈춰야 한다니.


그러다 문득 오래전에 본 〈얼터드 카본〉이 떠올랐다. 인간의 의식과 기억을 칩에 저장해 육체가 죽어도 다른 몸으로 갈아탈 수 있는 세계를 그린 SF 시리즈다. 몸은 그저 영혼을 담는 옷에 불과하기에 돈만 있으면 젊고 강한 육체를 계속 갈아입을 수 있는 세상.


드라마는 묻는다. 육체가 바뀌어도 나는 여전히 나인가. 기억만이 자아의 전부인가.


나는 사람은 기억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육체가 바뀌어도 기억이 그대로라면 그는 여전히 같은 사람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며 기억이 흐려지는 순간들을 떠올리면 그마저도 불안해진다. 기억이 희미해질 때 나는 여전히 나일까. 어쩌면 나라는 존재는 생각보다 훨씬 더 얇은 실 위에 서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죽음이 없는 삶은 축복일까. 드라마 속 영생하는 부자들은 권태라는 저주에 걸린 듯 보였다. 영원한 삶의 지루함을 견디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인간으로서 더 이상 할 수 없는 향락을 즐기려 했다.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이가 아프니까 별생각을 다 하게 된다. 유한하기 때문에 의미를 갖는 우리네 삶. 비록 낡아가는 몸이라 서럽지만, 이 유한한 육체가 소중한 이유는 현생에서 나의 의식을 끝까지 담아낼 유일한 그릇이기 때문이다.


잘 고치고 가꾸어서 내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소중히 데리고 가야겠다. 낡아가는 몸이지만, 그 안에서 나는 여전히 나다.


부디 너무 아프지 말거라. 늙어가는 나의 탄소 육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