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의 배신

by 정희


오늘 드디어 어금니를 뽑았다. 임플란트를 여러 개 하는 사람들도 있다지만, 사랑니나 유치를 제외하고 생니를 뽑은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다. 의사는 고작 이 하나 뽑는데 세상 다 끝난 사람처럼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좀 어이없어하는 눈치였다.


너무나 무서워 온몸이 와들와들 떨렸다. 그 순간 나는 필사적으로 마음속 주문을 외웠다. 나는 아이를 둘이나 낳은 엄마야. 산고도 견뎠는데 고작 이 하나 뽑는 것에 이렇게 쫄다니.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그렇게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며 밀려오는 공포를 애써 눌렀다.


하지만 최면이 무색하게도 가장 아팠던 순간은 마취 주사였다. 뭔가 따끔하면서 이물질이 잇몸 속으로 쑥 들어오는 느낌. 막상 이를 뽑을 때는 별 느낌이 없었다. 사실 뽑는지도 몰랐다. 오히려 잘 아물도록 잇몸을 꿰맬 때 전해지는 둔탁한 압력 느낌이 더 생생했다.


마취가 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의사가 발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근본 원인은 내가 이를 잘 닦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름대로 식후 하루 3번 양치를 꼭 하고, 1년에 한두 번 스케일링과 정기검진을 받으며 최선을 다해 관리했건만.


의사가 말했다. "열심히 하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장 안쪽 어금니가 거의 닦이지 않아 잇몸 염증이 심해진 것이었다. 의사는 내게 칫솔질 연습을 시키고, 거울로 어느 부분이 잘 닦이지 않았는지 눈으로 확인시키며 철저히 교육했다. 적나라한 시각 자료와 실습으로 이어진 그 과정은, 내가 교실에서 그토록 구현하고자 했던 체험과 피드백 중심의 수업 바로 그 자체였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비슷한 일이 늘 있었다. 전 시간에 열심히 수업하고 다음 시간에 복습을 시키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금시초문이라는 듯 시치미를 뗐다. 교과서와 프린트를 들이밀어야 그제야 멋쩍어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그 내용이 아이들에게 장기기억이 될 만큼 강렬한 임팩트가 없었던 것이라고. 그래서 고안해 낸 것이 활동 중심 수업이었다. 만화를 그리거나, 문제를 만들거나, 모둠원에게 직접 설명하게 하는 방식으로.


그때 아이들이 느꼈을 당혹감을 지금 내가 치과 의자 위에서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어쨌든 나의 관리 소홀로 소중한 어금니 하나가 날아갔다. 잘 가라, 어금니. 이번만큼은 올바른 칫솔질이 잇몸 저리게 기억될 것이다.


다시는 관리의 배신을 당하지 않으려면.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