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딸과 아들, 두 아이가 있다. 미국의 작가 엘리자베스 스톤은 아이를 갖는다는 것을 '나의 심장이 내 몸 밖을 영원히 걸어 다니게 하겠다고 결정하는 것'이라 표현했다. 참으로 적절한 비유다.
두 아이는 내 삶을 지탱하는 견고한 기둥이자, 내 몸 밖에 있는 또 하나의 심장이다.
하지만 나는 이 뜨거운 사랑이 서로를 옭아매는 끈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내게 의존하게 만들지도, 나 역시 아이들에게 기대어 서지도 않으며, 그저 온 마음을 다해 열렬히 사랑할 뿐이다.
내가 태어나 누군가를 이토록 깊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아이들을 통해 비로소 배웠다.
평소 내 글에는 딸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딸아이는 자주 집에 들러 자신의 일상을 재미있고 솔직하게 들려준다. 반면 또 하나의 심장인 아들은 일이 바빠 자주 보기가 어렵다.
대화의 기회는 적지만, 그렇다고 그 아이가 내 삶에서 차지하는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아들은 연년생 누나 밑에서 나름의 핍박을 받으며 자랐다. 어른들의 사랑을 뺏길까 전전긍긍하던 누나는 늘 동생을 견제하고 괴롭혔다. 갓 태어난 동생 입장에서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자신을 매섭게 감시하는 커다란 존재가 얼마나 버거웠을까 싶어, 이제 와 웃음 섞인 안쓰러움이 든다.
동생이 생기자 딸아이는 이미 떼었던 우유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 제 몫의 우유를 동생과 똑같이 챙겨 먹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듯했다. 겉으로는 동생이 예쁘다며 어르다가도, 내 눈을 피해 살그머니 다가가 꼬집곤 했다.
아기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에 달려가 보면 언제나 그 곁엔 시치미를 뚝 뗀 누나가 있었다. 동생이 평화롭게 우유를 먹고 있으면 살그머니 다가가 젖병을 가로채 휙 던져버리기 일쑤였다.
온 집안에 쿰쿰하게 번지는 우유 썩은 냄새를 따라가다 가구 구석에 처박힌 젖병을 발견한 적도 많았다.
세월이 흐른 뒤, 성인이 된 딸아이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너 그때 동생 우유 뺏어 던지고 몰래 숨겼어. 집안에 우유 썩은 냄새가 진동을 했던 적도 많다."
딸아이는 "내가 정말 그랬어? 엄마, 나한테 아마 동생 살해 의도가 있었나 봐!"라며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는 농담처럼 주고받는 옛이야기가 되었지만, 나는 그 웃음 뒤에 숨겨진 당시 아이의 질투가 생존을 위한 나름의 치열한 사투였음을 안다.
그 시절 딸아이에게 절실했던 건 우유 한 모금이 아니라, 부모의 사랑이 안전하다는 확신이었을 것이다.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체격이 아주 컸다. 잘 먹고 잘 자서 누나보다 키우기 수월하겠다 싶었는데, 웬걸.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저녁만 되면 몇 시간씩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달래고 엎어주고 먹을 것을 주어도 소용없었다. 겉보기엔 멀쩡한데 아이는 세상이 떠나가라 울어댔다.
병원에서 온갖 검사를 다 해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모른다는 것뿐이었다.
매일 저녁이 다가오는 것이 공포였고, 속수무책인 상황 앞에서 나는 늘 무력했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야 나는 그때 아들이 겪은 것이 영아산통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직 소화기관이 미숙해 배에 가스가 차거나 젖을 잘 소화하지 못해 생기는 통증이라고 한다.
그때의 나에게는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고통이었지만.
미리 이 정보를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아기야, 네 장이 자라느라 조금 아픈 거란다. 곧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하며 배 마사지를 해주고, 조금 더 의연하게 아이를 안아줄 수 있었을 텐데.
백일 무렵이 지나자 거짓말처럼 울음이 멎었다. 원인을 몰라 아이와 함께 울고 싶었던 그 숱한 밤들.
무지가 죄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시간을 통해 나는 배웠다.
내 몸 밖으로 나간 심장은 때로 원인 모를 통증으로, 동생에 대한 질투로 나를 아프게 하기도 하지만, 그 고통마저도 사랑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오늘도 내 몸 밖에서 씩씩하게 걸어 다니고 있을 나의 두 심장에게, 뜨거운 응원을 보낸다.
사랑해 내 새끼들.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