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세상을 평등하게 듣지 않는다

by 정희

친정어머니께서는 여든다섯까지 참으로 정정하고 행복한 노년을 보내셨다. 그런 어머니에게도 가장 난감한 일은 난청이었다. 우리가 이야기를 하면 잘 알아듣지 못해 그저 빙그레 웃으시곤 하던 어머니.

"엄마, 못 들었지?"라고 물어야 비로소 "그래, 못 알아들었다." 하셨지만, 소외감을 느끼거나 화를 내는 법 없이 그저 "조금 불편하네."라며 넘기셨다.


어머니가 말씀하신 가장 큰 불편함은 성당 맨 앞줄에 앉아도 신부님의 강론이 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어머니가 돌보시던 어린 조카가 학교에서 칭찬받은 이야기를 신나게 늘어놓았는데, 할머니가 계속 못 알아듣자 결국 아이가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할머니는 내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들어!"라며 서럽게 우는 아이에게 어머니는 "미안하다, 할머니 귀가 안 들려서."라며 달래셨다.


불편함을 덜어드리고자 보청기를 권했지만, 어머니는 손사래를 치셨다. 너무 시끄러워서 도저히 낄 수가 없다는 이유였다. 당시엔 의아했다. 소리를 키워주는 기계가 왜 시끄럽다는 것인지.


인간의 뇌는 기계처럼 모든 소리를 평등하게 듣지 않는다. '선택적 주의'라는 필터를 통해 듣고 싶은 소리만 골라 듣는, 영리하고도 고집스러운 구석이 있다. 시끄러운 식당에서도 친구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북적이는 백화점에서도 내 이름엔 귀가 번쩍 뜨이는 '칵테일파티 효과'가 그 증거다.


시각도 마찬가지다. 여러 아이들 틈에서도 내 자식은 단번에 눈에 띄듯, 우리는 보고 싶은 것에 초점을 맞추고 나머지는 배경으로 지워버린다.


내 귀로 듣고 내 눈으로 보았다는 것은, 사실 내 마음으로 보았다는 얘기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된 건 역설적으로 딸아이가 쓰는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 덕분이었다. 주변 소음을 마법처럼 지워주는 그 기술을 접하며 나는 어머니의 보청기를 떠올렸다.

소음을 인위적으로 제거하는 기술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동안 내 뇌가 얼마나 치열하게 소음을 걸러내며 나를 보호해 왔는지를 반증하는 것이었다.


그제야 어머니의 보청기가 왜 그토록 시끄러웠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보청기는 모든 소리를 똑같이 증폭시킨다. 뇌의 필터가 사라진 소리 세상. 걸러지지 않은 소음의 파도를 고스란히 받아내느라 어머니의 뇌는 얼마나 비명을 지르고 있었을까.

그럼에도 난청이 심해져 자식들의 목소리마저 멀어지자, 어머니는 보청기를 다시 끼셨다. 소음의 괴로움보다 단절의 적막함이 더 견디기 힘드셨던 것이리라.


최근 메타에서 특정 목소리만 골라 들려주는 선택적 청취 안경을 개발 중이라고 한다. 만약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이 안경을 꼭 선물해 드리고 싶다.

소음의 고단함 대신 우리 목소리만 온전히 들으시며, 그 빙그레 웃음 대신 실컷 맞장구를 치셨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