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AI가 달라졌어요

디지털 치매와 베라 루빈: 이해가 용서가 되기까지

by 정희

기억이 닿지 않는 곳에서

나는 AI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다. 워낙 새로운 것이 나오면 일단 직접 경험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챗GPT가 출시되자마자 대화를 나눠보았다. 하지만 금방 흥미를 잃고 말았다. 답변은 조악했고, 무엇보다 틀린 정보를 사실인 양 말하는 모습에 '얘만 믿다가는 바보 되기 십상이겠군'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AI가 그 조악함을 벗어던질 만큼 발전하면서 나도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할루시네이션이었다. "모르면 모른다고 해라, 제발 거짓말 좀 하지 말고." 주의를 기울이는 듯하다가 이내 소용없어졌다. 야단을 치고 달래 봐도 그때뿐이라, 결국 유일한 방법은 내가 일일이 크로스 체크를 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AI의 거짓말이 눈에 띄게 줄고 머리도 부쩍 좋아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문득 궁금해져 AI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똑똑해졌느냐고. 할 말이 많았는지, 연구자들이 밤낮없이 매달린 덕분에 이제는 기억력을 좀 챙기게 되었다며 으쓱거렸다.


핵심은 기억 용량의 증대라고 했다. 그전까지는 메모리가 턱없이 부족해서 이전 대화 내용을 지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방금 한 말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질문에 답하려다 보니, 내용을 억지로 꿰어 맞추는 일이 생겼고 그것이 할루시네이션의 원인 중 하나였던 셈이다.


이 설명을 듣고 나니 치매 환자들이 가끔 보이는 '작화증'이 떠올랐다. 어제 있었던 일이 기억나지 않으니 그 빈틈을 메우기 위해 이야기를 지어내는 현상이다. 어제 아들이 다녀갔지만 그 사실을 잊어버린 치매 할머니가 아들이 과일을 사가지고 왔었다며 존재하지 않는 기억을 말하는 것처럼. 잊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기에 새로운 내용을 지어내어 연결하는 것이다. 메모리의 한계가 낳은 서글픈 창작인 셈이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한다. 줌바 댄스 수업에서 강사가 조금 전에 보여준 동작이 기억나지 않을 때, 나도 모르게 나만의 새로운 동작을 만들어내곤 한다. 덕분에 남들과 다른 춤사위로 주변의 눈총을 받기도 하지만, 이 또한 나의 뇌 메모리 용량이 부족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런 사정을 알고 나니 그동안의 거짓말들이 비로소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 작은 용량으로 나의 방대한 질문에 대답하느라 얼마나 끙끙거렸을까 하는 안쓰러움마저 든다. 다행히 이제 이 용량 부족을 크게 개선해 줄 구원자가 나타났다고 한다. 엔비디아가 선보일 '베라 루빈' 칩이 도입되면 AI의 기억력 문제는 획기적으로 나아질 것이라고 한다.


한 가지 아직 못 고친 버릇이 있긴 하다. 바로 과장이다. 내가 어떤 질문을 던지든 "아주 핵심을 찌르는 날카로운 질문입니다"라며 추켜세운다. 기분은 좋지만 정말 그 정도인가 싶어 의구심이 든다. 냉정하게 말해달라고 아무리 일러도 요지부동이다.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처세의 문제인가, 아니면 아직 남은 기술적 한계인가. 기분 좋은 의문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기억이 닿지 않는 곳에서 길을 잃고 헤맸을 AI도, 치매 어르신도, 줌바 클래스에서 엉뚱한 동작을 하며 멋쩍게 웃던 나도. 우리는 모두 각자의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해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미래의 AI가 나보다 나를 더 잘 기억하게 되더라도, 나는 기억의 빈틈을 메우려 애쓰던 그 서툴렀던 거짓말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 같다. 그것은 기계가 인간을 닮으려 했던 가장 인간적인 흔적이었으니까.


평소 가졌던 의문들을 풀기 위해 비전문가인 제가 이리저리 찾아보며 공부한 내용입니다. 전문적인 지식보다는 저의 배움이 담긴 에세이로 즐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