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과 피로 속에서, 감정만 부풀던 하루
#제주일상 #레스토랑일기 #감정기록
[오늘도 루스트에서]
2025년 3월 18일, 화요일.
어떤 날은 감정이 너무 많아서, 정작 아무 말도 하기 싫어진다.
사람이 싫은 게 아니라, 그 사람의 태도와 방식이 감당이 안 되는 날.
오늘은 그냥 그런 날이었다.
3월인데도 제주도에는 잠깐이지만 눈이 많이 내렸고, 비바람은 계속됐다. 서울도 눈이 펑펑 내렸다고 한다.
오늘은 H 누나가 너무 미웠다.
바닷가 쪽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대표자라면 가게 운영이 잘 되도록 고민하고 노력해야 하는데, 근래 들어 그녀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답답하고 화가 날 정도다.
장사가 어려운 날이면 가게 전반적인 상태를 점검하고, 청소를 하거나 인테리어 상태를 살펴봐야 한다. 전구는 멀쩡한지, 식물은 잘 관리되고 있는지, 식기나 자재 중 망가진 것은 없는지 꼼꼼히 체크해야 하는데, 그런 것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손님이 없는 날이면 온라인 홍보를 하거나 배달 어플을 관리하면서 가게의 배달율을 높일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H 누나는 그저 휴대폰만 붙잡고 인스타그램 릴스, 넷플릭스 드라마, 실시간 야구 중계를 보고 있을 뿐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너무 답답하고 미운 감정이 든다. 그러면서도 본인은 사장이라며, 2월 급여를 못 받았다고 탄식한다.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손님 응대 태도도 불만스럽다. 손님이 와도 모자를 푹 눌러쓰고 무심한 표정으로 할 말만 하고 끝낸다. 왜 좀 더 반갑고 살갑게 대하려 하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가게 운영자로서의 자격이 거의 없는데, 엄마는 왜 이 가게 운영을 H 누나에게 맡긴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면, 엄마에게도 화가 난다.
그뿐만이 아니다. 가게 뒤쪽 화장실 가는 길에는 각종 용품들이 쌓여 있는데, 손님들이 지나다니면서 보이는 곳이라 깨끗하게 정리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맞은편 에이바우트 카페 2층 손님들이 우리 가게를 쉽게 인지할 수 있도록 ‘루스트플레이스 하귀포구점’이라는 문구가 크게 적힌 현수막을 붙이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손님을 유치하려면 루스트에서 식사 후 영수증을 지참하면 에이바우트 카페에서 10% 할인을 받을 수 있도록 제휴 이벤트를 진행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한데, 이런 것에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아르바이트생 A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인 일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식당 특성상 손님이 식사 후 테이블에 양념이나 소스 자국이 남기 마련인데, 단순히 테이블 세팅만 하고 끈적한 자국을 제대로 닦지 않는 경우가 많다. 테이블은 항상 일정한 구조로 세팅해야 하는데, 정돈되지 않은 채 불규칙하게 배치되거나 삐뚤빼뚤 놓여 있는 걸 보면 답답하다. 심지어 표정도 무심하고 살갑지 않다.
오후 1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 가게에는 여전히 손님이 한 명도 오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가게 오픈 준비부터 손님 맞을 준비, 테이블 배치, 청소까지 모든 걸 마치고 홀을 쓸고 닦았다. 그런데도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가게 운영자로서의 책임을 방기하는 H 누나를 보며 화가 났고, 아르바이트생의 소극적인 모습에도 반감이 들었다. 이 가게에서 나만 손님을 유치하려고 애쓰는 것 같은 이 상황이 너무 답답하다.
그리고 지금 H 누나는 또 손님용 소파에 누워서 잠을 자고 있다. 휴대폰을 보다가 그대로 잠드는 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아침, 나는 너무 화가 나고 답답해서 스스로 다짐을 했다. H 누나를 이해하려고 애쓰기보다는, 그냥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이라고 받아들이기로. 왜 이렇게 무기력하고 소극적인지 이유를 찾으려고 하기보다, 그냥 "아프니까 저런 행동을 하는 거다"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야 내 감정이 덜 상할 것 같았다. 그 정도로 나는 오늘 기분이 너무 나빴다.
오후 3시 반이 지나면서 손님은 거의 없었고, 몸도 무거워졌다. H 누나가 만들어준 피자를 먹고 나서인지 더 그랬다.
오전부터 느꼈던 답답함과 불만, 추운 날씨까지 겹쳐서 점점 피곤해졌다. 오늘 아침 6시 반에 수영을 다녀온 터라 부족한 수면 시간도 한몫했다. 피로가 확 밀려오면서 나는 4번 테이블에 앉아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그때 H 누나가 다가와 괜찮냐고 물으며 두통약을 사다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굳이 나갔다 오는 게 번거로울까 봐 괜찮다고 사양했다. 그러자 H 누나는 피곤하면 소파에 누워서 한숨 자라고 했다. 사실, 내가 누워 있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던 바로 그 소파. 하지만 결국 나는 그곳에 누워 잠시 눈을 붙였다.
잠에서 깨고 나니 피곤함이 많이 가셨다. 그리고 문득, H 누나에게 느꼈던 감정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나는 H 누나 자체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단지 그녀의 가게 운영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오늘 하루 종일 그녀 자체를 부정적인 감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H 누나가 가게를 운영하는 방식에 대한 내 불만은 여전하다. 하지만 그녀라는 사람 자체를 미워하는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그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된 하루였다.
오늘도 내 마음 안쪽에서 일어난 일들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정답은 모르겠지만, 기록 덕분에 조금은 덜 흔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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